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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다녀온山寺

('18.6.13) 김해 신어산 『은하사 영구암 동림사』





《신어산 "은하사"











하사는 조선 중기 이전까지 있던 건물은 동림사와 함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양식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은하사의 대웅전 수미단에는 허황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도 추정되는 쌍어 문양이 있다. 쌍어 문양은 허황옥의 출신지로 기록된 아유타가 인도의 한 왕국이라는 가설에서 종종 인용된다. 은하사가 위치한 신어산의 이름도 '신의 물고기'라는 뜻이다. 신어산을 배경으로 한 경관과 진입로의 소나무 숲이 아름다우며, 단아한 사찰의 모습이 찾는 이의 마음까지 씻어주는 듯하다. 영화[달마야 놀자]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은하사와 림사는 가락국 (43-532)초기에 김수로왕의 처남인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 은하사는 한동안 서림사로 불리워졌고 서역불교의 번성을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졌으며, 동림사는 가락국의 안전과 번영을 염원하는 뜻에서 창건되었다고 한다. 두 절 모두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된 것을 화엄선사와 월주스님이 복원하였다.




은하사 오층석탑


자연석을 기단으로 세워진 석탑은 조선시대것으로 원형상태가 아니라 흩어져 있던 석탑부재까지 함께 쌓아 놓은 것이다.













































































































































《신어산 명당터 정상 아래 "영구암"





영구암 삼층석탑


사찰의 유물로는 고려 후기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473호) 일부가 남아있고 20세기 초에 유명한 화승 완호낙현(玩虎洛現)이 그린 칠성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504호)이 있다.







이 삼층석탑에 대하여 이렇게 알리고 있고...







구암은 인도 아유타국 허황옥 공주가 가락국으로 올 때 동행한 친오빠 허보옥(장유스님: 가락국의 국사로 추앙됨)의 젊은 시절의 수행처하고 한다.

영구암이라는 사명은 산의 형국이 거북을 닮은 데에서 유래하며 산의 이름도 신어(神魚)가 있는산, 신어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처음에는 구암사(龜岩寺), 구암(龜庵)이라고 하였다. 현재 3층석탑의 주변전체가 거북머리, 대웅전 앞이 목, 삼성각 뒤봉우리가 등껍질, 꼬리는 신어산 정상이며, 영구암 좌,우에 형성된 암릉이 양발을 이루고 있다. 해서 이 거대한 거북형상은 팔을 벌려 남해바다의 기를 마시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영구암 위치가 험준하고 가파른 거친 곳,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하여 오랜세월 퇴락한 사세가 현주지(소운) 선공스님에 의해 새단장 중이다.










영구암 도착 무렵 석굴안에는 "지장보살"


















삼성각






영구암 삼층석탑


사찰의 유물로는 고려 후기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473호) 일부가 남아있고 20세기 초에 유명한 화승 완호낙현(玩虎洛現)이 그린 칠성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504호)이 있다.




이 삼층석탑에 대하여 이렇게 알리고 있고...


























영구암 칠성탱



































수령 2~3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참나무가...바위를 가르며 몸통 키웠다.



참으로 자연의 신비 그자체...참나무의 인내가...느껴진다.



그 굵기가 장정 서너 사람이 앉아야 할 듯...! 



















법구경이 새겨진 비








《신어산 "동림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즈넉한 절이기보다, 현대식으로 변모한 동림사-





은하사와 림사는 가락국 (43-532)초기에 김수로왕의 처남인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 은하사는 한동안 서림사로 불리워졌고 서역불교의 번성을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졌으며, 동림사는 가락국의 안전과 번영을 염원하는 뜻에서 창건되었다고 한다. 두 절 모두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된 것을 화엄선사와 월주스님이 복원하였다.




































깊은 역사와 달리...산사 미 없는 동림사 나서고...



천진암과 영구암 올려다 보고 내려 선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