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가산(架山)의 상징 가산바위가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
오래전부터 다녀와야지 생각만 했던 곳, 얼떨결에 칠곡 가산을 다녀오게 되었다.
이른새벽, 짱을 대구공항에 내려주고 도착 한 가산 산문, 주말이지만 한적하기만 하고...
복수초 발에 밟힐 정도 흐들게 피어 있는 가산산성을 한바퀴 애돌아 보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격고, 왜세 침략을 대비해 축성 했다는 가산산성, 하지만 이곳
가산성은 현대사의 비극 6.25전쟁 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피비린내 나는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다.
↑ 세계 최대의 복수초 군락으로 알려진 가산
복수초 꽃말 : 영원한 행복(동양), 슬픈 추억(서양)으로 꽃 이름으로 보면 무섭기까지 하지만, 한자로 福(복복)壽(수명수)草로써 장수를 기원하는 식물이다. 복수초는 일년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우며, 눈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가산바위(가암)는 가산산성 서북쪽 성벽 시이에 위치한 바위로서 "가암"이라고도 부른다. 이 바위 상면은 약270m2 (약 80여평) 규모의 넓은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사방을 원히 전망할 수 있어 대구광역시의 전경을 한눈으로 볼 수 있다.
바위 상면 동단에 큰 구멍이 나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고승이었던 도산(827~898)이 산천을 편력하면서 지기(地氣)를 잡기 위해 이구멍에다 쇠로 만들 소와 말 형상을 묻어 지기(地氣)를 눌렀다고 한다.
↑ 가암바위 음각
가암 한켠 "가암"을 알리는 한자가 멋드러지게 음각되어 있다.
↑ 가산 정상 아래_유선대
↑ 유선대 아래_용바위
용바위 위치가 혼선을 빛고 있지만, 유선대 아래에 있는 암군이 용바위다.
▶ 유선대 기암 사이로 본 용바위
▶ 가산산성_동문
가산(架山)은 가산면 가산리와 동명면 남원리에 걸쳐 있는 이 산성은 내·중·외성 3성 구조의 성이다. 가산산성은 인조 17년(1639년) 9월 경상감사 이명웅의 지휘로 쌓기 시작했다. 그는 인근 고을의 많은 남정(男丁·15살 넘은 사내)을 징발해 공사를 벌여 이듬해 4월 둘레 약 4㎞의 내성을 준공했다. 성에는 동·서·북문 등 3개의 대문과 함께 8개의 암문이 설치됐다. 또 4곳의 포루와 1곳의 장대, 21개의 샘과 우물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 공사에 10만여 명의 막대한 인력과 자금이 동원되고 공사 도중 많은 사람이 죽어 민심이 동요하자, 이명웅은 여러 차례 탄핵을 받고 임기를 못 채운 채 체직되고 말았다.
외성은 내성이 완성된 지 60년이 지난 숙종 26년(1700년), 경상감사 이세재가 외성을 쌓았다. 외성은 둘레 약 3㎞로, 남문과 암문 3개가 설치됐다. 이듬해에는 외성 안에 천주사(天柱寺)를 짓고 여기에 승창미(僧倉米)를 보관했다고 한다. 이 무렵 가산산성에서 승려를 모집해 훈련을 시켜 승장(僧將)을 뽑는 제도가 있었으며, 이렇게 선발된 승장과 승병들이 성 일부의 수비를 담당했다는 기록이 '증보문헌비고'에 나와 있다.
중성은 영조 17년(1741) 경상감사 정익하의 주도로 축성됐는데, 길이 460m에 중문과 문루 1개가 만들어졌다. 중성은 비축미를 보관하는 데 사용했으며, 중요 시설은 대부분 내성 안에 있었다. 가산산성은 행정 중심지이기도 했다. 내성이 완공되던 해 이곳에 종3품 도호부사가 다스리는 칠곡도호부를 설치하고 군위·의흥·신녕·하양 네 현을 관장케 했다. 그러나 불편한 점이 많아 순조 19년(1819년) 당시 경상감사로 있던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의 건의로 도호부가 팔거현으로 옮겨졌다.
↑ 가산_장대터 정상석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왜구 침략에 대비해 축성한 요새화 된 가산산성, 하지만 이곳은 현대사의 비극 동족상간의 6.25전쟁 때 피비린내나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북한군 게릴라 부대와 북한군 제1사단 제14연대는 궤멸되었고, 포위망을 벗어난 북한군 병력도 432고지 골짜기에서 완전히 궤멸되었다. 전투에서 국군 제10연대 제1대대의 경우도 제4중대의 병력 180명이 장교 1명과 병사 10여 명이 남게 되었고, 제1,2,3중대도 각 40명에서 70명만 남고 모두가 전사한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결국 수많은 민초의 피땀으로 쌓아 올린 가산성은 현대사에 들어 많은 상처를 남기고, 포격과 폭격으로 귀중한 문화유적이 훼손 되었다.
↑ 할배 할매바위
온화한 할매의 미소가 풍겨 오는 모습이 묘하다.
↑ 팔공산 제2석굴암_아미타여래 삼존석불(석굴)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은 이곳에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석굴로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모신 곳이다. 이 석굴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인 신라 눌지왕 대에 아도화상이 수도전법한 곳이며, 문무왕 대에 원효대사가 본존불과 본분불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 곳이다. 이 삼존 석굴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모태가 되었다.
경북 군위 부계면 남산리 팔공산 연봉 북쪽에 위치한 석굴암, 제2석굴암으로 알려지며 근래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 석굴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 109호로 지정 되었다.
▣ 산이름: 가산_가산산성
▣ 위 치: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동명면 남원리
▣ 코 스: 탐방안내소_P → 남포루 → 암문 → 가산바위 → 서문 → 중문 → 유선대 → 가산(정상) → 동문(왕복) → 할배, 할매바위
치키봉 → 천주사터 → 탐방안내소_P 【07:25_입산~13:30_하산】
▣ 일 시: 2019년 4월 13일(토)
▣ 날 씨: 맑음
▣ 일 행: 조릿대 홀로
▣ 이 동: 자가운전(왕복 260km) _ 울산출발 05:00 _ 도착 17:00
▣ 비 용: 없음
♧ 포토 에세이 ♧
오래전부터 가보려 했던 곳 가산,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후순위로 밀리고 말았던 곳이다. 짱을 대구공항에 내려주고 어디를 갈지 목적지 정한 곳 없는 터, 멀지 않은 가산으로 이동,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한적한 주차장에 홀로 뎅그런히 내려 산행채비를 하였다.
팔공산과 함께 가팔환초로 종주길을 열어 갈 수있는 곳, 하지만 처음 찾는 가산이기에 가산성을 한바위 돌아 보는 걸음을 하기로 하고 간편한 차림으로 짝꿍 없이 홀로 산문을 들어 서 유유자적 돌아 본 가산산성 걸음 한 추억으로 남겨 봅니다.
2019.4.13(토) 07:20
진남문 주차장도 휑~하고, 탐방안내소 앞에 패킹 후 산행채비 하고
산 아래는 이미 벗꽃이 지고 있지만 이곳은 아직 벗꽃이 한창이다.
좀 이른 시간이라 휑한 산문을 홀로 들어 서려니 좀 어색하기까지 하다.
↑ 잠시 들어서면 갈림길_ ↗치키봉 ↖동문, 남포루
↖ 외성 성곽, 남포루 ↑ 동문
이곳에서 편안한 길 버리고 좌측으로 계곡건너 성곽 능선을 따른다.
약 2km 된비알 이어지고, 계속 무너진 성축을 따라 오른다.
↑ 첫번째 조망처_아래 그림
↑ 계속 이어지는 가산산성 성축
지루할 무렵부터 간혹 나타나는 암군이 지루함을 달래고...
쭉~쭉 뻗은 솔들이 도열하고 있으니, 솔향기 그윽하였다.
더해 간간히 반겨주는 진달래는 솔 사이 스며든 햇살에 진분홍 뿜어내니 눈도 호강스럽다.
차츰 거대한 암군이 자연성벽을 이루고...
위 바위를 올라서면 쌍바위 조망처에 올라서게 되는데...
뒤에 똑 같은 바위가 있고, 이곳에 올라서면 휼륭한 관망대가 되었음직 하고...
아래로 칠곡 남원리가 내려다 보이고 뒤로 지마산이 분명할 것이다.
현대사의 비극 6.25전쟁 시 이곳 가산산성은 물론 저곳 지마산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교전 된 곳이다.
최근에서야 전사자 유해 발굴 등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알려지고 있으니 다행스럽다.
↑ 남원리 건너 지마산
거대한 암군이 켜이켜이 쌓여 있고, 오르기 그닥 별 어려움 없지만 계단 덱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을 올라서면 사방팔방 일망무제 조망 펼쳐지는 곳, 바위 위에 서면 아래로는 까마득한 절벽이다.
↑ 절벽 암봉 고스락
저곳에 올라서면 앞으로 까마득한 오버행 절벽이 간담이 서늘하게 한다.
↑ 동문이 있는 성축이 보이고...
↑ 도덕산 응해산 거저산...나래비 서 있고...
↑ 팔공산 연봉이 쭉~펼쳐진다
살짝 당겨서 본 팔공산 연봉이 박무속에 은은히 다가오고...
아래 가팔환초...팔공산과 우측으로 환성산 초례봉까지 가늠 된다.
팔공산 연봉 앞에 가산성을 애돌아 가야 할 치키봉이 건너다 보인다.
↑ 당겨서 본 팔공산 비로봉
암봉 고스락에서 조망 즐긴 후 내려서고, 앞으로 까마득한 절벽이 궁굼해 기웃 거렸지만 사진 담기가 여의치 않다.
↑ 올라 서 조망 즐겼던 암봉 고스락
절벽 암봉까지 된비알 올라서니, 그 후로 걷기 편안한 능선길은 계속 성축과 함께 이어진다.
잠시 더 진행하니 성축이 감아 돈 범상치 않은 터에 도착...바로 "남포루" 터라고 한다.
▶ 잘 복원된 성축이 턱 버티고 있다
↑ 저쪽으로 내성벽이 이어지고...임도 뒤 소나무 지나서 동문이다
철옹성 같은 성벽이 웅장하고, 동원 되었던 옛 민초의 노역이 얼마나 고행이었을까...짐작 가도도 남는다.
또한 이곳에서 현대사의 비극 6.25 전쟁 시 피비린내 나는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고 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다행히 성축 주변으로 잡목을 제거하고 무너진 성축을 계속 복원하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긴 하다.
↑ 암문(비밀문)
↑ 마치 비수인 듯
↑ 성안
↑ 성밖
↑ 퇴마식 성축
외성 성벽 안은 흙으로, 다지고 성벽을 쌓은 방식이다.
멀리 애돌아 가야 할 치키봉 저곳까지 성축이 이어지고, 우측으로 흘러내린 능선으로 계속 성축이 이어지고 진남문에서 만난다.
성축 따르는 길에는 제비꽃 양지꽃 현호색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또 다시 암문이 나나타고, 아래 뒤 돌아 본 여릿재 갈림목이다.
↑ 앞에 중문 갈림목
좌측으로 가면 가산바위가 우측 성축을 따르면 중문이다.
↑ 가산바위 쪽으로 향하며 돌아 본 중문 갈림목
드디어 범상치 않은 크기의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고, 저것이 바로 가산바위 임을 금새 알 수 있다.
그저 유순한 산릉에 유독 덩치 큰 암괴가 버티고 있으니 어느누가 보아도 한눈에 가산바위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 가산바위 구석구석 살피기
가산바위(가암)는 가산산성 서북쪽 성벽 시이에 위치한 바위로서 "가암"이라고도 부른다. 이 바위 상면은 약270m2 (약 80여평) 규모의 넓은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사방을 훤히 전망할 수 있어 대구광역시의 전경을 한눈으로 볼 수 있다.
바위 상면 동단에 큰 구멍이 나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고승이었던 도산(827~898)이 산천을 편력하면서 지기(地氣)를 잡기 위해 이구멍에다 쇠로 만들 소와 말 형상을 묻어 지기(地氣)를 눌렀다고 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조선시대 관찰사 이명웅(李命雄)이 성을 쌓으면서 없애버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 가산바위와 건너 백운산
▶ 가산바위 주변 복수초 군락지
가산바위 주변은 온통 복수초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놀라울 정도로 끝없는 군락지다.
산걸음 하는 곳마다 발에 밟힐세라 조심스러웠다.
세계 최대의 복수초 군락지라고 하니 과연 놀라움 그 자체였다.
가산바위 아래 복수초 군락을 대충 살펴보고, 가산바위에 오른다.
이곳의 상징인 가산바위 위가 얼마나 넓은지 확인하기 위함이고도 하지만
궁굼증을 풀기 위해 거를 수 없은 것 당연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 드간다.
↑ "가암"음각
우선 이곳부터 확인, 멋드러진 가암 음각이 새겨져 있다.
↑ 가암 음각 아래로 이런 기암도 버티고 있고...
↑ 또 다른 음각이...
↑ 가압 북서쪽으로 유학산
6.25전쟁 시 낙동강 전선을 두고 이곳 칠곡은 어느곳이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 가산바위에서...걸어 온 성축 바라보고...
↑ 가산바위 돌구멍
신라시대 고승이었던 도산(827~898)이 산천을 편력하면서 지기(地氣)를 잡기 위해
이구멍에다 쇠로 만든 소와 말 형상을 묻어 지기(地氣)를 눌렀다고 하니, 내려서 석굴을 확인 할 예정이다.
가산바위에 오래동안 있었지만, 오는 산님들 없고 홀로 셀카 놀이까지 하며 즐긴다.
충분히 가산바위를 음미하고, 내려서 가산바위를 한바퀴 돌아 보았다.
가산바위에서 내려다 보았던 기암에 올라 보았다.
그리고 사진 얹힌 바위에 올라 가산바위롤 올려다니, 역시 웅장하다.
아래 벌통이 한개 자리잡고 있고, 눈살 찌쁘리게 하는 건 온갖 쓰래기와 깨진 술병 투성이다.
행여 깨진 술병 유리에 발 다칠까 염려스러울 정도, 깨진 병 유리가 너무 많아 피해 걷기 어려울 정도다.
조심스럽게 깨진 병을 발로 치워가며 가산바위를 애돌아 보았다.
건너편으로 건너려면 절벽, 조심스러운 구간도 있고, 암질 약하니 조심히 건너와 돌아 보았다.
가산바위 오버행 아래 이런 석굴이 있고, 서슴치 않고 석굴 내부로 들어 섯다.
하지만 밀리는 걸음에 깨진 술병들이 날카로워 조심스럽고...
들어서니 석굴이라기 보다는 침니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건너편까지 가산바위가 갈라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저쪽으로 통과 할 수 는 없다.
더 들어 서 위를 올려다 보니, 위에서 내려다 보이던 돌구멍이다.
지기(地氣)를 잡기 위해 이구멍에다 쇠로 만들 소와 말 형상을 묻어 지기(地氣)를 눌렀다고 하는 곳인 듯 하다.
↑ 위로 뚫힌 돌구멍
↓ 들어 온 곳 내다 보고...
들어 온 곳을 내다 보니 섬듯 함 전해지고, 돌구멍을 확인하고 천천히 나섯다.
도선이 땅의 기운을 잡았다는 가산바위의 전설이라지만, 현장을 확인하니 전설과 딱 맞으니 아이러니 하다.
석굴을 빠져 나오니 위치가 성벽 아래라 한참 성벽 아래로 따라 가다 성벽이 무너진 곳으로 올라야 했다.
↑ 성벽 아래를 따라 가다 돌아 본 가산바위와 성벽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무너진 성벽이 있어 올라서 다시 가산바위로 빽 하였다.
보는 각도에 따라 가산바위는 형상이 다르다.
가산바위를 한바퀴 애돌아 보고, 무너진 성축을 따라 더 진행하여 서문으로 향했다.
북문을 글타치고 서문까지는 꼭 확인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유유자적 어디를 가든 어떠랴...!
↑ 서문으로 향하는 성벽
▶ 서문 도착
서문 역시, 크지 않지만 암굴과 달리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다.
하지만, 성축이 배불러 와서 통제를 하는 듯 막아 놓았다.
그러나 서문을 들어 서고, 개별꽃 한무리 서문 않에 꽃피우고 있다.
↑ 서문에 피어 있는 개별꽃
↑ 서문 안에서_성안
↑ 서문 안에서_성밖
↑ 가산산성_서문
▶ 성안에서 본_서문 전경
서문을 확인하고 묵은 임도를 따라 중문을 향하는 길 주변은 온통 복수초 군락으로 흐드러지게 꽃 피어 있다.
세계 최대의 복수초 군락이라고 안내하고 있고, 그야말로 온 산이 복수초로 뒤덮혀 있다.
▶ 세계 최대의 복수초 군락인 가산
어디에 뷰를 들이대도 이런 복수초 군락...과연 세계 최대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최대인 복수초 군락을 따라 걷노라니, 어느새 중문이 나타난다.
▶ 가산산성_중문
중문은 새로 복원을 했는지 깔끔한 성벽과 중문이 잘 복원 되어 있다.
중문_ 한쪽은 사각, 다른쪽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중문을 확인하고, 임도길 버리고 계속 성축을 따라 진행 하였다.
그런데, 보고도 믿기지 않는 풍경 성축을 따라 안부에 내려서니 제법 큰 저수지가 나타난다.
이런 산정에 이런 저수지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가산산성에서 한 식수원임이 분명했을 터...!
↑ 가산산성 내 저수지
↑ 지나온 성축을 돌아보고...
↑ 가야 할 성축
가산 정상을 향해 제법 경사가 급하다.
↑ 삼칭이 능선 암봉 규모가 대단하다.
↑ 지나 온 곳 돌아보고...
↑ 저위가 성벽이 180도 꺽이는 돌출부인 듯
저곳에 올라서면 이곳 가산에서의 최고의 하일라이트 구간이라 할 수 있다.
▶ 성축 돌출부에서 조망 즐기기
↑ 가산 정상과 유선대(가운데 바위)
↑ 유선대 기암
↑ 팔공산 연봉
비록 이번에 조망 부족해 좀 아귀운 조망이지만, 그래도 가늠할 수 있으니 충분하다.
↑ 돌출부 성축에서 유선대 향하며...
돌출부 성축 아래 삼칭이 능선 암괴들이 범상치 않다.
성벽 아래로 내려서 저곳으로...바로 저곳이 "유선대"다.
설치된 덱 계단을 넘어서면 아래로 수직 절벽, 조망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곳이다.
↑ 유선대
아래로 절벽이라 안전 난간이 설치 되어 있다.
그리고 유선대에서 10시방향 아래로 용바위가 내려다 보인다.
▶ 용바위
↑ 유선대에서 내려다 본_용바위
용바위가 이곳이다 저곳이다 혼선을 빛고 있지만, 이곳이 용바위다.
↑ 유선대에서 바라 본 삼칭이 능선
삼칭이 능선은 난공불락 암봉이 서너개 흘러 내린다.
유선대 기암 사이로 내려다 본 용바위가 위태해 보인다.
유선대 팬스를 넘어서면 이런 기암사이로 용바위를 볼 수 있다.
↑ 유선대 나서 성축 아래로 가산 정상으로...돌아 본 유선대
↑ 가산 정상 오르며...
돌아 본 유선대...그리고 삼칭이 능선의 암봉이 험하다.
↑ 무명 암봉
가산 정상 바로 아래 솟아 있는 암봉도 대단하다.
↑ 또 다른 기암
성축을 따르면 볼 수 없는...성축에서 내려서 절벽길을 걸음해야 볼 수 있다.
▶ 가산 정상 도착
↑ 가산 정상에서 바라 본 팔공산 연봉
↑ 가산 정상에서...유선대와 삼칭이
↑ 조금 아래에 있는 정상석
▶ 넓은 가산 정상부는 "장대터"라 알리고 있다.
장대터는 가산의 해발 901m 정상부에 있다. 장대는 돌과 흙으로 쌓아 다진 부지에 정면 5킨, 측면 2칸의 ㅡ 자형으로 지은 서향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춧돌 13개가 확인 되었고 가로 길이는 10m에 이른다. 가운데에 중심이 되는 칸의 가둥의 간격을 넓게하여 조망이 쉽도록 하였고 건물 앞에는 빈 공간을 두었다. 이 건물이 세워지기 전후에 조성된 다른 건물의 기단, 아궁이, 줄고래 등이 중복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가산산성이 지어진 시기를 추정 할 수 있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명문기와)와 전돌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장대터는 발굴조사 후 흙으로 덮어 보존하였다.
라고 안내되어 있다.
↑ 주추돌을 나열해 놓았다
장대터에서 발굴된 기와 등을 가산 정상에 이렇게 무더기로 쌓아 놓았다.
가산 정상에서 비로소 두팀의 산님들 만나고...나는 다시 홀로 계속 성축을 따라 치키봉을 향했다.
일찍 시작한 산행이라 시간도 여유롭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성축 밖으로 계속 기암들이 나래비 서있고...하나하나 눈에 담고 뷰에 담으며 천천히 걸음 하였다.
↑ 선바위
↑ 돌아 본 가산 정상
치키봉으로 진행하려면 가팔환초 종주길...한티재로 진행해야 한다.
나는 동문을 확인하기 위해 200미터 거리인 동문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 올 예정...
제법 내리막을 내려서니 동문이 보이고, 정교한 성벽과 성문이 근사하다.
▶ 가산산성 동문
↑ 동문 안
↑ 동문 밖
정교하게 쌓은 성벽과 동문, 그야말로 예술이 따로 없다.
본래 손재주 좋은 우리 민족이지만, 이건 하나의 예술이다.
동문을 걸어 잠구었던 홈, 동문을 지탱하고 있는 천정부는 과연 예사롭지 않다.
▶ 가산산성에 대하여_클릭: 크게보기
몆시간 전에는 저곳서 이곳을 보았는데...성축 애돌아 저곳을 보고...
동문 밖에서 성축으로 이어지는 길은 복수초 군락지 보호를 위해 막아 놓았다.
하는 수 없이 내려왔던 성벽 상부 길 따라...다시 빽 코스 한다.
↑ 한숨 돌리며...올려다 본 가산 정상
↑ 가산 정상과 삼칭이 능선 암봉
계속 무너진 가산성축을 따라 가는 길...출출하니 잠깐 요기하고 간다.
혼자라 짱이 간식으로 먹으라고 준비한 어묵탕으로 오찬을 즐긴다.
찬도 없이 먹는 어묵탕이지만, 사내진미 따로 없다.
가끔 치키봉을 경유해 올라 오는 산님들 몆몆 만나고, 자리 정리하고 갈길 간다.
↑ 이런 산수화 바위도 만나고...
고도가 낮아 지니 진달래 꽃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잠시 후, 할배 할매바위를 만난다.
▶ 할배 할매바위 도착
할매바위...온화한 미소가 묘한 느낌으로 전해 진다.
↑ 할배 할매바위
할매 할배바위를 뒤로하고 향하는 길...우측으로 멋진 전망처가 있다.
일명 발코니 전망바위다.
↑ 발코니 전망바위
↓ 조금 더 가면 쉬어가기 좋은 평상바위
무너진 성축이 계속 이어지고, 치키봉 향해 오르는 길은 전망은 없지만
호젖하게 걷기는 그만이고...온통 꽃피운 제비꽃이 바람결에 꽃잎 나붓긴다.
우측으로 천주사터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만나고, 얼마 남지 않은 치키봉을 오른다.
↑ 치키봉
실제 치키봉을 이곳에서 조금 더 가야 하지만, 별의미 없고 성축 따라 우측으로 내려 선다.
내려서는 가산성축은 많이 허물어져 있고, 또 다른 기암이 빼꼼이 홀로 가는 나그네를 보고 있다.
↑ 너는 어디로 가려고 하니...ㅋ
↑ 길림길_↑ 성축따라 가는 길 →천주사터 가는길
굳이 무너진 성축 따를 필요 없을 듯, 천주사터가 궁굼하여 우측으로 하산...!
한동안 내려서면 규모가 상당히 큰 축대가 남아 있고...바로 천주사 터가 분명한 듯 하다.
그리고 주변으로 오래된 고목과 괴목이 즐비하고, 무너진 축대가 길게 이어진다.
↑ 임도를 만나고...쉼터 누각이 있다.
내려서는 길...임도 포장길 따르기 싫어 옛 등로 따라 내려 선다.
내 키보다 더 큰 입석이 서있고,
한쪽 입석은 쓰러져 있는 걸 보니 인위적으로 세워 놓은 듯 하다.
잠시 후, 일찍 출발했던 곳, 원점회귀 하게 된다.
주인 잘못 만나 늘~고생하는 마이카, 기다리고 있는 탐방 안내소 주변,
함박눈처럼 내리는 꽃비 맞으며 가산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군위 IC로 들어 서야 하니, 근처에 있는 제2석굴암을 다시 찾아 보았다.
▶ 제2석굴암 도착
↑ 제2설굴암_삼존불과 모전석탑
팔공산 제2석굴암_아미타여래 삼존석불(석굴)
경북 군위 부계면 남산리 팔공산 연봉 북쪽에 위치한 석굴암, 제2석굴암으로 알려지며 근래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 석굴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 109호로 지정 되었다.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은 이곳에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석굴로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모신 곳이다. 이 석굴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인 신라 눌지왕 대에 아도화상이 수도전법한 곳이며, 문무왕 대에 원효대사가 본존불과 본분불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 곳이다. 이 삼존 석굴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모태가 되었다.
↑ 모전석탑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좌상_경북 유형문화재 제258호
이 불상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으로 광배는 없고 대좌는 일부 파손되어 사찰에서 보존되고 있다.
머리는 나발에, 육계는 평평한 편이며 얼굴은 풍만하고 목에는 삼도를 표시하였으나 목은 짧은 편이다.
수인은 전형적인 비로자나불상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각부의 모습은 양감을 느끼게 한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삼존석불사 앞...그윽한 솔 향이 일품이다.
군위 IC 들어서기 전, 팔공산 연봉 한번 올려다 보았다.
"산"은~언제나... 행복과 감사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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