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암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산내암자(山內庵子)이다. 834년(흥덕왕 9)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꾸준히 수도승들의 수행처로 이용되어 오다가, 1834년(순조 34)우일(宇一)과 유엽(有曄)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객사(客舍)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3층 석탑과 석등(石燈)이 있다. 이 중 3층 석탑은 창건 당시에 건립된 것이라고 하는데 높이 3.7m이다. 석등은 높이 1.2m의 장방형으로 장식이나 기교를 가하지 않은 특이한 석등이다. 이 밖에도 도괴된 부도 1기가 있다. 절 주변에는 삼인암(三印巖)·건들바위·장군수(將軍水) 등이 있다. 이 중 건들 바위에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옛날 한 승려가 참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큰 바위가 암자로 굴러 떨어지려고 하므로 급히 법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리자 바위가 떠올라 훨씬 뒤의 안전한 자리로 옮겨 앉았다고 한다. 또, 장군수는 김유신(金庾信)이 17세 때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마셨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물맛이 매우 뛰어난 석간수이다. [출처: 다음백과]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576
↑ 중암암 돌구멍
온통 바위와 절벽 이룬 곳에 들어 선 이곳 중암암에 들어 설수 있는 길은 오직 이 돌구멍 밖에 없어 돌구멍 바위라고...
"중암(中巖)"이란 아마도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데서 유래 한 듯 하지만, 전설에 의하면 옛날 한 승려가 참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큰 바위가 암자로 굴러 떨어지려해 급히 법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자, 바위가 떠올라 훨씬 뒤의 안전한 자리로 옮겨져 앉았다는 전설과도 전해진다.
그리고, 혜철스님 말대로 팔공산 가운데 가장 중심에 위치한 바위라서 중암이란 설과 이바위에 구멍이 뚫어져 돌구멍을 이루고, 그 안에 암자가 지어져 있다하여 중암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중암암은 팔공산에서 기(氣)가 가장 센 곳이 이곳이며, 기가 약한 사람은 오래 머물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 중암암 대웅전
↑ 중암암 용왕전
↑ 중암암 관음전
↑ 중암암 삼층석탑과 석등
이 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의 삼층석탑으로 탑의 높이는 3m이고 하층기단, 갑석의 폭은 1.46m이다. 다듬질한 긴돌 4개를 결합하여, 지대석으로 깔고, 그 위에 이층기단과 3층의 탑신부를 올렸다. 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삼층석탑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가 강화되었고,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가 심해지는 등의 특징을 보아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암벽 아래 터를 조성하고 남북선상으로 나직한 축대를 쌍아 마당을 2단으로 구성하고 서쏙에는 법당 동쪽은 석탑을 배치하였으며, 법당지에서는 법당 창건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어골문 기와조각이 많이 출토 되었다. 석탑에서 20여미터 떨어진 곳에는 중암암(돌구멍절)을 비롯하여 극락굴, 삼인암, 건들바위, 만년송, 장군수 등이 있다. 하고 소개하고 있다.
중암암 위 극락굴은 거대한 바위가 겹쳐 있어 그 바위틈이 마치 미로처럼
이어져 있고 바위가 처마 이루고 있어 비가 와도 비 맞지 않을 듯 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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