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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최종병기 활> |
ⓒ ㈜다세포클럽, ㈜디씨지플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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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양궁연맹(FITA)은 1988년 서울올림픽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김수녕을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선정하였다. 김수녕은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네 개, 은메달 한 개, 동메달 한 개를 획득하면서 그야말로 신궁으로 불린 우리나라의 대표궁사이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서향순이 금메달을 따면서부터 우리나라는 양궁부문 최정상을 지켜왔다. 2008년 북경 올림픽 당시 중국 언론들은 "한국 양궁, 이길 방법이 없다"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후한서> 등의 중국 사서에서는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중국 중심의 관점에서 변방의 이민족들을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 등으로 불렀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 민족은 활을 잘 쏜다고 하여 큰 대(大)자에 활 궁(弓)자를 합하여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이란 의미로 동이(東夷)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데뷔한 김한민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최종병기 활>(이하 활)이 2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며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는 것도 어쩌면 우리 피 속에 신궁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영화의 인기 때문인지 인터넷에도 <활>에 대한 리뷰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대부분은 스릴 넘치는 액션 활극이라는데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다들 손에 땀을 쥐며 두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백성을 버린 임금은 더 이상 임금이 아니다"
<활>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7년간의 임진왜란이 끝나고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저물어가는 명과 새로이 떠오르는 청 사이에서 균형감 있는 중립외교를 펼치며 실리를 추구했지만, 당시의 조선 조정은 이런 국제적 시각보다는 자신들의 권력획득에만 몰두하였고, 숭명배금과 광해군의 패륜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서인세력은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를 등극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른바 인조반정이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광해군 편에 섰던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남은 남이(박해일)와 자인(문채원)은 개성에 사는 아버지의 친구 김무선(이경영)의 집에서 숨어 살게 된다. 13년의 세월이 흘러 1636년 자인과 김무선의 아들 서군(김무열)의 혼롓날,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오면서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자인과 서군은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간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청나라의 군대가 침입해 와도, 백성들이 끌려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의 상태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636년 12월 1일 심양을 출발한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 평양, 개성을 지나 한양근교에 이르기까지는 단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12월 13일이 되어서야 청군의 침입사실을 알게 되고, 그 다음 날 바로 임금이 피난을 떠나니 이를 온전한 나라라 볼 수 있을까.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인조와 조정은 결국 포위된 지 45일 만에 청 태종 앞에 무릎 꿇고 삼전도에서 항복하게 된다.
맹자는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즉 '백성이 귀중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고, 임금은 대단치 아니하다'라고 하였건만 임진왜란 때도, 병자호란 때도 조선의 왕들은 백성을 돌보지 않았다. 그저 제 한 몸 숨기고 도망치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이러한 역사를 본받아 국민들에게는 '국군이 반격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방송을 내보내고 자신은 한강철교를 끊은 뒤 부산으로 피난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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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최종병기 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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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영화에서 남이도 말하지만 백성을 버린 임금을 임금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역사성이나 역사의식에 큰 무게감을 두고 있지는 않다. 백성들의 목숨은 나라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스스로 지키고 살아남아야 하니 그래서 아마도 제목이 '활(活)'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남이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활 하나만을 들고서 청나라 군대에 끌려간 여동생을 찾아야 한다.
자인을 구출하기 위해 청나라 왕자 도르곤(박기웅)을 살해한 남이를 쫓는 청나라 명궁 쥬신타(류승룡)와 그의 정예부대 니루의 추격장면은 쟁여진 활의 시위처럼 팽팽했다.이 팽팽함을 배가시키는 것은음향효과였다. 남이가 숨죽이고 활을 당길 때 나는 파찰음,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청나라 군사의 가슴팍을 꿰뚫는 타격음, 쥬신타가 쓰는 활촉만 여섯 량(약 240g)인 '육량시'의 묵직한 진공음은 객석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일등공신이다.
또한 남이의 궁술은 경이로웠다. 방향을 알 수 없게 휘어오는 곡사술에서는 <원티드>의 안젤리나 졸리가 떠올랐고, 화살수를 계산하며 화살 하나로 두 명을 넘어뜨리는 장면에서는 <반지의 제왕> 레골라스의 화신인 듯싶었다. 쥬신타의 화살이 팔다리를 절단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녔다면 남이의 화살은 가볍고 날렵하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바람부는 평원, 자인을 사이에 두고 남이의 활과 쥬신타의 활이 서로를 응시한다. 남이는 아버지가 남긴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를 되뇌며 최후의 화살을 날린다.
<활>은 시종일관 가슴 떨리는 긴장감과 속도감으로 객석을 압도한다. 쥬신타를 비롯한 청나라 군대가 만주어를 사용하고 남이와 자인도 그들과 만주어로 대화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지금은 거의 사어가 되어버린 만주어를 되살려낸 감독의 열의는 박수 받을 만하다.
하지만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 12월(양력으로 1월)의 일인데 자인의 혼례식이 겨울 아닌 가을날의 풍경을 담고 있는 모습은 디테일에 약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묘미라고 해야 할까? 또한 느닷없이 나타나 남이의 수호신이 되는 호랑이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작품에서 결말을 짓거나 갈등을 풀기 위해 뜬금없는 사건을 일으키는 플롯 장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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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최종병기 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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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병자호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김한민 감독은 인터뷰에서 <활>의 관전 포인트를 "거두절미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의자에 앉아서 온몸을 맡기고 화면과 소리에 젖어들면 된다"고 말한다. 감독의 말처럼 깊은 고민이나 사색 없이, 숨 가쁘게 뛰고 쫓는 속도감에 몸과 정신을 맡기고 그 속에 빠지기만 하면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고 나오기에는 마지막 자막이 뒷덜미를 잡는다.
병자호란 기간동안 50만 명의 조선인들이 인질과 포로로 끌려갔지만 송환은 없었다. 다만, 소수만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왔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20세기 세계를 제패했던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반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집권세력은 1636년의 인조와 조선 조정처럼 지금도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역사는 되풀이된다.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21세기형 병자호란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국제정세를 정확하게파악하여 실리를 추구한광해군의 중립외교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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