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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국 내 전 체

[4부]영월 솔고개 소나무 & 김삿갓 유적지 '25.12.19(금)

 

선바위산 소원바위를 보고 멀지 않은 솔고개 소나무를 보러갑니다.

 

솔고개 솔이 우리나라 3대 명품솔이라고 하는데, 어떨지 궁굼~!

가는 길 맑은 옥동천이 흐르고, 솔 뒤로 단풍산이 병풍을 두루고 있는 곳

솔고개 소나무와의 첫 대면, 과연 명풍송 다운 풍채가 물씬 풍깁니다.

 

 

 

 

 

영월 솔고개 소나무는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던 단종과 연관이 있는데, 이 소나무는 단종이 승하한 후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고 그 혼령이 태백산을 향하던 중 이곳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노송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배웅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이라 합니다. 이 소나무는 산림청 선정 2025년 올해의 소나무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래 솔고개에 있는 마을 이름이 본래 중동면이었는데 지난 2021년11월부터 솔고개 소나무 이미지를 반영하여 '산솔면'으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81-1 (단풍산 기슭 산솔마을 솔고개)

○ 지정현황: 강원기념물 제7호 (1982.11.13)

○ 수목규모: 수령 660년, 높이 12m 둘레, 2.8m, 수관폭 17m

○ 주요특징: 한국 3대 명품송 중 하나, 솔표 상징 이미지 모티브 보호수, 산림청 선정 2025년 올래의 나무로 선정

○ 3대명품송: 속리산 정이품송,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영월 솔고개 소나무 

 

 

 

 

 

 

비운의 천재 방랑 시인 김삿갓 (난고 김병연)은 역적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모른채, 김익순을 비판하는 시제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 한 후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했을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

가족을 모두 버리고 그가 선택한 방랑 생활이 충분히 이해 되고도 남습니다.

 

이제 김삿갓에 대한 유적이 후세에 잘 전해지니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으려나 !

 

 

 

 

 

난고 김병연(1807-1863: 순조7~철종14년)은 선천의 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최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자 노목 김성수의 구원으로 김영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에 숨어 살았다. 그러나 김익순에 대한 문제는 본인에게만 묻고 가문을 폐문 한다는 조정의 결정이 알려지면서 모친과 함께 황해도 곡산을 떠나 할머니가 계시는 광주를 걸쳐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거쳐 영월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반역죄로 인한 죄는 거의 연좌죄로 처벌을 받아 가문의 3대를 멸족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이를 모자가 처벌되지 않았던 것은 당내 실권 세력이 안동 김씨였기 때문에 이들 모자가 생명을 연장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축되어진다. 이렇게 김병연의 모자는 목숨을 연명 할 수 있었으나 떳떳한 사대부로 지낼 수 없는 실정이었다. 명색이 반역죄로 조부인 김익순이 능지처사를 당하였고 집안에 배척을 당했기 때문이다. 문중에서 거의 추방된 이들 모자는 위와 같은 이유로 산속깊은 곳에서 권문세족임을 밝힐 수 없이 살아가야 했다. 영월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곳을 택하여 생활하면서 반가의 기풍과 안목을 갖춘 김병연의 어머니 함평 이씨는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가문의 내력에 대한 소상한 진상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만 정진을 하여온 김병연은 훗날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에 응시하여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시제 아래 장원급제를 하였다. 위와 같이 뛰어난 글 솜씨로 장원급제를 하게 된 난고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집안 내력에 대한 일들을 전해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문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멸시로 인해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난고 김병연은 죄인의식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 볼 수 없다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 하였던 것이다. 금강산 유람으로 방랑의 생활을 시작하여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제주도를 돌았으며 도산서원 아랫마을과 황해도 곡산 등지에서 몇해 동안 훈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전라도 동북땅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 하였다. (안내판 전문 옮김)

 

▣ 난고(蘭皐) 김삿갓(金炳淵)의 생애

 

선생은 안동 김씨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의 후예로 순조 7년(1807년) 3월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부(父) '안근'과 모(母) 함평 이씨 사이에서 인으로 출생하였고, 본명은 '병연'이고 호는 '난고'이다. 순조 11년(1811년) '홍령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시 선천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역적으로 몰려 폐족 처분을 받아 가족이 영월로 옮겨와 은둔행활을 하였다. 이러한 생활속에서도 모친 함평 이씨는 자식들에게 조부의 사연은 숨긴채 글을 가르쳤으며, 김삿갓이 20세 되던 해 영월 동헌에서 개최되었던 백일장에 응시하여 선천부사 김익순을 비판하는 글로 장원이 되었다. 그 후에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에 집을 나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詩로 읆어 조선시대 서민문학의 큰 틀을 마련하였다. 1863년 전라남도 화순군 동북에서 작고하여 그곳에 묘를 썼으나, 삼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모셨다. (안내문 전문 옮김)

 

 

 

 

마대산 어둔이골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김삿갓 생가

 

 

 

 

▣ 장   소: 솔고개 소나무/ 김삿갓 묘소

 

▣ 위   : 강원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81-1_(솔고개 소나무)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913_(김삿갓 문학관 주차장)

▣ 일   시: 2025년12월 17일(수)~12월 19일(금)_2박 3일 

               12/17 (1일차): 울산 출발~ 태백 구문소 탐방~ 태백산 민박촌_1박

               12/18 (2일차): 태백산 산행~ 태백산 민박촌_2박

            12/19 (3일차): 함백산 정암사~ 영월 선바위산 소원바위~ 영월 솔고개 소나무~ 김삿갓 유적지~ 귀울

▣ 날   씨: 1일차: 흐림/ 2일차: 맑음/ 3일차: 맑은 후 흐림

▣ 이   동: 자가운전【Total: 947km】 출발: 12/17(수)11:50~17: 50/ 귀울: 12/19일(금)출발 09:30~ 19:20

              (이동: 1일차: 291/ 2일차: 13/ 3일차: 335km)

▣ 경   비: 1일차: 태백농협마트 10,140원 편의점 충전기 외 16,200원, 태백산 국립공원 민박촌 60,000원(2박)

              2잋차: 민박촌 햇반 1,500원, 고토일청국장 저녁 37,000원

              3일차: 만항재 커피 3,000원, 삿갓반점 16,000원 / Total: 143,840원 (유류비 & 도로비 별도)

 

 

 

 

▣ Photo 후기

솔고개 도착

 

위로 단풍산이 병풍을 두루고 있고, 그 단풍산 자락에 명품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솔고개 소나무 안내문

 

전문을 위에 옮겨 놓았습니다.

 

 

 

 

 

 

 

 

 

 

 

입구 솟대

 

 

 

 

 

 

 

 

 

 

 

우~와~!

 

솔이 근사하게 생겼네요.

 

 

 

 

 

솔구개 소나무

 

명품솔과 마주하여, 한바퀴 돌며 여러장 담아 봅니다.

 

 

 

 

영원 솔고개 소나무는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던 단종과 연관이 있는데, 이 소나무는 단종이 승하한 후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고 그 혼령이 태백산을 향하던 중 이곳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노송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배웅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이라 합니다. 이 소나무는 산림청 선정 2025년 올해의 소나무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래 솔고개에 있는 마을 이름이 본래 중동면이었는데 지난 2021년11월부터 솔고개 소나무 이미지를 반영하여 '산솔면'으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한국 3대 명품송 중 하나,

 

솔표 상징 이미지 사용되어 현재는 광동제약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또한 예전 솔담배 이미지라고도 하는데, 모양이 많이 다르니 아닌것 같기도 합니다.

 

 

 

 

 

 

 

 

 

 

 

 

 

 

 

 

 

 

 

 

 

 

 

 

 

 

 

 

 

위 솔 군락

 

 

 

 

 

 

 

 

 

 

 

 

 

 

 

 

 

 

 

 

 

 

 

 

 

 

 

 

 

 

 

 

 

 

 

 

 

 

 

 

 

 

 

 

 

 

 

 

 

 

 

 

 

 

 

 

 

 

 

 

 

 

 

 

 

 

 

 

 

 

 

 

 

 

 

 

 

 

 

 

 

 

 

 

 

 

 

 

 

 

 

 

 

 

 

솔고개 소나무

 

주변에는 깨끗한 화장실과 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솔고개 소나무를 보고, 김삿갓계곡으로 진행합니다.

 

 


 

 

 

 

▶ 영월 김삿갓 유적지

김삿갓 묘역 입구 돌탑

 

 

 

 

 

난고 김병연(1807-1863: 순조7~철종14년)은 선천의 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최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자 노목 김성수의 구원으로 김영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에 숨어 살았다. 그러나 김익순에 대한 문제는 본인에게만 묻고 가문을 폐문 한다는 조정의 결정이 알려지면서 모친과 함께 황해도 곡산을 떠나 할머니가 계시는 광주를 걸쳐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거쳐 영월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반역죄로 인한 죄는 거의 연좌죄로 처벌을 받아 가문의 3대를 멸족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이를 모자가 처벌되지 않았던 것은 당내 실권 세력이 안동 김씨였기 때문에 이들 모자가 생명을 연장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축되어진다. 이렇게 김병연의 모자는 목숨을 연명 할 수 있었으나 떳떳한 사대부로 지낼 수 없는 실정이었다. 명색이 반역죄로 조부인 김익순이 능지처사를 당하였고 집안에 배척을 당했기 때문이다. 문중에서 거의 추방된 이들 모자는 위와 같은 이유로 산속깊은 곳에서 권문세족임을 밝힐 수 없이 살아가야 했다. 영월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곳을 택하여 생활하면서 반가의 기풍과 안목을 갖춘 김병연의 어머니 함평 이씨는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가문의 내력에 대한 소상한 진상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만 정진을 하여온 김병연은 훗날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에 응시하여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시제 아래 장원급제를 하였다. 위와 같이 뛰어난 글 솜씨로 장원급제를 하게 된 난고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집안 내력에 대한 일들을 전해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문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멸시로 인해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난고 김병연은 죄인의식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 볼 수 없다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 하였던 것이다. 금강산 유람으로 방랑의 생활을 시작하여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제주도를 돌았으며 도산서원 아랫마을과 황해도 곡산 등지에서 몇해 동안 훈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전라도 동북땅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 하였다. (안내판 전문 옮김)

 

 

 

 

 

 

 

 

 

 

 

 

 

 

 

 

김삿갓 묘역 주변의 조형물

 

김삿갓이 읊은 많은 시들이 새겨진 비석들이 있습니다.

 

 

 

 

 

 

 

 

 

 

 

길목 성황당인 듯...!

 

좌측으로 올라가면 김삿갓 생가와 마대산을 산행을 할 수 있습니다.

이곳부터 김삿갓 생가는 1.8km라고 이정표가 알려 주고 있습니다.

 

 

 

 

김삿갓 생가

 

 

 

 

 

 

 

 

 

 

 

 

 

 

 

 

 

마대산에서 발월하는 어둔이골

 

 

 

 

 

묘역 입구

 

 

 

 

 

 

 

 

 

 

 

소박한 김삿갓 묘역

 

 

 

 

 

▣ 난고(蘭皐) 김삿갓(金炳淵)의 생애

 

선생은 안동 김씨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의 후예로 순조 7년(1807년) 3월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부(父) '안근'과 모(母) 함평 이씨 사이에서 인으로 출생하였고, 본명은 '병연'이고 호는 '난고'이다. 순조 11년(1811년) '홍령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시 선천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역적으로 몰려 폐족 처분을 받아 가족이 영월로 옮겨와 은둔행활을 하였다. 이러한 생활속에서도 모친 함평 이씨는 자식들에게 조부의 사연은 숨긴채 글을 가르쳤으며, 김삿갓이 20세 되던 해 영월 동헌에서 개최되었던 백일장에 응시하여 선천부사 김익순을 비판하는 글로 장원이 되었다. 그 후에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에 집을 나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詩로 읆어 조선시대 서민문학의 큰 틀을 마련하였다. 1863년 전라남도 화순군 동북에서 작고하여 그곳에 묘를 썼으나, 삼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모셨다. (안내문 전문 옮김)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에게 망할 놈의 동네에선 쉰 밥을 주는구나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고향집에 돌아가 설익은 밥을 먹느니만 못하리라'.

 

걸식을 하다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숫자를 이용하여 표현한 詩로

방랑을 하면서 고향의 향수와 그리움이 짙게 묻어나는 김삿갓 마음이 보여집니다.

 

이렇게 2박3일의 여정을 마치고 먼길을 달려 안전하게 귀울, 늘~감사함 입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