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8(일)
오래전 궁굼했던 운문호 상류 '공암풍벽'을 이제 찾게되고
비슬지맥 구룡산에서 뻗어 내려온 긴 산릉이 운문호에 스미는 곳
긴 암벽 공암이 역사적 가치가 큰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공암 '부앙대' 암봉에 올라 본 운문호 상류 육장군 유래가 있는 장육산이 조망된다.
장육산을 중심으로 좌측은 구룡산에서 발원하는 마일천과, 우측에는
단석산에서 발원하는 동창천이 합수되어 운문호에 스미지만, 운문호가 있기 전에는
이곳 공암에 가로막혀 크게 휘돌아 용암을 감아돌아 동창천이 흘렀다고 한다.
공암풍벽 석문 일부
공암풍벽에 관하여 자료를 찾아 보니 아래와 같은 기록이 전해져 인용해 보았습니다.
공암(孔巖)은 글자 그대로 구멍바위가 있는 마을이다. 구룡산에서 흘러온 한줄기의 산등이 공암에서 멈추고 경주 산내에서 흘러온 동창천이 공암에서 휘감아 흐르는 곳을 선인들은 용암이라고 했다. 공암은 산 끝부분이 형성되면서 가운데 큰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그 아래로 끝 간 곳을 모른다고 했고 옛 지리지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굴이며 청도팔경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청도 서지에서 경주로 넘나들 때 이 공암 중허리를 넘어 다녔고 바위사이로 낸 길이라 해서 암도(巖道)라 했다. 구멍바위라는 뜻이 담기 이곳은 여름에는 바위아래 흐르는 물에 푸른 산이 비쳐서 공암창벽이라 부르고, 가을에는 잡목에 단풍이 이 아름답게 물들어 공암풍벽이라고 불렀다. 공암이 있는 곳은 산이 불쑥 내민 곳에 북쪽으로는 깍아지른 암벽이 있고 높은 곳에 올라 보면 어린 아이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석굴이 있다. 옛 문헌에 보면 옛날부터 이 지역을 지나던 사람들이 하도 신기해서 돌을 던져 보면 안낭한 소리가 한참이나 들린다고 기록된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운문댐 축조 전에는 마을이 공암 남쪽에 있었다. 공암면 사무소가 있었고, 마을 뒷켠에는 18세기에 사기그릇을 만들었던 가마도 물이 빠지면 도자기 파편과 함께 들어난다고 한다.
깍아지른 공암바위에는 5개의 시문이 각자되어 있으나 완전한 판독은 불가능하다. 또한 이주변에는 퐁호대(風呼臺)와 곡천대(曲川臺)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수몰로 인해 모두 없어졌다. 현재 공암리는 수몰로 인해 위쪽으로 옮겨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은 재사(齋舍)가 3곳이 있다. 마을 앞쪽에는 파평윤씨들의 정자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허물어지고 지금은 옛터만 볼 수 있고 바위와 돌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옛날의 화려했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용방이라고 하는 것은 산의 끝머리에 용처럼 생기 바위가 있어 용바위가 음이 변하여 용방이란 말이 있다. 계천 건너에 10여가구가 살았는데 이곳을 작은 용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옛 선인들은 경치 좋은 이곳에 올라 시를 읊어 바위에 음각했던,
부앙대(俯仰臺)와 풍호대(風乎臺) 각자자 바위 상단에 있다.
석문 암벽에 음각된 모성암 시문
높이 4.6m의 바위에 세로 150cm, 너비 100cm 크기로 51자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모성암(慕聖巖)이라는 제하로 시문은 아래와 같다.
仰之彌高(우러러보니 더욱 높고)
鐫之彌堅(뚫으려하면 더욱 견고하네)
出類拔萃(무리 중에서 우뚝 빼어났으니)
不階補天(사다리 없이도 하늘을 채웠네)라는
문구와 '聖上二十八年戊子四月日', 시인과 석공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성상(聖上) 28년 戊子年에 해당하는 것은 조선 시대 순조 28년(1828) 뿐이기 때문에 쉽게 고증할 수 있다. 박 관장은 "마애비는 옛길을 새로 확장·정비한 뒤 순조에 대한 송덕비 형식으로 새긴 것으로 토목공사와 관련한 국왕 송덕비는 아직 예를 찾을 수 없다"며 "아직은 기초조사 단계로 공암 일대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풍호대 각자
풍호대(風乎臺)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윤현기(尹玄基)라는 분의 시(詩)와 함께 큼지막하게 새겨놓은 곳이다.
풍호대 각자 좌측 아래 시문이 새겨져 있지만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네요.
▶ 부앙대에서 본 풍경_파노라마[크게보기_그림클릭]
부앙대 암봉에 오르면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용암 머리가 꿈틀거리고
건너 옹강산 북서릉과 우측으로 서지산이 펼쳐집니다.
북쪽으로 장육산이, 서쪽으로는 발백산이, 사방이 그림같은 풍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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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름: 운문호 공암풍벽
▣ 나들목: 경북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747번지_공암리마을회관
▣ 족 적: 마을회관_P~거연정~풍호대 전망대~석문(잔도)~직벽 전망대~216봉(반환점)전망대~부앙대~석문~풍호대~
운문호(상류 물가 따라 회귀)~공터~마을회관_P 【원점회귀】 왕복 4km
▣ 일 시: 2021년 4월 18일(일요일)
▣ 날 씨: 맑음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운전 【왕복 305km】 대구~청도~공암풍벽
▣ 비 용: 고속도로 통행료 별도/ 공암마을 표고버섯 구매: 2만원
▣ Photo 후기
청도에서 보내는 주말, 오래전부터 간다간다 했는데 아직까지 미답지인 공암풍벽을 일요일 가보기로 하고 나서 보았다. 그런데 별다른 정보 없이 공암풍벽을 찾아가니 이거 왠일, 전에는 공암에 접근하려면 산행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과하다 할 정도의 덱 시설물이 설치되어 '운문호반 에코트래일'이란 길을 조성해 놓았다. 오랬동안 궁굼했던 곳인데 이처럼 쉽게 접근하게 될 줄은 미처 생각 못했지만 횡재를 한건지, 헛 웃음이 나온다. 예전에는 산행으로 접근하기에도 뭔가 아쉬움이 있어 미루어 두었는데, 이번엔 공암풍벽만 다녀오기로 한 터, 하지만 공암풍벽에 대한 역사적 가치가 이처럼 큰 의미가 있을 줄이야...처음 다녀온 공암풍벽 추억과 공암에 대한 역사를 되집어 후기를 남겨 봅니다.
공암리 마을회관 앞 괴목
마을회관 앞 주차장에 패킹 후 가볍게 출발 합니다.
주소_경북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747 (공암리마을회관)
공암리 마을회관
회관 옆에 10여대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네요.
운문호 방향 길 따라...
법륜사는 언듯 보면 일반 가정집 같아 그냥 지나칩니다.
마을 고목
전에 없었던 덱 벤치가 설치되어 있네요.
거연정
거연정은 파평인 윤현기씨의 장구지소로 알려져 있으며, 운문댐축조 당시 조사단은 이 거연정은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시기(時機)를 놓쳐서 무너지고 말았다. 최근에 청도군과 수자원 공사에서 복원을 하였지만 이곳은 정자로써의 기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청도문화지킴이회(회장 박희상) 회원들에 말에 따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정자 앞에 있는 지당도 옛 모습을 잃어버렸고 정자에 들어가는 문도 옛 모습은 아니다. 방문의 문지방이 높아 들어가기도 불편하고 밖을 내다보기도 또한 불편하다. 옛모습을 간직하고 오직 남아 있는 것은 마당에 우뚝하니 서있는 전 나무 두 그루와 집 뒤에 있는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는 글씨와 아천석(我泉石) 가이합(可以合)이라는 글이 남아 있었고 수은교(水隱橋)라는 글이 있어 비가 와서 물이 불으면 다리가 물에 잠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의 계곡은 깊거나 넓지 않지만 옛 선비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활수원(活水源)과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라는 글은 일러 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이 새겨져 있다. 처음과 두 번째 이곳을 답사했을 때 남아 있던 작은 돌에 새겨진 경(敬)자 등 작은 돌에 새겨진 것은 간곳을 알 수 없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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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연정 주변 각자
거연정 각자와 복원 한 거연정
옛 사진과 자료가 있다고 하는데, 복원된 거연정이 옛것과 많이 다르다고 하네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오랜세월 냇가를 지켜 왔을 왕버들 덩치가 엄청나나네요.
운문호에 둥실 공암이 떠 있네요
공암 가는 길
산책로는 메트가 깔려 있고 영산홍 꽃길이 이어지네요.
공암 첫번째 조망대
공암풍벽_운문호반에코트레일
솔직히 길 이름이 잘못된 듯, 우리 고유의 지명이 있는 곳을 왜 왜래어로 지었을까...!
이곳이 공암인 것을, '공암 옛길'로 했으면 참 좋았을 것을 이해불가네요.
▶ 첫번째 조망대에서 본 공암
공암...뷰
공암에 대한 기사를 인용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경북 청도군 운문댐 자락에서 삼국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옛길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23일 박홍국 경주 위덕대 박물관장에 따르면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 일대 현장조사 결과 야산 중턱에 길이 890m의 잔도(棧道·벼랑에 낸 길)를 발견했다. 잔도 중간에는 바위 양 측면을 쪼아 석문(石門) 모양의 길이 33m나 이어져 있는 것도 확인했다.
공암리는 운문댐 수몰구역 끝으로 일제 강점기에 산줄기를 돌아가는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이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해발 150m 야산 능선의 벼랑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길로 다닌 것으로 보인다. 레이저 거리계측기로 실측한 잔도의 길이는 890m로 운문댐으로 수몰된 구간을 포함하면 1km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 관장은 조선 시대 이중경(1559∼1678)의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에 '길이 바위틈으로 가로질러 통하는데 틈의 길이는 백 척이나 되고 백보 정도 뻗쳤는데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밀양 청도로부터 경주까지 귀하신 분들이 이곳을 경유한다'는 기록은 이 석문을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관장은 "현재 전해지는 1600년대 기록이 가장 오래됐지만 공암 옛길은 신라 시대에 경주와 청도를 잇는 최단거리 교통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해발 162m의 암벽에서 조선 순조 때 이 길을 정비했다는 기록이 새겨진 마애비도 발견됐다.
지상에서 4.6m의 바위 표면에 세로 150cm, 너비 100cm 크기로 51자가 새겨져 있다. 모성암(慕聖巖)이라는 제하에 仰之彌高(우러러보니 더욱 높고) 鐫之彌堅(뚫으려하면 더욱 견고하네) 出類拔萃(무리 중에서 우뚝 빼어났으니) 不階補天(사다리 없이도 하늘을 채웠네)라는 문구와 '聖上二十八年戊子四月日', 시인과 석공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성상(聖上) 28년 戊子年에 해당하는 것은 조선 시대 순조 28년(1828) 뿐이기 때문에 쉽게 고증할 수 있다.
박 관장은 "마애비는 옛길을 새로 확장·정비한 뒤 순조에 대한 송덕비 형식으로 새긴 것으로 토목공사와 관련한 국왕 송덕비는 아직 예를 찾을 수 없다"며 "아직은 기초조사 단계로 공암 일대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곳 공암 석문을 통과하는 암반길에는 얼마나 많은 선조들이 넘나 들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흔적으로 바위길이 반질반질 달아 있으니, 마치 문경새재 옛 길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어지는 공암 가는 길
▶ 파노라마 뷰_[크게보기: 그림클릭]
건너 석굴을 당겨서 보고...
차츰 가까워지는 공암
공암 하단 벽은 물에 잠겨 있고...
북쪽...상류
육장군 유래가 있는 장육산이 조망됩니다.
당겨서 본 장육산
이제 공암벽을 끼고 가게 되고...
공암벽 아래를 계속...
천남성
이어지는 공암벽
상류 장육산
▶ 풍호대 전맹대 도착
풍호대
풍호대(風乎臺)를 먼저 만나고, 풍호대(風乎臺)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윤현기(尹玄基)라는 분의 시(詩)와 함께 큼지막하게 새겨놓은 곳이다.
하지만 불필요할 정도의 시설물이 영 불만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풍호대 각자와 시문
풍호대 암벽
차츰 더 깍아지른 암벽 위용이 더 웅장해 지고 있네요.
풍호대에서 본 상류 장육산
용바우
풍호대 위 상단
▶ 공암 석문
첫번째 석문
석문을 연속해서 서너번 지나야 하며, 초입 석문 아래는 축대를 쌓아 갈지자로 암도를 이어 석문으로 들어 갑니다.
자연적으로 석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막힌 암벽을 쪼개서 인공적 석문과 자연 석문으로 만들었는 듯 하네요.
공암 석문_아마도 깍아 만든 길인 듯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길이 바위틈으로 가로질러 통하는데 틈의 깊이는 백 척이나 되고 또 백보정도 뻗쳤는데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밀양과 청도로 부터 경주까지 귀하신 분들이 이곳을 경유한다. 동남쪽은 기이한 골짜기가 층층이 겹쳐있고 구름과 안개가 서로 섞이며 서북쪽도 그러하다.
청도문화지킴이회(회장 박희상) 관장은, 공암리는 운문댐 수몰구역 끝으로 일제 강점기에 산줄기를 돌아가는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이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해발 150m 야산 능선의 벼랑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길로 다닌 것으로 보인다.
레이저 거리계측기로 실측한 잔도의 길이는 890m로 운문댐으로 수몰된 구간을 포함하면 1km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 관장은 "현재 전해지는 1600년대 기록이 가장 오래됐지만 공암 옛길은 신라 시대에 경주와 청도를 잇는 최단거리 교통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해발 162m의 암벽에서 조선 순조 때 이 길을 정비했다는 기록이 새겨진 마애비도 발견됐다.
돌로 만든 계단이 이어지고...석문이 이어집니다
석문을 빠져 나가면 바윗길이 능선 따라 이어지는데
좌측은 깍아지른 절벽이고, 경관을 해친 안전팬스가 영 불만입니다.
이제 공암 끝으로 진행하면, 직벽 전망대 벤취가 있는데...
직벽 전망대
전망대 덱을 절벽 끝단에 매달아 놓아 아찔함까지 느껴집니다.
그럴것이 허공위에 놓아졌으니, 그럴만 할 듯 합니다.
내려다 보면 아찔~
사진으로 표현이 안되네요.
어림잡아 5~60m는 될 듯 합니다.
멀리 반룡산이 조망되고...
상류 쪽으로 장육산이...
공암 끝단_즉 용암
▶ 파노라마 뷰 [크게보기: 사진클릭]
계속 공암 끝으로 가봅니다.
안전팬스 넘어 벼랑 끝에서 본 반룡산
돌아 본 공암풍벽 능선
공암능선 앞 오목한 곳이 석문이 있는 곳이며
운문호를 가로막은 공암이 끊어질 듯 하다
다시 216봉을 솟구 쳐 올리고며 굽이치고 있네요.
내려다 보니 어질~
▶ 공암 반환점
지형도상 216봉
북쪽 공암 절벽이 가장 높은 곳입니다.
해발 216m니 절벽은 족히 100m 가까이 될 듯 합니다.
공암 석굴
공암이 있는 곳(216봉)은 산이 불쑥 내민 곳에 북쪽으로는 깍아지른 암벽이 있고 높은 곳에 올라 보면 어린 아이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석굴이 있다. 옛 문헌에 보면 옛날부터 이 지역을 지나던 사람들이 하도 신기해서 돌을 던져 보면 안낭한 소리가 한참이나 들린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 구멍은 물이 있는 바닥까지 뚫려있어서 구멍바위라고 하며 한자로 기록하면서 공암이라 하였다. 공암(孔巖)은 두암(竇巖)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수헌 이중경선생의 부친(父親)이기옥(竇巖 李璣玉)선생은 이 바위가 있는 이곳을 흠모해서 호(號)를 두암(竇巖)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구멍은 직하(直下)로 뚫려있어서 옛날 어떤 선비가 은 술잔을 이곳에 떨어뜨렸는데 아래에 있는 소(沼)에서 술잔을 찾았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 들여다 보니 거의 수직으로 석굴이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지형도상 해발 216m 공암 끝단 봉우리 입니다.
공암 석굴 초입부
이렇게 밖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고...
석굴에 들어가려면 로프하강을 해야 할 듯 합니다.
더 진행하면 별다른 것 없고, 다시 되돌아 나옵니다.
다시 직벽 전망대
헐~이사람이...
아득한 절벽 바위 위에 올라 봅니다.
당겨서 본 장육산
오래전 육장굴을 찾아 보았던 알바산행을 참고로 올려 봅니다.
☞ 장육산 육장굴을 찾아서 바로가기_blog.daum.net/mkhur1004/185
(080429-21)청도...장육산 조래봉 산행
△ 장육산 정상 장육산이 초행이라 일단 들머리를 찾는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내칠1리에서 우측 묘지로 오르는 정족산릉 초입을 지나쳐전체적으로 실패한 산행이었다 최초 정족산 지릉으로 올
blog.daum.net
다시 석문에서...
팬스를 넘어 암릉을 올라 보았습니다.
▶ 부앙대 정상
일망무제 조망처
왜 부앙대인지 충분히 공감 할 수 있는 곳 입니다.
사방팔방 운문호 주변 풍경을 감상 할 수 있는 곳 입니다.
공암능선과 발백산
▶ 파노라마 뷰_[크게보기: 그림클릭]
부앙대에서 동쪽 풍경
공암 끝단과 옹강산 북서릉 우측으로 서지산 입니다.
부앙대 암봉 위, 풍광이 너무 좋아 한참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부앙대에서 남쪽 풍경
운문호가 쭉 이어지고 운문호 중앙부에 있는 개산이 살짝 보이네요.
건너 서지산(좌측)
서지산을 산행하면 남쪽으로 내려다 보이며
운문호가 장관으로 내려다 보이느 곳 입니다.
다만 서지산에서 이곳 북쪽은 조망이 가려 있습니다.
부앙대에서...
부앙대
풍경이 일망무제인 부앙대 암봉에서 오랜시간 머물다
다시 내려 오는 길, 다시 한번 석문을 잘 살펴 볼 요량 입니다.
▶ 다시 석문
좌측 상단에 희미한 각자가 보이고...
우측 바위에 올라 당겨서 보니 '부앙대'라는 각자와 아래로 시문이 보이네요.
俯仰臺(부앙대) 음각과 詩
부앙대는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 보다'. 라는 뜻...!
아래는 무슨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적절한 표현 입니다.
방금 전 부앙대 위에 올라 보니 부앙대라른 이름이 걸 맞네요.
부앙대 각자를 보고, 혹시 몰라 주변에 바위를 살펴보니,
또 다른 음각이 보이고, 희미하지만 빼꼭히 새겨진 시문이 보이네요.
문 암벽에 음각된 모성암 시문
석문 옆 암벽 5m의 바위 세로 150cm, 너비 100cm 크기로 51자가 새겨져 있다고 합나다.
다행히 시문을 해석한 자료가 있어 아래 시문을 올려 봅니다.
仰之彌高(우러러보니 더욱 높고)
鐫之彌堅(뚫으려하면 더욱 견고하네)
出類拔萃(무리 중에서 우뚝 빼어났으니)
不階補天(사다리 없이도 하늘을 채웠네)
라는 문구와 '聖上二十八年戊子四月日',
시인과 석공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시문이 새겨진 암벽_우측 중앙
석문을 내려와 우측을 보니...
저쪽으로 입석이 보여 접근해 봅니다.
바위가 떨어질 수 있을 듯
위태하게 매달려 있어 밑을 빠져 나오고...
다시 되돌아 나옵니다.
풍호대 전망대
아무리 보아도 시설물이 너무 난잡한 듯 하여 아쉽기만 합니다.
공암풍벽 따라 나오고...
유난히 천남성이 아주 많네요
다시 제1전망대에서 본 공암
제1전망대서 운문호 상류 바닥으로 내려서기로
운문호에 수몰된 옛 마을 터를 가로질러 건너 보았습니다.
운문호 상류에 내려서...
건너 용바우 지척으로 보이고...
수몰 된 옛 마을터를 지납니다.
수몰 된 마을 집터
집은 모두 흔적없이 사라지고 돌담과 축대는 그대로 남아 있네요.
운문호가 건설되기 전에는 이곳부터가 공암 마을이었던 것 같네요.
▶ 파노라마 뷰_[크게보기: 그림클릭]
수몰된 옛 마을 터에서...
파노라마로 본 운문호와 공암풍벽 입니다.
운문호를 가로질러 옛 길로 올라 서고, 엣길 따라 원점회귀
그리고 귀울 길, 운문호 망향정에 잠시 멈추어 보았습니다.
▶ 운뭉호 망향정 풍경
망향정에서 본 운문호
건너 '호산' 뒤쪽으로 까치산, 좌측으로 옹강산, 우측으로 운문산과 억산이 쫙~펼쳐 집니다.
서지산과 멀리 옹강산
좌측부터
운문산 중앙 억산 깨진바위 우측으로 복점산 구만산이...
서지산
좌측이 서지산 정상이며, 우측 암릉과 암봉은 조망이 끝내주는 곳 입니다.
☞ 서지산 산행 바로가기_blog.daum.net/mkhur1004/274
(100515-18)청도...운문호 따라 오른 서지산 실록과 암릉에 어우러지는 운문호
▲ 힘든 산행에서의 시원스러운 조망은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한다 사방이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지는 서지산 암봉에서 운문호가 시원스럽다 ▲ 서지산 정상 전...암봉에서 내려다 보
blog.daum.net
당겨서 본 옹강산
운문호 망향정을 떠나 건너편으로, 운문사를 지나 귀울 합니다.
가벼운 산행 공암풍벽, 마치 옛 타임캡슐을 열어 본 듯...!
많이 부족한 정보, 공암에 대한 호감이 더 궁굼해지고
보다 나은 정보로, 또 다시 세심히 돌아 볼 날을 기약해 봅니다.
《end》
'″°³ 산행후기 ³°″ > 국 내 전 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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