본문 바로가기

″°³ 산행후기 ³°″/국 내 전 체

지리산:거림옛길 창불대 영신봉 남부능선 자빠진골 거림(12052021)

 

 

 

△ 영신봉에서 바라보는 일몰

 

영신봉에서 2시간을 기다리며 이른 저녁만찬을 즐기고 해넘이를 맞는다

 

괜찮을까...충분한 시간을 갖으며 재활 산행으로 편안한 코스로 지리에 든다

 

거림에 도착하니 이미 시간은 정오를 가르킨다.

이미 계절이 여름인듯, 태양은 뜨겁게 내리 쬐고 그냥 무리 없이 천천히

오르니, 북해도교까지 한시간 남칫 소요된다

북해도교 근처에 많은 산님들이 오찬을 즐기고 있다

조용히 옛길 접어 든다

 

 

산이름 : 지리산 [창불대 영신봉 영신사지터(가섭대,좌고대) 남부능선]산행지 : 경남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 거림옛길→우천선행기도터→음양수→창불대→영신봉→영신사지터(가섭대,좌고대)→영신봉(일몰)세석산장[1]→음양수→남부능선→자빠진골→거림골→거림[원점회귀]  : 2012년05월20~21일[일,월요일] (순보행시간:첫날5시간/둘째날5시간)  : 나홀로 : 자가운전 [450km]

 

 

 

 

△ 영신봉에서 천왕봉

 

어디에서 보아도 매력적이다

 

오랜만에 든 지리...행복해 눈물날 지경이다

다시 찾은 자유...행복한 느낌

더 할 수 없이 기쁘다

 

 

 

△ 남부능선과 삼신봉

 

둘째날...남부능선 암봉 전망대에서 바라 본 내,외삼신봉

항상 산정에서 맞는 아침빛은 아름답다

 

 

 

△ 반야

 

둘째날...아침빛에 밝아 오는 반야

그 좌측으로 노고단도 조망된다

 


 

 

▽ 산행 후기 ▽

 

 

 

△ 거림옛길 연이은 와폭

 

예전엔 그냥 무심코 지나쳣던 그런 곳

다리 쉽이 많아 지며 이곳 저곳 세심히 살피며 오른다

걱정과 달리 아직은 무릎에는 무리가 없는듯...괜찮다

 

 

 

△ 저 이정표도 이제 많이 낡았다

 

좀 바꿀때가 되었는데...!

 

 

 

△ 고도1300미터 거림골 상류 건너는 지점

 

멀리 삼신봉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 우천 허만수선생 기도터

 

우천 선생 기도터 너럭바위에 도착한다

아직 잘 보존되고 있다

 

 

 

△ 기도터에서 삼신봉

 

힘겹게 오른만큼 잠시 쉬어 간다

 

 

 

 

△ 기도터에서 삼신봉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속 오르던 길, 얼마 남지 않은 주등로까지 조릿대 헤쳐 들어 선다

 

 

 

△ 음양수 도착

 

음수 양수...졸~졸~졸 잘도 난다

물맛 음미하고...!

다른 한팀 다가 서더니 샘에 세수를 한다

이런...떽끼~~~좀 오버 하셨습니다 모두가 마시는 물인데...!

하니...멋적어 한다...알아 들으니 다행이다

 

음양수에서 주등로 버리고 좌측 숲으로 들어선다

 

 

♧ 음양수 전설 ♧

 

옛날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한 가정을 꾸미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오직 자식이 없다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어느 날 곰이 찾아와 연진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음양수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 물을 마시며 산신령께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연진여인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홀로 이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는데

 호랑이의 밀고로 노한 산신령이 음양수 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연진여인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그 후 연진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고,

아내를 찾아 헤매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가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 되자

가파른 절벽 위의 바위에서 목메어 연진여인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애련한 꽃을 피운다고 하며

촛대봉의 바위는 바로 연진이 굳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 참불대 오르는 첫번째 전망암봉에서 바라 본 촛대봉과 시루봉

 

언제 보아도 매력이 철~철 넘쳐 흐른다

 

 

 

△ 전망암봉에서 창불대 병풍바위 그리고 좌측 끝에 영신대

 

살짝 당겨서 보았다

 

 

 

△ 지리 주릉에서 좌측 반야도 희미하나마 잘 조망된다

 

 

 

△ 전망암봉 영신봉

 

병풍바위와 창불대 영신대가 조망된다

 

 

 

△ 남부능선과 삼신봉

 

영신봉에서 길게 늘어선 남부능선 삼신봉이 힘차 보인다

 

 

 

01

 

살짝 당겨서 보았다

 

 

 

△ 돌탑에 카메라 올려 놓고 혼자 놀기

 

창불대 향해 느그적 느그적 오른다

 

 

 

△ 병풍바위 (자살바위)와 창불대

 

병풍바위 조망암봉에 올라 세석산장이 빤히 보이는 곳이다

언능 담고 재빨리 내려 선다

 

 

 

△ 창불대 [자살바위]

 

이렇게 밖에 담지 못하는것이 아쉽다

 

 

 

△ 창불대[자살바위] 3개의 바우덩이

 

창불대는 일명 자살바위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현대사의 비극이 지리 어디서든 남아 있는 아픈곳이기도 하다

 

 

 

△ 창불대 기도처

 

 

 

△ 자살바위에서 창불대와 남부능선 삼신봉

 

자살바위 벼랑 밑을 보면 아찔...겁나게 까마득한 곳이다

 

 

 

△ 창불대[자살바위] 너머로 반야

 

반야봉으로 자꾸 눈길 가는 건 왤까

꼭 엉덩이를 닮았서 그런가...!

 

 

 

△ 창불대와 남부능선

 

자살바위에서 창불대와 남부능선이다

사진과 달리 엄청나게 큰 바위절벽이다

 

 

 

△ 창불대[자살바위]

 

 

「지리 99에 소개된 유두류록의 일부 내용」
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하도 높아서 그 아래로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 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 여수곶(麗水串)·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더 기관(奇觀)이었다.

 

해공이 여러 구렁[壑]이 모인 곳을 가리키면서 신흥사동(新興寺洞)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절도사(節度使) 이극균(李克均)이 호남(湖南)의 도적 장영기(張永己)와 여기에서 싸웠는데,
영기는 구서(狗鼠) 같은 자라서 험준한 곳을 이용했기 때문에
이공(李公) 같은 지용(智勇)으로도 그가 달아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끝내 장흥 부사(長興府使)에게로 공(功)이 돌아갔으니,06) 탄식할 일이다.

 

해공이 또 악양현(岳陽縣)의 북쪽을 가리키면서 청학사동(靑鶴寺洞)이라고 하였다.
아, 이것이 옛날에 이른바 신선(神仙)이 산다는 곳인가 보다.
인간의 세계와 그리 서로 멀지도 않은데,
이미수(李眉?)는 어찌하여 이 곳을 찾다가 못 찾았던가?
그렇다면 호사자(好事者)가 그 이름을 사모하여 절을 짓고서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인가.

 

해공이 또 그 동쪽을 가리키면서 쌍계사동(雙溪寺洞)이라고 하였다.
최고운(崔孤雲)이 일찍이 이 곳에서 노닐었으므로 각석(刻石)이 남아 있다.
고운은 세속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기개(氣槪)를 지닌데다 난세(亂世)를 만났으므로, 중국(中國)에서 불우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동토(東土)에서도 용납되지 않아서, 마침내 정의롭게 속세 밖에 은둔함으로써
깊고 그윽한 계산(溪山)의 지경은 모두 그가 유력(遊歷)한 곳이었으니,
세상에서 그를 신선이라 칭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겠다

 

 

 

△ 창불대[자살바위]에서 남부능선과 삼신봉

 

바로앞이 수십미터 절벽이다

 

 

 

△ 좌측 너머로 천왕봉이 솓아있다

 

창불대 지나 영신봉 오르며 바라 본 천왕봉과 촛대봉

 

 

 

△ 천황봉...당겨서 보았다

 

천왕봉 좌측으로 제석봉을 거느리고 우측에는 톱날 같은 일출봉

 

 

 

△ 영신대 갈림목 슬랩에서 바라 본 반야

 

 

 

△ 영신봉 오르며 촛대봉과 시루봉

 

세석평전에서 녹음이 짙어 간다

 

 

 

△ 다시...반야

 

헬기장 빼꼼이 올려다 본다

살짝 고개내밀어 금줄 바라 보고 퍼뜩 너머선다

 

그리고...또 금줄 넘어서 영신봉 정상에 올라 간다

사방이 일망무제...비록 연무로 인해 시야가 흐리지만

오랜만에 찾은 지리는 너무도 넉넉하다

 

 

 

△ 영신봉에서 혼자 놀기

 

돌빼기 위에 카메라 올려 놓으니 천왕봉이 많이 가려져 보인다

 

 

 

△ 영신봉 정상

 

 

 

△ 영신봉에서 주릉과 반야

 

반야 좌측으로 노고단까지 조망된다

 

 

 

 

△ 반야와 노고단 당겨서 보았다

 

반야봉까지 흐르는 지리 주능의 명선봉도 넉넉하고

당겨서 보아도 노고단이 아득하다

 

 

 

△ 영신봉에서 바라 보다

 

우측부터 촛대봉 연하봉 일출봉 천왕봉

 

 

 

01

 

 

 

 

△ 천왕봉

 

영신봉에서 천왕봉을 중심으로 좌)제석봉 우)일출봉

 

......

 

[영신봉에서 사방을 둘러 보다]

 

 

 

△ 좌측 주능선과 우측으로 삼정산릉

 

 

 

△ 투구봉 삼봉산 백운산릉

 

 

 

△ 남부능선과 삼신봉

 

연무가 짙어 진다...일몰은 별로 일 듯...!

 

 

 

△ 영신봉에서 혼자 놀기

 

아직 일몰 시간까지는 많이 남아 있고,

바쁘게 지나치며 찾아 보지 못 했던 세석산장 바로 위에 위치 한

「영신사지터와 가섭대 좌고대」 찾아 가 본다

 

어휴~~아직 뽈대기 붓기가 사그러지지 않았다 사진상으로도...

잇몸이 좋지 않아 잇몸 수술 중...이번에 거금 800만원 들어 아구 수리 중이다

이놈에 몸뚱이 이제 서서히 유통기간이 다 되 가나보다

 

 

 

좌고대(坐高臺)

 

가섭전(

迦葉殿)

의 북쪽 봉우리에 두개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이른바 좌고대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뽀족한데 꼭대기에 방석이 얺혀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자 정도 였는데, 스님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

證果)

를 얻는다고 한다

 

1752년 영신사 유허지를 찾은 박래오는 좌고대에 최고운의 각자가 있었다고 한다

 

 

 

 

 가섭대(

迦葉臺)

 

절의 북쪽 비탈에는 석가섭(

石迦葉)

 일구(

一軀)

가 있었다

세조대왕

(世祖大王)

 때에 매양 중사를 보내서 향을 내렸다 그 석가섭의 목에도 이지러진 곳이 있는데,

이 또한 왜구

(倭寇)

가 찍은 자국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 문신이었던 김종직의 저서 「유두류록(

流頭遊錄)

」에 의하면,

"바위의 형상이 가부좌를 한 부처님과 같았는데 (고려말 이성계의 황산대첩에서 패한) 왜구가

지리산에 올라가 천왕봉의 여신 성모상(

聖母象=삼신할매상)

을 두쪽 내고,

이 가섭대 돌부처의 목도 베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영신사지 터에서...!

 

 

 

 

절터에서는 삼신봉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좌고대와 절터에는 아직도 축대가 남아 있어

상당히 큰 절의 규모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지리 99에 소개된 유두류록의 일부 내용」
영신사(靈神寺)에서 자는데 여기는 중이 한 사람뿐이었고,
절의 북쪽 비탈에는 석가섭(石迦葉) 일구(一軀)가 있었다.
세조 대왕(世祖大王) 때에 매양 중사(中使)를 보내서 향(香)을 내렸다. 그 석가섭의 목[項]에도 이지러진 곳이 있는데,
이 또한 왜구(倭寇)가 찍은 자국이라고 했다.
아, 왜인은 참으로 구적(寇賊)이로다. 산
사람들을 남김없이 도륙했는데, 성모와 가섭의 머리까지 또 단참(斷斬)의 화를 입었으니,
어찌 비록 아무런 감각이 없는 돌일지라도 인형(人形)을 닮은 때문에 환난을 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오른쪽 팔뚝에는 마치 불에 탄 듯한 흉터가 있는데,
이 또한 “겁화(劫火)에 불탄 것인데 조금만 더 타면 미륵(彌勒)의 세대가 된다.”고 한다. 대체로 돌의 흔적이 본디 이렇게 생긴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황괴(荒怪)한 말로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서,
내세(來世)의 이익(利益)을 추구하는 자들로 하여금 서로 다투어
전포(錢布)를 보시(布施)하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다.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坐高臺)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뾰족한 데다 꼭대기에 방석(方石)이 얹혀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 자[尺] 정도였는데,
중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禮佛)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證果)를 얻는다고 한다.
이 때 종자(從者)인 옥곤(玉崑)과 염정(廉丁)은 능란히 올라가 예배를 하므로,
내가 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는 급히 사람을 보내서 꾸짖어 중지하게 하였다.
이 무리들은 매우 어리석어서 거의 숙맥(菽麥)도 구분하지 못하는데도 능히 스스로 이와 같이 목숨을 내거니,
부도(浮屠)가 백성을 잘 속일 수 있음을 여기에서 알 수 있겠다.

 

법당(法堂)에는 몽산화상(蒙山和尙)의 그림 족자가 있는데, 그 위에 쓴 찬(贊)에,
두타 제일이 頭陀第一
이것이 바로 두수인데 是爲??
밖으론 이미 속세를 멀리하였고 外已遠塵
안으론 이미 마음의 때를 벗었네 內已離垢
앞서 도를 깨치었고 得道居先
뒤에는 적멸에 들었으니 入滅於後
설의와 계산이 雪衣鷄山
천추에 썩지 않고 전하리라 千秋不朽 하였고,
그 곁의 인장(印章)은 청지(淸之)라는 소전(小篆)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비해당(匪懈堂)의 삼절(三絶)이었다.

 

그 동쪽 섬돌 아래에는 영계(靈溪)가 있고,
서쪽 섬돌 아래에는 옥천(玉泉)이 있는데,
물맛이 매우 좋아서 이것으로 차를 달인다면 중령(中?), 혜산(惠山)도
아마 이보다 낫지는 못할 듯하였다.
샘의 서쪽에는 무너진 절이 우뚝하게 서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옛 영신사이다.
그 서북쪽으로 높은 봉우리에는 조그마한 탑(塔)이 있는데,
그 돌의 결이 아주 섬세하고 매끄러웠다.
이 또한 왜구에 의해 넘어졌던 것을 뒤에 다시 쌓고
그 중심에 철(鐵)을 꿰어놓았는데, 두어 층[數層]은 유실되었다.

 

 

 

 

 

△ 다시 오른...영신봉 정상에서 천왕봉

 

 영신사지터를 둘러 보고 다시 영신봉에 올랐다

 복잡 한 세석산장을 피해 일몰 풍경도 보고, 조금 이르지만 기다리는 시간에

저녁도 해결 할 겸, 조망 좋은 곳이기에 일몰을 기다리는 시간 또한 지루하지 않을 터.

 

 

 

 

01

 

 

 

△ 영신봉에서 촛대봉과 시루봉(장군봉)

 

 

 

△ 다시 천왕봉

 

정상에서 노는 시간이 많으니 천왕봉 얼굴 벗겨지도록 찍는 것 같다

 

 

 

01

 

 

 

02

 

 

▽ 드디어...한참을 기다린 후 일몰 풍경▽

 

 

 

△ 영신봉에서 바라 본 일몰 풍경

 

구름 짙어 화려 한 노을 빛은 없지만, 그래도 지리는 나에게 너무도 넉넉하게 품어 준다

 

 

 

△ 빠르게 짙은 구름은 태양을 삼키고 만다

 

 

 

△ 우~씨...이대로 끝인겨...!

 

아니다...!

 

 

 

△ 다시 태양이 얼굴을 보이고 있다

 

 

 

01

 

 

 

02

 

 

 

03

 

 

 

04

 

 

 

05

 

 

 

06

 

 

 

07

 

「세석산장에서 1박」

 

하루 산행을 마무리 하고 비박을 할까 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세석 산장이 널널하다

거금 일만원을 들어 하루 묵어 가기로 한다

예민해서 그런지 11시가 지나도 잠을 이룰 수 없다

조용히 밖에 나갔다 들어 왔다를 반복하고 새벽녘 잠시 잠이 들었나 보다

몆몆 산님들이 새벽 4시부터 부산이다 아마도 천왕봉을 향하는 님들이겠지

잠도 오지 않고, 나도 주섬주섬 잠자리 정리하고 그냥 베낭 메고 산장을 나섰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촛대봉을 산장 벤치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다

새벽 5시가 되서야 슬슬 움직이기 시작 했다

 

목적지는 남부능선으로 자빠진골로 하산 예정이다

 

「2틀째」

 

세석산장을 나서고 새벽 5시경 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 음양수 제단

 

 

 

△ 남부능선 1406봉에서 시루봉과 여명

 

아마도 짙은 구름으로 일출은 영 아닐 듯

오늘 해오름은 중천에서 해가 뜨지 싶다

 

 

 

△ 촛대봉과 시루봉의 새벽 빛

 

 

 

△ 남부능선 1406봉에서 반야

 

제법 차가운 새벽 바람이 불어 온다

행여 모자 날라 갈 까 신경전을 치루며 1406봉에서 잠시 쉬어 간다

 

 

 

01

 

 

 

02

 

 

 

△ 남부능선에서

 

 

 

△ 남부능선 1365봉에서 조망

 

거림골 새벽빛이 너무 좋다

한참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다

 

 

 

△ 새벽의 반야와 노고단

 

 

 

△ 대성골 조망

 

왕시리봉도 희미하게 조망된다

 

 

 

△ 촛대봉과 시루봉은 자꾸 돌아 앉는다

 

 

 

△ 반야와 노고단을 당겨서 보았다

 

 

 

△ 지리 주릉과 반야

 

 

 

△ 석문 암봉이 보이고 삼신봉도 성큼 다가왔다

 

 

 

△ 다시 거림골

 

 

 

01

 

 

 

02

 

 

 

△ 대성골

 

 

 

01

 

 

 

02

 

 

 

03

 

 

 

△ 멀리 왕시리봉과 노고단 반야

 

 

 

△ 이제서야 시루봉 아래로 태양 얼굴을 내밀고 있다

 

 

 

01

 

 

 

△ 혼자놀기...나는 와전 자유인

 

오래 놀고 있으려니 새벽 바람이 제법 춥다

걸음 또 옮긴다

 

 

 

△ 석문 통과

 

 

 

△ 1321봉에서...지나 온 남부능선과 영신봉

 

 

 

△ 가운데 촛대봉과 좌)영신봉 우)시루봉

 

 

 

△ 내,외 삼신봉

 

 

 

△ 다시...거림골

 

이제 지금 서 있는 암봉 내려서면 지루한 조릿대길 시작될 터

마지막으로 거림골 내려다 보았다

 

한참을 거미줄과 맞장 뜨고, 나중에는 포기 한다

자빠진골 입구에 도착해서 얼굴에 휘감긴 거미줄 걷어 내고

자빠진골...자빠지지 않게 내려서야 할 것이다

 

 

 

△ 한벗샘

 

이용하는 이 별로 없어 샘터가 영 거시기 하다

 

 

 

△ 지루하고 까칠한 자빠진골의 계곡 너덜

 

계곡물은 너덜 깊숙히 흐르고 계곡수 나타날 즘, 앉아 간식을 먹는다

 

 

 

△ 억척스런 삶

 

이 나무가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 같다

한수 배워 갑니다...!

 

 

 

△ 거림골 본류

 

땀도 흘렸지만, 입수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직은 오전이고 계곡물이 을음장이다

대충 윗옷 벗고 흘린 땀 씻어 내고 뽀송한 옷 갈아 입는다

거림까지 1.5km 남은 샘...쉬엄 쉬엄 내려 선다

 

다행히 무릎 통증은 심하지 않게 산행한 것 같다

너무 조심해서 그런가...!

 

 

 

△ 거림골 수문장 거송

 

 

수문장이 말라가고 있다

 

혹시...!

 

절대 그럴리 없을 거야...

언제까지 푸르르게 거림골을 지켜주길 간절히 기원한다

 

 

 

△ 길상선사

 

 

 

△ 거림마을에서 한번 올려다 보았다

 

 

촌 된장 냄새 나는 된장찌개 묵고 싶은데...

월요일이라 그런지 식당가는 하는 듯 마는 듯

그냥 비빔밥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만다

 

너무나 행복했던 이틀간의 지리...!

귀울하는 자가 운전에도 피곤함 없이 룰루랄라~~!

피할 수 없다면 정면 돌파 해야지...!

괜찮을거야...

암...!

 

 

 

 

 

△ 지리 지도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