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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영축산_백팔등의 비룡송 & 청수좌골 '17.4.16

 

2017.4.16 (일)

 

영남알프스 백팔등 절벽 끝단 조망바위 백팔등 조망처 암릉 끝,

좌청수골 건너 청수중앙릉 신록에 눈도 마음도 호강스럽다.

 

이번 산행은 백팔등 비룡송 보러, 역시 비룡송은 말 문이 막히는 명품이었다.

 

 

 

 

 

♧ 영남알프스에 대하여 ♧

 

남알프스는 고도 1000m 이상의 준봉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사자봉), 재약산(수미봉),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단조봉), 문복산, 고헌산 9봉을 말한다. 명확히 하자면 가지산릉의 상운산(1,114m)까지 더하면 영남알프스 1000m 이상의 준봉은 10봉이라 할 수 있다.

근래, 울주군에서 울주 7봉을 지칭 하는데, 필자는 찬성하지 않는다. 경북, 경남, 울산이면 어떤가, 영남알프스 맏형 가지산(1,240m)을 모태로 사방으로 뻗어 가는 광활한 영남알프스 산릉이 지역적 위치로 동강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음이다.

 

 

 

 

 

 

↑ 백팔등 명물, 비룡송【국제신문 산행팀 2007년 작명】

 

 

 

 

 

수령 알수 없는 솔, 아마도 내 나이의 서너배 될 듯

삶이 피곤할 때면, 이 영험한 솔에서 길을 찾으리라 !!!

 

 

 

 

 

 

 

 

 

 

 

 

 

 

 

 

 

↑ 비룡송 지나 백팔등 능선, 온통 진달래 꽃길 이어지고...

 

 

 

 

 

남알프스 영축산은 울산광역시 상북면 삼남면과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고도 : 1,081m). 북쪽 신불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영축산을 거쳐 시살등, 염수봉으로 이어진다. 양산천이 발원해 남류하며 남사면에 통도사, 백련암 등 많은 사찰이 위치하여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양산에 '취서산()은 군의 북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취서산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료에도 취서산(, )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통도사 일주문에는 '영축산통도사'라고 기록되어 있어 일찍부터 영축산이라고도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2001년 취서산, 축서산, 영축산, 영취산 등으로 부르던 산을 영축산으로 정식 고시하였다. 영축산과 시살등 일대가 가지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 지명은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인도의 영축산과 닮아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실제, 필자가 접했던 이곳은 2000년대 후반까지 취서산으로 부르고 있었고, 영축산으로 개명 된 것에 익숙해 질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 산이름: 영남알프스 영축산『백팔등(비룡송)』

 

▣ 산행지: 울산 울주 삼남면/ 경남 양산 원동면

▣ 코   스:  백련암 앞→ 파래소2교(청수골가든 우측) → 청수골합수부 → 좌청수골(좌측능선진입) → 백팔등 → 비룡송 → 

                   단조늪 → 단조성축 → 영축산정상 → 1060봉 → 숨은재 → 좌청수골(우지곡너덜) → 좌청수골 

                   청수골합수부 → 파래소2교 → 백련암 앞【산행종료】

                  [원점회귀] 입산 09:50 ~하산17:10 완료 _산행시간 의미 없음

▣ 일   시: 2017년 4월 16(일

▣ 날   씨: 맑음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 운전【왕복 98km】

 

♧ 영남알프스 영축산 『백팔등』산행 이모저모

 

남알프스 산행코스는 무궁무진 하고, 이름없는 골짝까지 모두 오르려면 평생을 오르내려야도 못다할 듯 하다. 오늘은 청수골가든과 산군들과의 심한 갈등의 골이 아직도 계속 이어지는 곳, 청수골가든으로 원점회귀를 해야 하는 곳, 백팔등을 오르기로 하고 오랜만에 청수골을 찾았다. 또한 이곳은 현대사의 동족상전의 신불산 빨치산 아픔이 있었던 곳이며, 더 오래전 임란때의 단조성이  왜놈에게 함락되고 후퇴한 아군이 시살등에서 전열을 가다듬어 최후의 활을 쏘았다는 곳, 역사의 아픔이 남아있는 현장이기에 그곳을 다른 시선으로 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공비지휘소가 있었던 전망대 팔각정봉(갈산고지)는 물론, 마주하고 있는 이곳 백팔등 능선에도 곧곧에 참호있는 것을 직접 확인하며 올랐던 백팔등 오르기, 능선에 흐들어지게 핀 진달래는 유독 붉어 그 민족상전의 현대사의 비극을 느낀 하루였다.

지난 일주일 지속적으로 연일 마신 술로 인해 몸 컨디션이 최악의 상태로 그야말로 초죽음 산행을 했지만 신록 우거지는 산릉은 언제 그런 역사의 아픔이 있었냐는 듯 눈부시게 아름다움움 뿜어내는 곳, 또 한 추억으로 남겨 봅니다.

 

청수골가든 근처, 주차할 곳 없어 백련암 앞까지 와서야 패킹 후 역주행 하여 파래소2교를 건너 청수골을 좌로 끼고 입산 합니다.

 

 

 

 

↑ 패킹 지점에서, 아래 백련암 위로 만길능선

 

 

 

 

↑ 파래소2교에서 다시...

 

 

 

 

↑ 청수골을 좌측으로 끼고...청수골 들·날머리

 

 

 

 

↑ 좌측으로 올라야 할 백팔등

 

 

 

 

         

 

↑ 좌)청수골 우)청수골

 

청수골 합수부에서 우청수골 건너 다시, 좌청수골 건너면 바로 백팔등 들머리인 셈이다.

 

 

 

 

↑ 우측으로 좌청수골 진행방향, 좌측 급비탈 바로 올라 붙어야...

 

 

 

 

↑ 첫번째 조망처 바위까지 된비알 올라야...

 

 

 

 

↑ 거의 허물어진 묘소에서 돌아 보고...배내골 건너 재약봉

 

그 아래 흉직한 터파기는 울산 함양간 고속도로 터널공사 중이라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 신불산 빨치산 사령부가 있었던 갈산고지...지금은 팔각정이 있는 곳

 

 

신불산 빨치산 지리산 빨치산에 이어 두번째로 치열했던 현대사의 아픔 남아있는 영남알프스 산하, 특히 이곳 배내골 일원이 그들의 본거지라 간략하게 남겨 본다.  

6.25 전쟁 당시 신불산 빨치산 대장은 ‘남쪽으로 진격하여 부산을 점령하라’는 뜻을 가진 남도부(南到釜, 본명 하준수)였다. 남도부는 1950년 6월 24일 강동정치학원 출신 유격대원 300여 명을 이끌고 남하한다. 그는 전투를 계속하며 7월 경북 청도군 운문산에 도착한다. 병력은 130여 명으로 줄었다. 처음에는 주암계곡에, 나중에 681고지인 태봉산에 사령부를 두고 빨치산을 지휘했다. 지리산과 마찬가지로 영남알프스는 1천 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세와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었기에 유격활동으로, 무엇보다 부산 경남 일대의 후방을 교란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신불산 빨치산은 북에서 내려온 유격대원을 중심으로 그 후 지방당원을 받아들여 최고 220여 명에 이르게 되고, 전쟁중 합류한 인민군 후퇴병력까지 합쳐져 약 1,000명 가까이 세가 확장되었다. 군경과의 교전 700여 회, 군경 사살 1800여 명, 각종 무기 약탈 800여 정, 각종 실탄 약탈 2만여 발, 민가 방화 100여 호, 민가 습격 500여 호, 군용열차 전복 20여 차량, 군용트럭 소각 또는 파괴가 200여 대에 달하는 등 후방 교란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남도부의 전투지역은 전쟁 기간 동안 한 번도 인민군에게 점령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적진 한 가운데에서 고립적인 전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평양으로 어떤 연락을 해본 적도 없었고, 보고와 지령 그리고 전투장비와 물자의 보급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정규군인 빨치산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총과 탄약은 전투를 통해 노획 가능했지만, 식량은 결국 지역 주민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보급투쟁에는 부대원 60~70명과 당원 20~30명이 동원되기도 했다. 밀양 재약산에 많을 때는 소 32마리를 방목하고, 하루에 2마리를 잡은 적도 있었다. 쌀밥 대신 소고기로 배불리 먹기도 했다. 전투부대들은 교대로 영양보충을 하며 돌아갔다. 하지만 빨치산이 보급투쟁을 하며 지역민에게 주었던 ‘원호증’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일 100여 명이 먹을 식량을 확보한다는 것은 빨치산이나 지역민에게는 엄청난 고역일 수밖에 없다. 당시 지역주민 200여 명이 살상 내지 피해를 입었다.

 

 

1950년 12월부터 토벌활동이 시작됐다. 언양·삼남·상북 주민을 동원하여 하룻밤 부역으로 미군 비행장을 닦고 정찰기를 띄우기도 했다. 비행기는 네이팜탄을 투하하여 산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사자벌에서는 대포를 쏘았다. 1951년 겨울 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서자 신불산에 1만 명을 투입하여 토벌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52년 2월과 3월의 신불산 공비 토벌작전과, 6월의 고헌산 옆에 위치한 아미산 작전으로 빨치산은 소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각 산간 오지마을을 소개시켜 빨치산의 보급투쟁을 막았다. 토벌대의 공격 등으로 소위 총에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어 1953년 겨울 대원 수는 37명으로 격감하였다. 결국 남도부는 하산을 결정하게 된다.


남은 빨치산들은 그 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휘부는 휴전 이후 당의 지령에 따라 하산하여 도시에 잠입하여 지구당 구축을 하려다 남도부처럼 검거되어 사형을 당했다. 검거된 일부는 혹독한 전향공작으로 죽기도 했지만, 일부는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였고, 또 일부는 북한으로 넘어갔다. 신불산 빨치산 남도부(하준수)는 전향한 부하의 밀고로 1955년 8월 서울 외곽에서 체포되어 34세 나이로 총살을 당했다.

지금도 신불산 갈산고지 주변에서는 당시의 잔재로 어렵지 않게 치열했던 전투 잔재물을 볼 수 있으며, 빨치산이 묻힌 돌무덤들이 현존하고 있다. 빨치산에서 살아남은 일부 사회에 복귀한 이들은 이들의 유해를 수습해야 한다고 하지만, 갈등과 대립의 남북관계가 이마저도 쉽게 허락치 않음이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다.

당시 간월산 죽림굴은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고, 얼마전 주암계곡에서 이들이 사용했던 무쇠솥들이 발견되었다.

팔각정봉 공비사령부와 신불서릉 끝자락 969봉의 공비지휘소 사이 왕봉골 파래소폭포는 빨치산들이 취사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토벌군과 기나긴 전투의 긴장속에서도 그들도 이곳에서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도 지었을 것이다.

 

 

 

 

 

 

 

잠시 암군을 만나고, 거칠게 몸통키운 솔들이 즐비한 곳을 치고 오른다.

넘어서는 봉우리마다 갈천고지 쪽으로 참호 흔적이 남아 있고,

그 거리가 적정 간격으로 여러곳 참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숙취로 속 뒤틀려 용변을 본 곳도 참호로 쓰였던 곳 이였다.

 

 

 

 

 

 

 

 

 

 

 

 

 

 

 

 

↑ 암릉 끝단 멋진 조망바위 도착

 

짱 앞으로는 수직 절벽이고, 건너편 청수중앙릉 신록과 산벗꽃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숙취로 인해 속이 뒤틀리고 구토까지 나니 죽을지경,

이 조망바위에서 한참 퍼질러 앉아 쉬었다.

 

그 순간, 경각하라고 짱 폰에 찍힌 조릿대 죽을 상 !

좀처럼 이렇게 퍼질러 앉아 쉬지 않는데...!

 

 

 

 

 

 

 

 

 

 

 

↑ 아래, 좌청수골 사면을 치 올라오는 신록

 

 

 

 

 

 

 

 

 

 

↑ 다시 공비사령부가 있었던 팔각정봉

 

 

 

 

↑ 파래소 폭포가 걸려 있는 왕봉골

 

 

 

 

↑ 신불서봉과 공비지휘소가 있었던 서릉 969봉

 

백팔등 오르며, 봉우리마다 빨치산이 구축했던 참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을 여러곳 확인할 수 있었다.

 

 

 

 

 

 

 

 

 

 

 

 

 

 

 

 

↑ 드디어 백팔등 명물, 비룡송

 

앞을 가로막는 오버행 암벽에 몸통을 꼬아가며 용트림 한 비룡송 뿌리, 경의롭기만 하다.

 

 

 

 

 

 

 

 

 

 

 

 

 

 

 

 

 

 

 

 

 

 

 

 

 

 

 

 

 

 

 

 

 

 

 

 

 

감동, 경의, 신비 함...늘 푸르르길 기원하고...!

 

 

 

 

↑ 암릉 위에 올라 내려다 본 비룡송

 

 

 

 

↑ 비룡송 위 암봉 위

 

척박하게 자라는 솔들은 서로 뿌리가 엉켜 서로를 의지하고 있고, 뿌리 내릴 때 없으니 바위 위로 옆 솔과 발을 뻗어 연명하고 있었다.

 

 

 

 

 

 

 

 

 

 

 

 

 

 

 

 

↑ 배내골 건너 천황, 재약산

 

 

 

 

 

 

 

 

 

 

↑ 비룡송 머리 뒤로 배내골 건너 향로산

 

 

 

 

↑ 건너편 만길능선과 신불서릉이 겹처 보이고, 우측으로 신불서봉과 우측끝 신불산 정상

 

 

 

 

↑ 당겨서 본 신불서봉과 우측 정상

 

 

 

 

↑ 좌측 팔각정 전망대 너머 능동산 가운데 멀리 가지산 상봉이 빼꼼히...

 

 

 

 

 

 

 

 

 

 

 

 

 

 

 

 

↑ 비룡송을 내려다 보는 짱

 

 

 

 

 

 

이후 백팔등이 끝나는 932봉 까지 진달래 꽃길이어지고...

높은 봉우리마다 참호로 쓰여졌던 흔적이 여러곳 확인 되었다.

 

 

 

 

 

 

 

 

 

 

 

 

 

 

 

 

 

 

 

 

 

 

 

 

 

 

 

 

↑ 함박등과 죽밧등이 올려다 보이는 조망바위 도착

 

 

 

 

 

 

 

 

 

 

↑ 좌측 살짝 고개 내민 영축산 정상

 

 

 

 

↑ 죽바우등 건너다 보고...

 

 

 

 

 

 

 

 

 

 

↑ 돌탑봉 도착...역시 명품 솔이 반겨주는 곳...

 

 

 

 

↑ 돌탑봉 명품솔과 영축산 정상

 

 

 

 

↑ 돌탑봉에서 올려다 본 신불산 정상

 

 

 

 

↑ 백팔등 932봉 오르며 다시 영축산

 

 

 

 

 

 

 

 

 

 

 

 

 

 

 

 

↑ 932봉 명품솔...백팔등 이정목 역활을 하고 있는 거송

 

 

 

 

↑ 유독 노란 제비꽃이 지천

 

 

 

 

↑ 좌측 죽바우등, 우측 향로봉...멀리 영남알프스 끝단 금오 천태산릉

 

 

 

 

↑ 당겨서...

 

 

 

 

 

 

 

 

 

 

 

 

 

 

 

 

↑ 단조성축을 만나고...

 

 

 

 

↑ 단조성축은 영축산 지나 천정삼거리까지 이어진다

 

 

 

 

↑ 단조늪 지대에서 올려다 보이는 영축산 정상

 

 

 

 

 

 

 

 

 

 

↑ 즐거운 오찬시간...하지만

 

 

 

 

 

 

 

단조늪 아래 샘터에서 조촐하지만 수라상 부럽지 않은 오찬시간...

하지만, 아직도 숙취로 속이 뒤틀려 제일 좋아하는 두부조림은 그림의 떡...

그래도 초여름 같이 더운 날씨라 에너지 보충하려 무조건 흡입...

 

장소 정리 후 땡볕 피할 때 없는 지대, 영축산 정상 올랐다.

 

 

 

 

↑ 앵초도 소담스러고...

 

 

 

 

 

 

 

 

 

 

 

 

 

 

 

 

 

↑ 늘 익숙산 풍경...영축에서 신불산

 

 

 

 

↑ 좌측부터 재약(수미봉) 천황(사자봉) 가운데 운문산 우측으로 가지산

 

 

 

 

↑ 지척인 영축산 정상

 

그런데 영축산 정상에 왠일인지 한산하고, 우리가 너무 늦었나, 것도 아닌데, 아마도 모두들 꽃산행 간듯 하다.

 

 

 

 

 

 

 

 

 

 

 

 

 

 

 

 

 

 

 

 

 

 

 

 

 

 

 

 

 

 

 

 

 

 

 

 

 

 

 

 

↑ 주말 이토록 한가한 영축산 정상을 오랜만에 보는 듯...

 

 

 

 

 

 

 

 

 

 

 

 

 

 

 

 

 

 

 

 

 

 

↑ 익숙한 곳,,,아리랑 쓰리랑리지

 

 

 

 

↑ 멀리 무룡산릉이 아련하다

 

 

 

 

↑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풍광

 

우측부터 1060봉, 함박등, 채이등, 도두라진 죽밧등 그 좌측으로 오룡산 연봉...멀리 어곡산 매봉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 건너편 천성산

 

 

 

 

↑ 한적한 영축 정상 내려서, 천정삼거리에서 1060봉 올라...무명봉 오르내려야...

 

 

 

 

 

 

 

 

 

 

↑ 근래, 바산봉이라 부르는 암봉

 

 

 

 

 

 

 

 

 

 

↑ 멀리 대운산

 

 

 

 

↑ 대운산 천성산릉

 

 

 

 

↑ 낙동정맥이 영축산에서 정족산 천성산으로 이어지고, 희미하게 운봉산에서 금정산으로 이어진다

 

 

 

 

 

 

 

 

 

 

↑ 특이한 지형

 

통도사가 가장 따뜻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하는 특이한 지형, 북쪽으로 영축산이 병풍을 이루고 있고 남향의 통도사, 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마치 가마솥 지형임을 알 수 있다.

 

 

 

 

↑ 함박등 도착 전 숨은재 도착

 

사거리인 셈, 뒤로는 은수샘으로 저 앞으로는 좌청수골로 진행할 수 있다.

우리는 저 출입금지목 뒤, 좌청수골 우골 너덜지대로 내려서지만, 이 길은 추천하고 싶지 않고...

좌청수골 물길 만날때까지 심한 너덜을 내려서야 한다.

더욱이 지난번 이곳을 어두울 무렵 하산했던 기억에 더 거칠게 생각이 드는 곳이다.

 

 

 

 

↑ 경사심한 너덜계곡 내려서 좌청수골 우측 지류도착

 

잔뜩 긴장했던 다리 잠시 쉼하고 시원한 계곡수 마시며 잠시 쉬고, 이후 희미한 길 이어 좌청수골 본류까지 진행한다.

 

 

 

 

 

 

 

 

 

 

 

 

 

 

 

 

↑ 단조샘에서 내려오는 본류 만나고...

 

 

 

 

↑ 본류 건너 진행

 

등로는 계곡 건너 이어지지만 족적 희미하여 주의하여야 하는 곳 숲 우거지면 길 따르기 쉽지 않은 지대다.

폭포 즐비한 좌청수골 골치기 미련은 버려야 하고...등로 따라 쭉~하산...

 

 

 

 

 

 

 

 

 

 

 

 

 

 

 

 

        

 

↑ 청수골 합수부 도착

 

마치 초여름 무더운 날씨 같았던 하루 발피로 풀기...하지만 아직은 계곡수 어름장 같아 오래 참을 수 없고...

 

 

 

 

 

 

 

 

 

 

↑ 청수골 하류 쪽 올려다 본 팔각정봉

 

 

 

 

 

 

 

 

 

 

↑ 파래소2교에서 올려다 본 청수중앙릉 올려다 보고...

 

 

 

 

 

 

다시 원점으로 안전하게 도착, 또 다시 다음 산행을 생각합니다.

하루 산행, 또 이렇게 힐링 듬뿍 주는 "산" 그저 행복과 감사 함 입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