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지리산 쌍계사 천년 고찰 '11.9.17
▲ 지리 남부능선 삼신봉 자락...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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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소개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3점(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현재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진 금당(金堂)에 금당선원이 있어
눈푸른 납자들의 정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통강원(傳統講院)과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설치되어 바야흐로 선맥과 강맥, 그리고 율맥의 법통이 바로선 수행도량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 쌍계사 팔층석탑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三顆)와
산내 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二顆)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一位)를 모셨다.
때마침 발심서원한 백창기 부부의 단독시주로
불기 2531년(1987년) 1월 3일 시공하여
불기 2534년(1990년) 3월 15일 완공하였다.
▲ 삼신산 쌍계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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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일주문[경남 유형문화재 제86호]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 쌍계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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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금강문이 나타난다
지리 가는 길...오랜만에 쌍계사에 들러보았다
▲ 쌍계사 금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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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을 들어서면...천왕문이 나타난다
▲ 쌍계사 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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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팔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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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들어서면 팔층석탑이 우뚝 솓아 있다
왠지...천년 고찰에 어울리지 않는 듯 한 느낌이지만,
어느새 쌍계사 상징으로 자리 잡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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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팔층석탑과 팔영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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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개한 상사화와 팔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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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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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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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진감선사가 신라 문성왕 2년(840년) 초창한 이래
조선 인조 19년(1641년) 벽암 각성스님의 중수
숙종 21년(1696년) 백암 성총스님의 중수
영조 11년(1735년) 법훈스님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에는 세부의 부처님이 계신데 중앙이 본조불인 석가모니불이고
좌측은 아미타불, 우측이 약사여래불이다.
대운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 기와집이다.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외 3출목으로 기둥위는 물론 기둥사이 평방위에도 짜올리 다포식이다.
첨차는 교두형이고 살미첨자의 바깥은 쇠서로 되었고,
안쪽은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건실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다.
▲ 쌍계사 진감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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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신라 정강왕이 신라말의 고승 진감선사 혜소(774년-850년)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양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던 옥천사를 쌍계사로 명명하고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857년-?)이 비문을 짓고 환영스님이 각자하여 887년에 건립 되었다.
대사의 속성은 최씨고, 시호는 진감선사이며,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애장왕5년(804년)에 불돌를 닦으러 당나라에 들어가
신감대사(마조도일의 80대 제자로 남종선의 선사) 밑에서 스님이 되었다.
그후 숭산고림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다시 종남산에 들어가 3년간 더 도를 딱았다.
흥덕왕5년(830년)에 귀국하여, 상주(尙州) 모악산 장백산(長栢山)에서 선을 가르쳤다.
다시 지리산 화개곡에 들어가 옥천사를 짓고 여생을 마쳤다.
대사는 범패에 능하여 그 맑은 소리로써 대중을 널리 교화하였음은 유명하다비뭉의 자경은 2.3cm의 해서이다.
이 탑비는 귀부와 이수 및 비신을 완전히 갖추고 있으며,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하나이다.
귀부의 등에는간결하게 귀갑문이 조각되었으며, 귀두는 용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귀갑의 중앙에는 방형의 비좌가 마련되어 비신을 받게 되었는데, 네면에 운문(雲紋)이 양각되어 있다
▲ 석탑
▲ 쌍계사 석등[경남 유형문화재 제28호]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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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등은 대웅전 앞에 있으며 높이는 150cm이다
화사석(火舍石) 이상이 없어져 원형을 알기는 어려우나 간석(竿石)의 단순함과
상대석의 8엽 단판의앙련(仰蓮)이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 쌍계사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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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 지정, 쌍계사 소유로 절에서 관리를 한다
쌍계사 대웅전 동쪽의 절경에 있는 높이 1.35m 어깨너비 0.6m 무릎너비0.9m인 불상이다.
큰 암석의 한 면을 움푹 들어가게 파내고 그안에 여래좌상을 두껍게 양각하여
감실 안에 봉안한 불상 같이 보이게 한 특이한 형태의 마애불이다.
불상은 육계가 뚜렸한 큰 머리에 풍만한 얼굴이며 귀는 어깨에 가깝게 길게 내려오고,
법의(法衣)가 두툼해서 옷주름의 표현도 무릎 부분 이외에는 뚜렷하지 않다.
목에 삼도(三道)는 없고, 양손 역시 두툼한 법의에 덮여 있어 확실히 표현되지 않았으나,
양손을 앞에서 공수(拱手)하여 무언가 받들고 있는 듯하다.
이 불상은 승상으로 보일 만큼 소박한 형상이며, 착용한 법복이나 손 모양 등에
특이한 점은 많으나, 고려시대 불상의 형태를 지녔다.
감실 위 원래의 돌 위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는 글자가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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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없었던 사리탑이 봉안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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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진감국사비와 팔영루를 대웅전에서 내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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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를 나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