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³ 산행후기 ³°″/영남알프스

(080101-01)영남알프스...무자년 가지산1,240m 해맞이 산행

 

 

△ 가지산 정상에서 무자년 새해 첫 날 해오름

 

 

 ♧ 2008년 무자년 신년 해맞이 산행...가지산 ♧

 

☞산행장소: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산행코스:석남사 주차장 공비토벌기념비동봉→가지산 정상(신년 해맞이)

쌀방위→석남사 옛길(석남사골)→석남사→주차장

☞산행시간:[ 여유롭게 7시간] 

☞산행일자:2008년01월01일

☞날씨:흐림...해오름 시 돌풍 화이트 아웃 현상 발생

 ☞산행인원:나홀로

 ☞차량운행:자가용 이용

 

 

 

▲ 가지산 정상에서 동녘하늘에 먼동이 트고

 

무자년 첫날 해오름을 보려는 인파가 정상에 가득했다.

 

 

▲ 드디어...가지산 정상에서 무자년 첫날...태양의 머리가 솓아난다


 

 

▲ 거침 없이 솓아나는 무자년 첫 일출


 

 

▲ 무자년 첫 태양

 

 

▲ 무자년 첫 태양

 

 

▲ 그런데...갑자기 몸을 날릴정도의 강풍이 몰아친다

 

눈이 날려 화이트 아웃현상이 발생하였다

단 1분 사이에 그 많던 정상의 산객들이
혼비백산하여...모두 한순간에 사려저 버린다.

사람의 능력은 어디까지 일까...!

 

▲  강풍에 아직도 버티는 산님들이 정상에 제법 머물고 있다

 

 

▲ 무자년 첫 태양

 

정상에 빼곡골 차 있던 산님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정상에 나와 또 다른 한분이 있었는데

사진을 짝어 달라는데...몸이 날려 사진을 찍어 줄 수 없는 상황

속장갑과 고어택스 장갑을 끼고 있는데 손가락에 감감이 없다

 

그래도 그 분 사진 찍어 드렸다

분명히 액정 중앙에 찍어주려 했지만 세네번을 찍어도

몸이 날리는 통에 반쪽 사진이 되고 말았지만

그정도 인내한것도 큰일이었다

참 나도 대단하지만 그분도 대단하다

 

도저히 더이상은 강풍과 맞짱뜰 생각이 없고

손발이 얼어 움직여야 했다

 

 

 

▲ 강풍에 화이트 아웃현상이 발생 한다

 

 

▲ 화이트 아웃 발생

 

 

△ 정상에서 쌀바위

 

 

△ 아무도 없는 정상

 

아무도 없는 정상 그래서 정상석을 담아 왔다

강풍에 몸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어쩔수 없이 날아가기 싫어서 정상을 내려서야 했다

가지산에서 그토록 혹독한 추위와 강풍은 처음 격은 일

정말 대단했던 상황이었다

 

 

 

▲ 엄청 추웠던 가지산

 

해오름과 동시에 불어 닦친 강풍으로 그야말로 끔찍하게 추웠던

정상에 홀로 남아 있다 오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 쌀바위 향하며...

 

 

△ 당겨서 본 쌀바위

 

 

△ 헬리포트에서 북봉과 그 뒤로 운문산

 

 

쌀바위를 향하며 뒤 돌아 본...가지산 정산과 좌측 동봉


이제서야 칼바람이 잦아든 걸까...쌀바위 향하며 바라본 정상은 평온해 보인다

 

 

 

△ 쌀바위 뒤로 상운산

 

 

 △ 쌀바위를 향하며...뒤 돌아 본 가지산 정상

 

 

쌀바위와 가지산 정상

 

쌀바위 조금 지나 우측으로 내려 선다

석남사 옛길이다...지금은 석남사에서 등로를 폐쇄시켜 길이 많이 묵어있다

예전에 가지산 쌀바위를 오르는 주등로였는데

 

옛 추억 더듬으로 쏟아져 내려와 석남사 뒷문 조용히 열고 들어 섯다

 

 

 

△ 석남사

 

 

△ 조용히 법당에 들러 합장하고 조용히 나선다

 

♧ 석남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824년(헌덕왕 16) 우리 나라에 최초로 ()을 도입한 도의(道義)가

호국기도도량으로 창건한 선찰(禪刹)이다.

창건 당시 화관보탑(華觀寶塔)의 빼어남과 각로자탑(覺路慈塔)의 아름다움이 영남 제일이라고 하여

석남사(碩南寺)라 하였다고 하며, 일설에는 가지산의 별명이 석안산(碩眼山)이기 때문에 석안사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1674년(현종 15)에 언양현감 강옹(姜甕)의 시주로

 탁령(卓靈)·자운(慈雲)·의철(義哲)·태주(泰珠)가 중창하였고, 진혜(振慧)·쌍원(雙遠)·익의(益儀)·성진(性眞)이 단청을 하였으며,

동시에 종과 북 등의 불구(佛具)를 마련하였다. 이어 정우(淨佑)·각일(覺日)·석맹(碩孟) 등이

극락전·청풍당·청운당·청화당·향각(香閣)을 증축하였고, 희철(熙哲)이 명부전을 세웠다

 

1803년(순조 3)에는 침허(枕虛)와 수일(守一)이 중수하였고, 1912년에는 우운(友雲)이 중수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에 크게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57년 비구니 인홍(仁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증축하였다.

 이 때부터 비구니 수도처로서 각광을 받은 이 절에는 항상 100명이넘는 비구니들이 엄격한 계율을 준수하면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여 극락전·설선당(說禪堂)·조사전(祖師殿)·

심검당(尋劍堂)·침계루(枕溪樓)·정애루(正愛樓)·종루(鐘樓)·무진료 (無盡寮)·대방(大房) 등 30여 동이 있다.

이들 가운데 극락전은 1791년(정조 15)에 세운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문화재로는 도의국사의 사리탑으로 전해지는 보물 제369호의 석남사 팔각원당형부도(石南寺八角圓堂形浮屠)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인 삼층석탑, 조선 초기에 제작된 엄나무구유와 돌구유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824년에 도의가 호국의 염원 아래 15층으로 세운 것이라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1973년 스리랑카의 승려가 사리 1과를 봉안하면서 3층으로 개축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 4기의 부도가 있다

 

 

 

△ 석남사

 

 

△ 석남사와 가지산 상봉

 

 

△ 석남사 경내 나서며 상봉 당겨서 보았다

 

 

무자년....건승을 빌며...!

 

 

 


▲ 족적



[end...]



<<<산행Photo원문보기:영알울근교 산행(080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