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7 (토)
이번 주말은 토요일 시간 나고, 가까운 영남알프스 어디를 갈까 !
올커니, 영남알프스 9봉 인증에 제외된 문복산이 딱 일 듯...
영알 9봉 인증에 몸살 앓던 최단 코스인 대현마을과 문복산이 비로소 옛정취를 되찾았다.
역시 탁월한 선택, 오랜만에 문복산과 드린바위를 호젖하게 즐기고 왔다.
영남알프스 가장 북단에 있는 문복산, 해발 1,014m 준봉이다.
아직도 지난주에 내린 잔설과 상고대가 제법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많이 따뜻해 진 탓으로 상고대는 속절없이 녹고 있었다.
문복산(文福山)은 해발 1,014m 높이로 경북 청도 운문면과 경북 경주 산내면에 위치하고 있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 가장 북쪽에 있으며 영남알프스의 가장 낮은 막내격인 산이다. 문복산 지명 유래는 옛날 '문복'이라는 사람이 이 산에 들어와 평생 도를 닦고 살았다 하여 문복산이라 부른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접견지였던 곳으로, 대야성에서 백제와 수많은 전투가 있었고 대야성의 성주인 '품석'은 성을 안간힘을 다해 사수하려 했지만 결국 항복을 하였다. 하지만 백제의 장군 '윤충'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인 '품석'을 살려 둘리 없었다. 결국 '품석'은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자결을 했고, 그와 아내의 시신은 목이 잘려 감옥 땅바닥에 묻히는 수모를 당했다. 이 '품속'의 친구이자 화랑이었던 '문복'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백제와의 전쟁에 직접 나서 김유신이 지휘했던 옥문곡 전투에 참전, 이때 사로잡은 800여명의 백제 장군들을 '품석'과 '고타소'의 유골과 교환 할 수 있었다. 이때 문복은 직접 품석과 고타소의 유골을 수습했는데 버려지다 싶이 묻힌 품석과 고타소를 보고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서라벌로 돌아 온 문복은 인생무상을 느끼고 처참히 죽어간 친구를 생각하며 가슬갑사로 출가를 결심했고, 이곳 문복산에서 수행을 하였다고 한다.
♧ 영남알프스 소개 ♧
영남알프스는 영남 동부지역에 형성된 해발 1,000m 이상의 9개 봉우리 산악군을 영남알프스라 하며, 유럽의 알프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하여 영남알프스라 부르고 있다. 백두대간 피재에서 분기된 낙동정맥이 이곳까지 뻗어와 해발 1,000m이상의 준봉이 힘차게 솟아 있는 영남알프스는 울산광역시, 경북 청도와 경주, 경남 밀양과 양산 5개의 시군에 속해 있으며 영남알프스 전체면적은 약 255km²에 달한다.
영남알프스는 1,000m 이상 준봉은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사자봉), 재약산(수미봉),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단조봉), 문복산, 고헌산 9봉 산악군을 말한다. 영남알프스는 1979년 11월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영남 동부지방을 남북으로 뻗어 내리다 대구 영천분지에서 산세를 낮추다 경주 단석산(827m)에서 고헌산(1,033m)으로 이어지며 다시 1,000m 이상의 준봉들이 솟구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척박한 자리 탓하지 않고 온몸으로 바위틈을 비집고 몸통키은 괴목...
정말 경이롭기만 하고, 한동안 이 괴목 앞에서 떠나지 못해다.
얼마나 바위를 비집고 파고 들었는지, 모진 풍파에도 끄떡 없을 것 같다.
문복산의 상징 드린바위는 단독 암봉으로 대단한 위용이다.
넓이 100여미터 높이 130여미터 수직과 오버행을 이룬 거벽 등반지며,
산아래에서 보면, 마치 설악산의 세존봉을 연상케 하는 기세다.
문복산의 유일한 암봉인 이 드린바위에는 옛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문복산 명물 드린바위는 정상 동쪽 8부 능선에 거대한 암봉으로 솟아 있다. 그 덩치가 아주 커 높이가 130m 넓이가 100m에 달한다. 마을 현주민들은 이 드린바위 형세가 마치 허공에서 산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 바위를 드린바위로 불렀다고 한다.
이 드린바위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옛날부터 이곳 드린바위에는 석이버섯이 많아 마을 사람들은 석이를 따서 먹었다고 하며, 임금에게 조공으로 받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드린바위에는 큰 지네와 거미가 살고 있었는데, 지네의 크기는 채이짝만 하였고, 거미는 서말지 솥뚜껑만 했다고 한다. 이 드린바위에서 마주 보이는 고헌산이 있는데, 이 고헌산 8부 능선 아래 대너덜이 있는데, 이 너덜을 '우레들'라 부른다. 이 드린바위 전설은 고헌산 우레들 부근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고헌산 우레들에서 보이는 드린바위를 보고 석이버섯을 따러 튼튼한 새끼줄과 도구를 챙겨 남편이 드린바위를 석이버섯을 따러 갔다. 새끼줄에 의지한 남편은 더 실한 석이버섯을 따기 위해 밧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석이를 따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한편 부인은 남편에게 줄 새참으로 흰죽을 쑤어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섯다. 그런데 멀리 드린바위에 버섯을 따고 있는 줄에 매달린 남편을 보고 소스라 치게 놀라고 말았다. 남편이 매달려 있는 새기줄을 큰 지네가 물어뜯고 있는 것이였다. 남편은 이사실을 알리 없고 열심히 석이를 채취하고 있었고, 부인은 남편을 살리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리 남편을 살려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머리에 이고 있던 흰죽을 발을 헛디뎌 쏟아 버리고, 계속 남편을 살려달라 소리를 쳤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어느 순간 드린바위에 살고 있던 큰 거미가 지네를 쫒아 버리고 끊어질 듯 한 새끼줄을 거미줄로 이어주어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로 경주 산내(살래) 사람들은 '고헌산'을 '고함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고헌산 북쪽 산비탈에 넓은 너덜경 위에는 마치 흰죽을 쏟아 희끗희끗한 흰색 모양의 너덜이 현존하고 있어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문복산 드린바위 정상에서 고헌산을 바라보면 고헌산 서봉 중턱 골짜기에 대너덜 지대가 보이는데 이 너덜을 '우레들'이라 한다. 이 우레들 대너덜 밑으로 사철 물이 흐르는데 '우르릉 쿵쿵'하는 물소리가 우레소리 같다하여 '우레들'이라 부르고 있다.
드린바위 정상에서 보이는 고헌산, 서봉 우측골에 힌눈덮힌 대너덜이 보이고
저 대너덜을 '우레들'이라 하며 이곳 드린바위와 얽힌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전설은 절설일 뿐 저곳에서 소리친다 해도 이곳에서 들리지고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설은 분명 어떤 사물과 사람, 짐승 등을 토대로 재밋게 지어낸 옛선조들의 애환이 아닐까 !
▣ 산이름: 문복산 (드린바위)
▣ 산행지: 경북 청도 운문면 신원리/ 경북 경주 산내면 대현리
들/날머리: 경북 경주 산내면 대현리 2442번지 (대현3리 마을쉼터_P)
▣ 코 스: 대현3리 마을쉼터_P ~ 대현리 마을 ~ 드린바위 갈림길 ~ 문복산 정상 ~ 조망봉(왕복) ~ 정상 ~ 삼거리 ~
드린바위 ~ 삼거리 ~ 대현3리 마을쉼터_P
【산행】입산: 11:00~하산: 16:10_ 6km
▣ 일 시: 2024년 1월 27일 (토)
▣ 날 씨: 맑음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운전【왕복 92km】 출발: 09:30 ~ 도착 17:20
▣ 경 비: 없음
▣ Photo 후기
울밀선 달리며 본 가지산
아직도 가지산에는 제법 상고대가 피어 있다.
아마도 이번주말 가지산은 미어터지지 싶고...
살짝 우측으로 빠져 우리는 문복산으로 간다.
경주 산내면 대현3리 마을쉼터
9봉 인증으로 몸살을 앓던 주민들의 민원으로 문복산이 제외되며 대현리가 이제 조용해 졌다.
조용해진 마을 쉼터 공터에 참하게 패킹 후 마을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몆일전 문복산 드린바위 부근에서 미끄러져 갈비뼈가 골절된 등산객을 119구조대가 구조했다며,
장비를 잘 챙겨 올라가시라 하신다. 걱정해 주시는 어르신에게 잘 다녀오겠습니다~인사를 하고 우리는 출발~!
이제것 문복산은 청도쪽에서 여러번 올랐지만, 경주 대현리에서 올라 드린바위를 즐겨본적은 참 오래전이다.
대현3리 마을 쉼터 출발
마을에서 올려다 보이는 문복산과 드린바위
드린바위와 문복산 정상
문복산 진행 방향
마을쉼터에서 계곡 다리를 건너면 대현3리 마을회관이 나오고, 조금더 길을 따르면 좌측으로 위 사진 길이다.
그러면 좌측길을 따라 오르면 되며, 좌측 옆 느티나무에 아래 사진과 같은 문복산 2km 표식만 딸랑 박혀 있다.
마지막 전원주택에서 본 문복산
전원주택에서 당겨 본 드린바위와 문복산 정상부
산문
전원주택 앞에는 묘지군이 쭉~있고, 사진과 같은 문복산 화살표가 서 있다.
옛 동로는 왜~!!!
계곡를 끼고 오르던 옛등로는 팬스로 막혀 있고, 등로는 우측 언덕으로 올려 붙는다.
사유지이기 전에 마을식수원이니 9봉 인증에 워낙 많이 왔었으니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젠 옛 정취를 찾았으니 살짝 들어서도 무방하지만, 착하게 우측으로 오른다.
팬스를 지나 옛길을 따르면 드린바위 아래로 바로 오르게 되며, 옛길은 선명히 이어진다.
좌측 끝 서담골봉과 삼각형 대부산
삼거리 도착
좌측으로 가면 드린바위, 직진은 정상에 바로 오르게 된다.
정상부 상고대가 다 녹기전에 우리는 정상에 바로 오른다.
고도가 높아지며 설산으로...진입
잔존 상고대
포근한 날씨지만 상고대가 남아 있는 듯 기대가 된다.
드린바위 갈림목 삼거리
이곳에서 우리는 드린바위로 하산 할 예정이다.
정상 도착전 명품솔
하지만 눈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가지가 많이 부러져 버려 아쉽다.
정상
문복산 정상 도착
문복산(文福山)은 해발 1,014m 높이로 경북 청도 운문면과 경북 경주 산내면에 위치하고 있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 가장 북쪽에 있으며 영남알프스의 가장 낮은 막내격인 산이다. 문복산 지명 유래는 옛날 '문복'이라는 사람이 이 산에 들어와 평생 도를 닦고 살았다 하여 문복산이라 부른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접견지였던 곳으로, 대야성에서 백제와 수많은 전투가 있었고 대야성의 성주인 '품석'은 성을 안간힘을 다해 사수하려 했지만 결국 항복을 하였다. 하지만 백제의 장군 '윤충'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인 '품석'을 살려 둘리 없었다. 결국 '품석'은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자결을 했고, 그와 아내의 시신은 목이 잘려 감옥 땅바닥에 묻히는 수모를 당했다. 이 '품속'의 친구이자 화랑이었던 '문복'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백제와의 전쟁에 직접 나서 김유신이 지휘했던 옥문곡 전투에 참전, 이때 사로잡은 800여명의 백제 장군들을 '품석'과 '고타소'의 유골과 교환 할 수 있었다. 이때 문복은 직접 품석과 고타소의 유골을 수습했는데 버려지다 싶이 묻힌 품석과 고타소를 보고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서라벌로 돌아 온 문복은 인생무상을 느끼고 처참히 죽어간 친구를 생각하며 가슬갑사로 출가를 결심했고, 이곳 문복산에서 수행을 하였다고 한다.
정상에서 함께...
정상에 있는 산님 한분이 담아 주었다.
문복산 옛 정상석
옛 정상석은 현 정상석 뒤로 밀려 세워져 있고,
오래전부터 만나보던 정상석이라 정감이 있다.
추억이 있으니 없에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
문복산 정상부
문복산 연봉이 고만고만하게 이어지니 정상부가 아주넓은 것이 특징이다.
조망은 정상석 있는 곳보다,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와 전망암봉이 더 좋다.
정상에 오르면 운문령 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멋진 조망처가 두군데 있다.
건너 고헌산
우측으로 운문령으로 이어지는 학대산 능선, 멀리 신불산릉이 펼펴진다.
정상에서 보이는 고헌산
이번 산행기에 언급한 드린바위와 고헌산에 관련한 전설이 전해오는
고헌산 우측 중턱에 눈덮힌 '우레들'이란 큰 너덜경이 하얗게 보인다.
당겨서 본 고헌산
우측 서봉 아래 하얗게 보이는 대너덜이 '우레들'이다.
저 우레들 너덜아래 흐르는 물소리가 '우르릉 쿵쿵'~
마치 우레소리와 같이 들린다 하여 '우레들' 이라한다.
문복산 정상에서 당겨 본 신불산릉
정상부 설경
고헌산과 좌측 백운산
정상에서 운문령 쪽으로...
좀더 탁트인 조망을 위하여 지척에 있는 전망암봉을 이동한다.
문복산 정상부 명품솔 군락
정상에는 여러 명품솔이 문복산 정상을 지키고 있다.
상고대가 남아있는 아래쪽
정상부라 아직 상고대가 제법 남아있어 틈새를 파고 들어 보았다.
남봉으로...
헬리포트에서...
순백의 세상에 엑스레이 한번 찍고...ㅎ
ㅎ~
조망봉 도착
정면에 고헌산과 백운산이 건너다 보인다.
좌)백운산 우)고헌산
아래로 대현리 마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이제는 전원주택들이 대부분이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정상으로...
잔존 상고대와 건너 백운산
빽코스 하여 삼거리 갈림길
드린바위 하산길 상고대에서...
잔존 상고대를 담아보고...
이제 고도를 떨구면 보지 못할 녹고 있는 상고대에 눈맞춤 하고
드린바위 뒷태 조망처
이곳부터 하산길로 잡기에는 좀 까칠한 등로를 내려가야 한다.
드린바위 코스는 암릉길이라 가능한 올라오길 권장 드립니다.
특히 눈내린 겨울에는 더욱 하산하는 것을 바추천 하고 싶다.
내려다 본 드린바위
건너 백운산과 고헌산
드린바위 전설을 뒷밭침 하듯 고헌산이 가까이 보인다.
이곳 드린바위에서 저 고헌산까지는 직선거리로 6km다.
올려다 보이는 문복산 정상부
먼저 내려와서 본 짱이 서있는 암봉
다시 조망바위
위험했던 곳
나무를 잡고 내려가면 되는데, 후등으로 하산하던 짱이 미끄러져 아래로 추락할 뻔 했다.
슬립하기 전...
찰라 눈솔 얼음을 밟았는지 순간 슬립~다행히 우측으로 미끄러지지 않고
내 앞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제동을 걸었던...!!!
아질한 순간이었는데, 엉덩이 썰매 탓다고
즐거워 하는 짱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순간 놀랬을 텐데...!!!
우측으로 슬립 했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찔한 순간이었다.
조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드린바위 뒷태
이곳도 까칠한 하산을 해야 하고...
다소 안전한 하신길에서...
드린바위 정상 오름길
뒤 돌아 본 문복산 정상
내려 온 암릉이 지척으로 건너다 보인다.
문복산 드린바위 정상
이제부터 드린바위 즐기기에 드간다.
문복산 정상을 배경으로...
드린바위 정상에서 보이는 고헌산
드린바위와 고헌산에 전해오는 전설, 이곳 드린바위와 고헌산 우측에 우레들 대너덜이 보인다.
당겨서 본 고헌산 우측 우레들 너덜
문복산 명물 드린바위는 정상 동쪽 8부 능선에 거대한 암봉으로 솟아 있다. 그 덩치가 아주 커 높이가 130m 넓이가 100m에 달한다. 마을 현주민들은 이 드린바위 형세가 마치 허공에서 산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 바위를 드린바위로 불렀다고 한다.
이 드린바위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옛날부터 이곳 드린바위에는 석이버섯이 많아 마을 사람들은 석이를 따서 먹었다고 하며, 임금에게 조공으로 받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드린바위에는 큰 지네와 거미가 살고 있었는데, 지네의 크기는 채이짝만 하였고, 거미는 서말지 솥뚜껑만 했다고 한다. 이 드린바위에서 마주 보이는 고헌산이 있는데, 이 고헌산 8부 능선 아래 대너덜이 있는데, 이 너덜을 '우레들'라 부른다. 이 드린바위 전설은 고헌산 우레들 부근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고헌산 우레들에서 보이는 드린바위를 보고 석이버섯을 따러 튼튼한 새끼줄과 도구를 챙겨 남편이 드린바위를 석이버섯을 따러 갔다. 새끼줄에 의지한 남편은 더 실한 석이버섯을 따기 위해 밧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석이를 따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한편 부인은 남편에게 줄 새참으로 흰죽을 쑤어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섯다. 그런데 멀리 드린바위에 버섯을 따고 있는 줄에 매달린 남편을 보고 소스라 치게 놀라고 말았다. 남편이 매달려 있는 새기줄을 큰 지네가 물어뜯고 있는 것이였다. 남편은 이사실을 알리 없고 열심히 석이를 채취하고 있었고, 부인은 남편을 살리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리 남편을 살려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머리에 이고 있던 흰죽을 발을 헛디뎌 쏟아 버리고, 계속 남편을 살려달라 소리를 쳤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어느 순간 드린바위에 살고 있던 큰 거미가 지네를 쫒아 버리고 끊어질 듯 한 새끼줄을 거미줄로 이어주어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로 경주 산내(살래) 사람들은 '고헌산'을 '고함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고헌산 북쪽 산비탈에 넓은 너덜경 위에는 마치 흰죽을 쏟아 희끗희끗한 흰색 모양의 너덜이 현존하고 있어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문복산 드린바위 정상에서 고헌산을 바라보면 고헌산 서봉 중턱 골짜기에 대너덜 지대가 보이는데 이 너덜을 '우레들'이라 한다. 이 우레들 대너덜 밑으로 사철 물이 흐르는데 '우르릉 쿵쿵'하는 물소리가 우레소리 같다하여 '우레들'이라 부르고 있다.
드린바위에서 내려다 본 대현리
드린바위에서 본 대부산과 멀리 단석산
당겨서 본 대부산과 단석산
드린바위 하산
오랜시간 드린바위에서 커피도 마시고 놀다 하산...!
드린바위 하산 로프길
드린바위 우면을 보며 하산
다시 로프길
낙석이 심해 조심해야...
뒤 이어 짱이 내려오고, 서둘지 말고 천헌히, 눈속이 빙벽으로 얼어 있어 조심해야 했다.
드린바위 우측아래 기도처 석굴
석굴 안에는 기도했던 흔적이...
괴목이 있는 우측 깊은 석굴
제법 깊은 석굴인데, 짐승이 기거 할만 한 곳...일부러 접근은 하지 않았다.
인상적인 괴목
석굴 안에서 본
석굴에서 또 커피한잔 하고,,,
드린바위 뿌리로, 드린바위 아래를 감아돌아 보았다.
꺼꾸로 올려다 본 드린바위 일부
대단한 거벽으로 겨울이라 드린바위를 그래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드린바위
모두 광곽으로 담아 본 드린바위...!
오버행 인공등반 거벽
단독 암봉으로 오버행 드린바위 등반지
영남알프스에서 단일 암봉으로 최대의 등반지라 할 수 있다.
천황산 필봉 매바위와 함께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큰 등반지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문복산 드린바위, 정말 대단히 위압감이 든다.
다시 한번 꺼꾸로 올려다 보고...
최대한 물러서 광곽으로 담은 드린바위
드린바위 좌측까지 돌아보려 했는데, 너무 무섭다는 짱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쯤에서 철수...!
하산~!
돌아 본 드린바위 우면
다시 보아도 대단한 드린바위...!
그리고 드린바위 주변 괴목을 만난다.
괴목의 신비
비좁은 바위틈마다 파고들어 몸집을 키운 괴목...!
한마디로 경이롭기만 하고, 한동안 이리저리 보고...!
바위 틈마다 파고 든 뿌리가...!!!
한동안 눈맞춤 하고...!
편안안 하산길 따라 안전하게 내려온다.
대현3리 중리 전원주택지 도착
당겨서 본 고헌산
살짝 당겨서 올려다 본 문복산과 드린바위
효모재...뭐하는 곳인지...!
효모재란 현판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제실인가, 확실치는 않다.
대현3리 회관
대현리 마을쉼터 도착 산행종료
마을쉼터에서 당겨서 본 문복산과 드린바위
신발과 아이젠 스페츠에 흙이 묻어 계곡물에 깨끗이 씻고, 장비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슬그머니 다가 온 견공 한녀석...완전 인상파 견공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완전 인상파 견공, 보기와 달리 온순하여 이리오라 손을 주니 다가온다.
견공이 배웅해 주는 문복산 산행, 오래전 징크스도 떨치고...!
늘~마음에 남아있었는데, 오늘은 드린바위에서 그 징크스를 두고 왔다.
그래서인지 문복산에 들면 뻔히 아는길도 잘못들거나, 고생했던 징크스가 여러번 있었다.
오랜만에 즐긴 드린바위, 다시 옛 정취를 되찾은 문복산에서 하루 행복함 입니다.
《end》
'″°³ 산행후기 ³°″ > 영남알프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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