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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영험한 터『지리산 10대반야7대 & 천왕봉 5대』

 

 

△ 묘향대(묘향암)

 

 

 

지리산 10대

문수대, 종석대(우번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 향운대, 문창대, 영신대, 향적대, 금강대(미확인)

 


반야봉 7대

묘향대, 문수대, 종석대, , 금강대, 무착대, 서산대. 만복대

 


천왕봉 5대

향적대, 문창대, 영신대, 소년대, 향운대



1.묘향대
반야봉 정수리에서 묘시방향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이다. 예전엔 토굴이었으나 화엄사 불사를 완성한 도광스님이 절집의 모습을 갖춘 한국 불교의 마지막 전설로 불리는 곳이다. 주능선에서는 삼도봉 옆 소금장수무덤 부근에서 반야봉 올라가기 전 표지판 뒤쪽으로 하나가 있고, 반야봉에서는 중봉 헬리포트 무덤 옆에 구상나무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길이 완전하지 않으니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전설에 의하면 금강대가 제일의 수행지였다 전해지나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은 이곳을 으뜸으로 치고 있다.


2.종석대(우번대)

성삼재 뒤쪽의 바위봉우리이다. 백두대간 에 있으며 노고단에서 보면 종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소리가 돌종을 울리는 소리와 같다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으며 혹자는 관음대
라고도 한다. 우번암을 찾아가는 길은 정상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2~3분 나아가면 조그만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남쪽방향으로 길이 있다. 그 길로 조금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번암의 붉은색 지붕이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길로 내려서면 된다. 우번대사가 깨쳤다는 곳이다.


3.영신대

신령스런 산신이 계신 곳이란 뜻으로 예로부터 지리산에서 기운이 가장 왕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들머리는 벽소령방향에서는 영신대를 오르는 나무계단을 오르기 전 우측으로 길이 있다.(등산로아님표지) 그곳으로 10여미터 들어가면 철조망이 쳐져있다. 바위비탈을 지나 내려가면 영신대 좌측방향으로 나온다. 세석방향에서는 영신대 헬기장 정중앙에서 우측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경사가 완만하며 10여분후면 영신대에 도착할 수 있다. 영신대는 물이 좋고 가끔씩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기위해 드나들어 신상과 재단이 정비되어 있고 가재도구들이 바위틈 곳곳에 숨겨져 있다

4.문수대
불교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반야경을 편찬하신 분으로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화신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자리라함은 예사롭지 않을 수 없다. 노고단 정상부근에 있는 군사시설에서 우측 철조망을 따라 피아골 방향으로 나아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측 바로 위에 단아하고 정갈한 건물로 서있다. 직진하는 길은 왕시루봉과 돼지평전 가는 길이다.



5.문창대(文昌)

문수보살의 지혜가 햇살처럼 찬란하다는 뜻이니 곧 지혜를 구함이다. 예전에는 법계사 남쪽 2km지점의 암봉으로 알고 있었으나 1979년 진주산악회 학술조사반에서 법계사 서쪽 헬기장 옆으로 재정립하였다. 근거로 바위에 “고운최선생장리지소”(孤雲崔先生杖履之所), 즉 고운 최치원선생의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장소라는 바위암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6.서산대
피아골산장 뒤편 지능상에 있다. 산장뒤 비탈길을 1시간가량 올라가면 너덜강 지대같은 바위길이 있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비스듬히 5분여 나아가면 바위절벽이 있는 서산대가 나온다. 주능선상에서는 돼지평전 첫 번째 헬기장에서 내려오는 길이 있으나 인적이 희미하여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며 내려서야 한다.


7.무착대

집착이 없다는 뜻이니 번뇌를 털기 위한 수행의 기본 조건이다. 지리산의 봉우리중 유일하게 장등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불무장등 아래에 있다. 삼도봉에서 불무장등으로 30분 정도 나아가면 불무장등을 오르는 바로 앞에 갈림길이 있다. 여기서 우측길로 2~30분 정도 나아가다 우측의 희미한 족적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서야 한다. 입구 삼거리에서 직진마을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8.향적대

향기가 쌓여있다는 뜻이니 그 산의 기운이 모여있는 곳이다. 장터목 산회샘에서 좌측으로 10여분 들어간 곳에 있다는 설과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지나기 전 오른쪽 아래에 있다는 설이 있다. 고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장소로 이륙의 지리산기, 김종직의 유두류록, 남효온의 지리산일과, 김일손의 두류기행록,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김선신의 두류전지 등에 보이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장소로 활용되었다.


9.향운대

구름향기란 뜻이니 즉 부처님의 말씀을 뜻한다. 광점동 어름터 독가에서 계곡을 건너 우측 능선을 붙어 2시간가량을 올라야 한다. 주능선에서는 국골사거리에서 직진하면 말봉을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서 능선상으로 두 번째 보조자일을 잡고 내려서는 곳을 지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20여분 나아가면 있다.


10.금강대
지리산 최고의 수행처로 뱀사골 어디쯤에 있다는 설이 있었으나 김일손의 기록에 향적사 앞에 우뚝한 바위가 있는데, 올라 조망하면 흰구름이 감싸고 있는 기이한 무수한 봉우리들이 보였다고 적고 있다.


.......

환희대(歡喜)
김종직의 기록에 지장사에서 “1리쯤 되는 곳에 있다. 그 아래로 천 길쯤 되는 절벽이 있고 金坮庵·紅蓮庵·白蓮庵 등 여러 암자가 보인다“고 적고 있다.

 

 

의론대(議論)
김종직의 기록에 나온다. “고열암 서쪽 능선에 세 개의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이다. 향로봉, 미타봉이 모두 의론대 밑에 있다. 이 바위 밑에 노숙한 優?가 살면서 고열암·신열암 등의 승려들과 대승·소승 및 돈오에 대해 토론하다 깨쳐서 의론대라 이름이 붙은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지산대(芝山)
어름터 암반에 음각된 각자가 발견되었다. 주민의 말에 의하면 지초(붉은색이 도는 한약재)가 많았던 장소라 한다.


만복대

“만萬”이란 현대사회처럼 수의 개념이 아니라 모두, 전부, 무한의 개념이다. 따라서 만복이란 이 세상의 모든 복, 즉 복의 근원을 의미하고 그러한 장소라 하면 누구라도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산 양 역시 종석대나, 영신대처럼 형이상학적인 모습이 아니라 넓고 펑퍼짐하며, 정상 바로 아래 샘이 있다. 구도의 길을 찾는 수도처는 아직 찾아내지 못하였으나 아마도 지어진 이름처럼 모든 이가 복 을 수 있는 너른 터는 아닐까. 오르는 길은 정령치나 성삼재, 그리고 상위마을에서 묘봉치나 다름재를 거쳐 오를 수 있다.



옥천대

선종에서는 칠당가람(七堂伽藍)이라하여 산사에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7개의 건물로 불전(佛殿) 법당(法堂).승당(僧堂).고방(庫房, 혹은 廚庫).산문(山門).서정(西淨).욕실(浴室)이 있다.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외양은 물론 내면까지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어야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수행자의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씻을 수 있는 구슬처럼 맑은 물이 있다는 의미처럼 불일 협곡에 있다. 찾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곳으로 불일폭포 위쪽 상불재와 불일폭포가 나뉘는 삼거리에서 사태진 곳으로 어렵게 내려서야하며 그곳에서도 다시 20여분을 더 내려가야 한다. 쌍계사방향에서는 내원골로 들어서 불일계곡의 협곡을 올라야 한다. 두 방향 다 비가 올 때는 찾아가기가 어렵고 비상시를 위해 보조자일을 준비해 가는 게 좋다.



불일대

고서에서 청학동의 전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불일폭포주변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왕왕있다. 아마도 험준한 산의 기암절벽 사이에서 떨어지는 물길 뒤쪽으로 들어가면 동굴을 지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모습의 이상향을 찾아왔었던 듯싶다. 불일평전 위 불일폭포쪽으로 들어가면 불일협곡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터만 남아있다.



상무주대(無住)

주인이 없다는 뜻이니 태초의 세상 이치와 같다. 북부능선에서 바라다 보이는 천왕봉이 압권으로 일명 칠암자코스의 삼정산 바로 아래 있다. 실상사나 마천 도마마을에서 삼불사, 문수암을 거쳐 오르는 길과 삼정에서 영원사를 오르는 도로를 따라 30여분 가다 우측지능으로 직접 오르는 길, 영원사를 거쳐 비깃재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영랑대(永郞)

영랑은 신라 화랑의 우루머리로 3천여 명의 화랑을 거느리고 산수를 마음껏 노닐었는데, 일찍이 이 봉우리에 올랐다하여 이렇게 불렀다. 하봉 부근 바위지대로 김종직은 영랑재(岾) 김선신은 영랑참(站), 유몽인은 영랑대(臺), 양대박은 영랑봉(峯)으로 기록하고 있다.



소년대

하봉을 지나 무덤가기전 바위군의 어느 지점을 말하는 듯하다. 고서에는 푸른 절벽이 만 길이나 되며, 영랑참에 있는 것으로 기록된 것이 많다.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는 ‘소년’이란 “영랑의 무리를 일컫는 듯하다”고 기록하고 특히 유몽인은 ‘천왕봉이 장로이고 이곳은 장노를 받들고 있는 소년처럼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는 의견을 곁들였다. 다만 남효온의 지리산일과에는 빈발암(영신사 부근)을 가는 길에 “향적사를 떠나 소년대에 올랐다. 솜대를 뚫고 계족봉을 지나 30리를 걸어 빈발암에 닿았다”라고 적고 있다.

집선대
화엄사계곡 상류 노고단을 오르는 길 중간 코재 못미처에 있다.

 

 

 

 


청련대
노고단산장 남쪽 약 400미터지점 형제봉능선의 바위지대를 말하는 듯 보인다.


 

가섭대
영신사터 북쪽 절벽에 있다.(이륙, 유몽인의 기록)


 

좌고대
가섭전 북쪽 봉우리에 두 개의 바위가 우뚝하게 서 있는데, 그중 한 바위는 삼단으로 되어있어 아래는 반반하고 위는 뽀쪽하며 머리에 네모난 돌을 이고 있다. (김종직, 남효온, 김일손, 양대박, 유몽인의 기록)


 

창불대(唱佛)
예불에서 오분향례를 염송하가나, 부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뜻하니 곧 구도에 정진함을 이르는 말이다. 김종직은 영신대부근 바위를, 김일손은 영신사 앞에 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