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_ 2019. 5. 18【 토】
밤새 내리던 비는 잦아 들었지만, 잔뜩 흐린 날씨 속에 덕유산 설천봉으로...!
덕유와 적상산 이곳 저곳 돌아보며 힐링 가득한 3일째 여정을 가져 보았습니다.
♧ 덕유산 설천봉 풍경 ♧
적상산_천일폭포
가을 단풍이 한국 백경중 하나로 손꼽히는 적상산(1,034m)의 천일폭포는 높이 약 30m의 천연 폭포다. '하늘 아래 단 하나뿐인 폭포'라 해서 천일폭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병풍처럼 둘러싼 암벽 사이로 쏟아지는 한 줄기의 비폭(飛瀑)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 장관을 이루며 심산유곡의 정적을 깬다. 보통 탐방객들은 별 기대를 않고 가지만 막상 그 아래에 서면 웅장한 모습에 감탄을 하게 된다. 주차장에서 약 0.3km 떨어져 있다. 걸어서 5~10분 정도면 폭포 아래에 도착할 수 있다. 주변에 머루와인동굴, 정상분지의 양수발전소 상부댐인 산정호수(적상호), 안국사, 적상산전망대 등 볼거리가 많다. 머루와인동굴을 구경하고 승용차로 적상산 상부댐으로 가는 도중에 잠깐 들러 구경하기 좋다.
적상산_안국사
적상산 암국사는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1277년(충렬왕 3)에 월인(月印)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지금 절이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선원·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천불전·요사·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적상산성
적상산성은 사적 제146호. 석축으로서 둘레는 약 3㎞에 이른다. 적상산은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 고려말에 최영이 산성축조를 건의했다. 그러나 조선 세종 때 최윤덕이 그 입지조건을 살펴본 후 중지시켰다. 1639년(인조 17) 박황의 건의로 수축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벽의 둘레는 1만 6,920척, 높이 7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성 안에는 4개의 못과 23개의 우물이 있었다. 이곳에는 1612년(광해군 4) 실록전, 1614년 사각, 1641년 선원각·군기고·대별관, 1643년 호국사 등이 건립되었다. 이러한 건물은 성 안에 거주하는 별장·참봉·승려들에 의해 보호·관리되었다.
적상산 전망대
한국 100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 적상산 전망대, 별비가 쏟아지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덕유산과 적상호, 무주호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자동차로 올라 올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전상산 전망대의 구조물은 무주 양수발전소의 조압 수조지만. 이곳을 전망대로 조성하여 아름다운 야경은 물론, 주변 덕유산과 지리산 등 훌륭한 조망처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 3일차】비오는 덕유산 & 적상산 여정
▣ 일 시: 2019년 5/17(금)~5/19(일)_2박3일
1일차: 지리 서북릉 바래봉 철쭉산행_지리산한화리조트
2일차: 화엄사, 연기암, 수락폭포, 구룡폭포, 선유폭포, 정령치, 덕유산 이동_덕유산팬션
3일차: 덕유산 설천봉 리프트 왕복 (5/22_수요일까지 향적봉 길 전면통제 중) 적상산_천일폭포, 안국사, 전망대
▣ 날 씨: 1일차_맑음, 밤부터 비/ 2일차: 비 & 바람_간혹 소강상태/ 3일차: 비 & 바람_간혹 소강상태
▣ 일 행: 조릿대와 짱
▣ 이 동: 자가운전(왕복 810km) _ 울산 출발 5/7(금) 07:00 _5/19(일) 울산 도착 19:30
▣ 비 용: 주차비: 5,000원/ 한화리조트: 95,000원/ 심원첫집(더덕정식) 2인: 40,000원/ 청기와 뜰(흑돼지 제육볶음) 2인: 32,000원/
덕유산팬션: 50,000원/ 덕유산 리프트 1인 왕복: 16,000원_32,000원/ 큰손식당(매운탕, 도리뱅뱅이): 52,000원
_유류비, 도로비 별도
▶ 덕유산 설천봉 곤도라 탑승장
▶ 설천봉은 운무만 가득
▶ 오는날이 장날...향적봉 코스는 폐쇄
▶ 다시 내려 와
▶ 적상산 전망대로 이동
▶ 천일폭포 구경하러
▶ 적상산 천일폭포
▶ 적상산 산정호수
▶ 안국사 한바퀴
▶ 적상산성
적상산 적상산성은 사적 제146호. 지정면적 214,975㎡, 둘레 약 3,000m. 현재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史庫址)가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성은 석축으로 둘레 1만6920척, 높이 7척이었으나 이제는 폐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1612년(광해군 4)에 실록전(實錄殿)이, 1614년에 사각(史閣)이, 1641년(인조 19)에 선원각(璿源閣)·군기고(軍器庫)·대별관(大別館)이 1643년호국사(護國寺) 등이 세워졌는데, 이들은 별장·참봉·승장 들이 거느리는 무리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불과 9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성이 있는 상산(裳山)은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하는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이기도 하였으며, 산 가운데에는 넓은 분지가 있다.
고려 말에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만은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최영(崔塋)은 이 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하였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崔潤德)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 다음백과]
▶ 적상호 전망대 휴게소
▶ 덕유산은 아직도 운무속
▶ 내려다 본 무주호
▶ 올려다 본 적상산 정상
▶ 큰손식당(매운탕, 도리뱅뱅이)
▶ 올려다 본 좌)적상산 휴게소 우)적상산 정상
▶ 무주호에서 올려다 본 적상산
▶ 귀울길_비 엄청 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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