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9(일)
오랜만에 찾는 지붕없는 박물관 경주 남산, 수차례 남산 산행서 놓쳤던
남산의 神 '상사바위'와 남산의 상징 '도깨비바위' 찾아보기
절묘히 럭비공을 세워 놓은 듯 한 도개비바위는 귀물 자체 였습니다.
금송정 아래 암릉, 즉 마애석가여래좌상의 불두 암벽 끝단에 올라
건너 금오산이 지척이고, 아래로는 마애불까지 수십미터 절벽을 이룹니다.
경주 남산의 神 '상사바위'를 기웃, 과연 神의 영역다운 묘함과 웅장함
중앙 남근석이 있고, 위에서 내려다 보는 기이한 형상에 묘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미세먼지가 호전되고, 건너 경주의 또하나의 진산 단석산이 넉넉하고
남쪽으로 영남알프스 준봉 모두를 짚어 볼 수 있었던 행운의 산행이었습니다.
경주 남산은 서라벌의 진산(鎭山)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km, 남북 길이 10km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여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남산에는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한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이 산 주변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라시조 박혁거세거서간이 탄강(誕降)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奈乙神宮), 왕릉이 즐비하며, 도성(都城)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과,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있어 남산은 실로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라 할 수 있다.
남산에는 왕릉 13기, 산성지(山城址) 4개소, 사지(寺址) 150개소, 불상 129체, 탑 99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94점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들 문화유적은 국보 1점, 보물 14점, 사적 15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51점이 지정되어 있고,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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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름: 경주 남산_금오산 도깨비바위
▣ 산행지: 경북 경주시 배동 산 72-6/ 경주시 배동 배동 725_삼릉공영주차장
▣ 코 스: 삼릉공영주차장_P~ 삼릉~ 냉골(삼릉곡)~ 상선암~ 상사바위~ 금오봉~ 도깨비바위~도깨비능선~
신라월성대군단소~ 삼릉공영주차장_P 【산행종료】입산 13:40 ~ 하산 18:00
▣ 일 시: 2021년 5월 9일(일)
▣ 날 씨: 맑음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 운전【왕복 108km】 출발: 12:30/ 도착 18:45
▣ Photo 후기
주말에 진땅 마신 술로 인해, 숙취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정신이 퍼득 들고, 일요일 점심때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간단히 채비하여 경주로 달려 갔다. 그동안 경주 남산을 수차례 산행을 하며 상사바위와 도깨비바위 두 남산의 상징적인 바위를 찾아 보기로 위한 늦은 숙제를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미 정오를 지난 시간이니 최대한 산거리 줄여 산행 하기로 하지만, 경주 남산 특성상 볼거리 많은 곳이니 걸음은 더디기만 하고 조금은 쫒기는 산행이라 아쉬웠던, 하지만 주 목적은 남산의 신적 존재 상사바위와 남산의 상징인 도깨비바위 찾아 보기 소위에 목적은 달성했던 오후 반나절 남산 산행, 또 한 추억으로 남겨 봅니다.
삼릉공영주차장 도착
주섬주섬 산행 채비하여 출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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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 가는 솔밭길
삼릉 앞 솔밭
삼릉 스쳐지나며...
삼릉은 사적 제219호. 남산(南山)의 서쪽에 동서로 세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 불리고 있다.
서쪽으로부터 각각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하고 있다.
삼릉을 스쳐지나고, 잠시 오르면 등로 옆에 방치된 문화재를 봅니다.
그리고 이하 내용, 문화재에 대한 설명은 현장 안내판의 안내문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 삼릉 바로가기_blog.daum.net/mkhur1004/2514
짧은 1박2일 경주『첨성대와 삼릉』'18.12.1~2
아~벌써...훅~ 가버린 가을 ! 유난히 아쉽고 허전한 마음은 어찌할꼬...! 교과서에서 보았던...첨성대 참 오랜세월의 흔적... 고목과 조선시대 순조때 세워진 "김알지 탄생비각" 삼릉... 그리고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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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곡 제1사지 탑재와 불상
이 불상과 탑재물은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곳에 모아 정비하였다. 앉은 불상은 약함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상이며, 옷 주름 조각이나 특별한 양식이 없어 시대를 알 수 없다. 또 한점의 불상 조각은 여래입상이다. 허리 위와 발 대좌는 잃어 버렸다. 옷의 주름 조각양식으로 보아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2점의 탑재는 각기 다른 탑의 조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삼릉곡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높이 1.6m 너비 1.56m 큰 불상이다. 옆 계곡에 묻혀 있다가 1964년 발견되어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없고 옷 주름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가슴에 매듭이 사실적으로 새겨져 있어, 전통 매듭이 신라시대부터 장식으로 사용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와 두 무릎 수인이 파괴되어 어떠한 불상인지 알수 없게 되었으나, 편안히 앉은 자세, 탄력 있는 가슴, 넓고 당당한 어깨 등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전성기의 위풍당당한 불상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삼릉곡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과 터
이곳에서 좌측으로 잠시...마애관음보살상
자연바위 암군에 조각된 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곡 마애관음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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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살상은 키는 여자 어른의 키 높이인 1.5m 정도이고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있는데 화불인 아미타불이 조각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입술 부분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일부러 채색한 것이 아니라 바위의 붉은색 부분을 그대로 살려서 입술 부분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이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을 한것으로 연꽃무늬 대좌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안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된다. 손에는 보병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산의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고 소개하고 있다. |
마애관음보살상를 보고, 다시 내려와 조금 오르면 우측으로 석굴이 보이고,
석굴이라기 보다는 큰 암군이 처마 이룬 비 피하기 딱 좋을 것 같습니다.
석굴
이 석굴 앞으로 석축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도 암자터인 듯 합니다.
석굴을 보고 잠시 오르면, 자연 암벽에 음각된 선각육존불을 보러 좌측으로 오릅니다.
삼릉곡 선각육존불
삼릉곡 선각육존불은 남산에서는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만 새기고 몸 둘레의 신광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 분이 서 있다. 보통 이 세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앞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 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릎은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이라고 한다.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좌불
우불
불상 안내
일부 남아 있는 탑부재
육존불을 보고 다시 내려와 오르면 삼릉곡의 문화재를 세심히 찾아 보면서 오릅니다.
계곡은 가물어 말라 있고...
좌선바위에 잠시 올라 보고...
다시 계곡건너 좌측으로 오르면...
삼릉곡 석조여래좌상 도착
우선 석조여래좌상 아래 삼층석탑 자리를 먼저 봅니다.
삼릉계 삼층석탑 터
삼층석탑 기단이 남아 있고...
아래 사진, 삼층석탑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광 야외에 있는 자그만한 석탑이다. 전체높이 2.16m이고 9세기 후반경 제작하였다고 추정한다. 일제강정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 인근에서 반출된 것으로 추정해왔다. 2007년 주변공사에서 발견된 석탑 부재 2점이 석탑 훼손부분과 일치하여 원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삼층석탑
석탑 암군 끝에 나서 본 금오봉 정상부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이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이불상의 얼굴은 파손이 심했기 때문에 2007~2008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 정비하여 뺨과 코, 입 등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오른쪽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식으로 걸쳤는데, 이 가사는 얇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 등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정강이에서 발목으로 옷 주름이 비스듬히 흐르로 있다. 광배는 간결하면서도 화염문과 당초문을 섬세하게 새겨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연화좌는 상태에 양련을 3단으로 새겼는데, 꽃잎 안헤 다시 꽃잎을 새겼다. 팔각의 중대에는 면마다 안상을 두었으나 하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 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 가사, 발목으로 흐르는 옷주름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석조여래좌상 뒤 석굴
석굴 내부
삼층석탑지와 석조여래좌상에서 나서 다시 정등로에 들어서면
좌측 암봉끝단에 새겨진 마애선각여래좌상이 있는데, 잘 살펴야 합니다.
삼릉계 제6사지 마애선각여래좌상
한참을 찾아 당겨서 본 마애선각여래좌상 이며
등로에서 좌측 암릉 끝단에 새겨진 불상입니다.
최대한 당겨서 본 마애선각여래좌상
이 선각여래좌상 아래 석조약사여래좌상터가 있는데,
전체 높이 3.32m로 이곳에 있었던 것을 1915년 서울로 옮겨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불상과 달리 불상과 대좌 모두가 원형 그대로 아주 양호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석조약사여래좌상
위로 상선암과 금오산 정상
상선암 위 암군을 당겨서 보고...
상선암 도착
상선암 법당
오르며 내려다 본 상선암
상선암 주변은 삼방이 모두 암군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삼불사에서 올라오는 등로 삼거리
드디어 조망이 트이고...
구미산과 앞에 주상절리가 있는 선도산, 우측으로 안강 금곡산이 조망 됩니다.
당겨서 본 구미산
앞에 최근 뜨고 있는 주상절리로 알려지는 선도산 입니다.
☞ 선도산 주상절리 바로가기_blog.daum.net/mkhur1004/2650
경주 선도산_주상절리에 반하다 '20.5.5
Photo by 조릿대_2020.5.5 (화) 어린이날 휴일, 발목 상태도 좋지 않고, 코로나로 자유롭지 못한 나날들 하지만 잠시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 어느 블방에서 보았던 선도산 주상절리를 찾아 맵에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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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당겨서 본 단석산과 우측 오봉산
앞에 보이는 안테나가 서 있는 곳은 벽도산 입니다.
올려다 본 삼릉곡 제9사지 선각마애불
삼릉곡 제9사지 선각마애불
이 마애불은 암벽 끝단 바위면 전체에 균열과 마모가 심해 세부 표현은 자세하지 않다. 통견의 범의로 감싼 신체는 건장한 편이며, 둥근 얼굴에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올려 설법인을 취하고 있으며,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있다. 1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마애불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정규등로서 벗어나, 우측 암릉으로
올라 보기로 하고, 희미한 족적이 있으니 암봉 끝단에 오를 수 있을 듯 합니다.
역시 탁월한 선택, 암릉 끝단에 올라서니 조망은 덤이고 아주 명당 입니다.
암릉 끝단에서 본 금오산 정상
그런데 불규칙 적으로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조심스럽고
아래로는 수십미터 절벽을 이룬 곳,
위 사진 선각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암봉 입니다.
조심스럽게 앉아 금오산 정상 배경
멀리 영남알프스 연봉이 조망되고...
살짝 당겨서 본 영남알프스 준봉
좌측부터 영축 신불 고헌산, 중앙 뽀족하게 가지산 우측으로 불룩하게 문복산과 서담골봉 입니다.
중앙 앞에 겹쳐 보이는 산은 울산 천마산 입니다.
서쪽으로 단석산
앞 우측으로 벽도산이며, 우측 멀리 오봉산이 조망됩니다.
강한 바람을 가르며 제자리 비행을 하는 까마귀
내려다 본...근데 아뿔싸 !
헐~저 아래 마애석가여래좌상을 그냥 지나쳐 올라 왔네요.
하는 수 없이 다시 빙 애둘러 내려서 마애불을 보러 갑니다.
암벽 끝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애불이 바로 아래지만...
막상 되돌아 가려니 한참 빙 둘러 내려서야 했습니다.
다시 내려와 도착 한 마애석가여래좌상 도착
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
정말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대좌불 입니다.
마애석가여래좌상
저 위 우측 솔아래 짱이 서 있는데, 한점으로 보일 정도로 큰 암벽 입니다.
방금전 바위 끝단에서 즐겼던 곳이 바로 불두 위 암봉이네요.
본의 아니게 불두를 밟고 즐겼는데, 부처님 부디 용서하시 길...!
삼릉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불상은 남산의 금오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위치해 있다. 자연 암반을 파내어 광배로 삼았으며, 깎아내다가 그만둔 듯 거칠다. 높이 7m로 삼릉곡에서 가장 큰 불상이며 금오봉을 향하여 앉아있다. 이 불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 있다. 풍만한 얼굴에 눈썹은 둥글고 눈은 반쯤 떴으며 입은 굳게 다물었다. 민머리에 턱은 주름이 지고 귀는 어깨까지 큼직하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져 있으며, 가슴부분의 벌어진 옷 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 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경가부좌 한 양 다리의 발 표현과 연꽃대좌가 아주 특이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 소개하고 있다.
은은한 미소
대좌불 암벽
올려다 보고...
대좌불과 주능선 상사바위
대좌불과 우측으로 상사바위가 보입니다.
대좌불을 보고, 다시 애돌아 올라 짱과 재회하여 오릅니다.
조금 더 오르면 바둑바위 아래 멋진 조망바위가 있네요.
열심히 인생샷을 담는 젊은 여성두분
코로나 시대, 이곳 남산에 유독 젊은이들이 많이 오네요.
참 좋은 일, 산에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니 보기 좋네요.
우측으로 조망
멀리 구미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금곡산까지 조망됩니다.
구미산 앞 선도산이며 좌측은 영천 오봉산 입니다.
서쪽으로 조망되는 단석산
단석산을 배경으로
선 짱은 전에 다녀 왔던 선도산을 살리고 있고...
계속 선도산을...
아마도 선도산 주상절리 계곡이 퍽 인상에 남아 있는 듯 합니다.
좌)단석산 우)구미산
잠시 조망을 즐기고, 잠시 오르면 '바둑바위'에 당도하게 됩니다.
바둑바위 도착
조망 좋은 곳 넓은 암반 위 바둑바위에 도착합니다.
바둑바위에서 조망되는 서북쪽
앞 선도산과 뒤 구미산
우측으로 안강 금곡산이 조망됩니다.
단석산
바둑바위에 여러 사람이 몰려 있어 자리를 피하여 조금 이동하니
'금송정' 정자가 있던 암봉 끝자락에 당도 하게 됩니다.
금송정 안내판
금송정은 이 곳 금오산에 있던 정자였는데, 경덕왕 때 음악가 옥보고가 가야금을 타며 즐기던 곳이다. 금송정이 있었다는 이곳 냉골 바위산은 그 모습이 괴상하고 거대한 바위 더미로 밑에서 쳐다보면 정상은 구름이 걸린 듯 드높아 보인다. 옆의 금오봉 방향에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는 상사암이라고 한다. 옥보고는 이곳 금송정에서 바위들과 솔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고리와 파한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을 벗 삼아 가야금을 뜯으며 세상 시름을 잊었다고 한다. [참고문헌_삼국사기]
짱이 앉아 있는 좌측으로 대여섯평 정도의 암반이 있는 곳이 정자 자리라고 합니다.
금송정에서 본 금오봉 정상
상사바위로 이어지는 암릉
건너 조금 전 있었던 금송정
거대한 암군_드디어 상사바위
위로도 아래로도 수십미터 단애를 이룬 곳
중간 테라스로 등로가 이어지는 상사바위 서쪽 입니다.
급할 것 없으니 쉬여가며...
아래 내려다 보이는 마애석가여래좌상
당겨서 본 마애석가여래좌상
상사바위 서쪽
우측 아래로도 절벽을 이루고 있고, 대단한 규모의 바위 입니다.
상사바위 절벽 아래 내려다 보고...
氣도 받아 보고...
상사바위 끝단
상사바위 중간 테라스 등로
상사바위 남쪽 올려다 본 기암_산아당
그냥 지나치면 안되는 곳...이 남쪽면이 산아당이라고 하고...
좌측으로 감아 돌아 들어서면 상사바위 동쪽 감실이 있습니다.
대단한 규모의 상사바위
중간 남근석, 위에서 괴이한 모양이 내려다 보는 형상은 압권이네요.
상사바위는 상선암 뒤로 높이 솟아있는 깍아지른 듯 한 바위 봉우리가 남산신 상심이 살고 있는 상사바위다. 남쪽면은 산아당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 낳기를 기도하였는데 영험이 있었다고 한다. 1856년에 새긴 '산신당'이라는 명문이 있다. 상심은 신라 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기도 하였다. 동쪽 면에는 남근석과 기도용 감실이 있는데 상사병이 걸린 사람이 빌면 영험이 있다고 한다. 감실 앞에 머리와 대좌를 잃어버린 작은 석불이 있는데 남산에서 발견된 가장 작은 석불이다. 통인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고신라 불상일 가능성도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판단하기 어렵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상아당과 몸통만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
상사바위 동쪽 감실과 석조여래입상 몸통은 불상이었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네요.
상사바위 상단
이렇게 남산의 男神, 상사암을 둘러 보고, 이제 금오봉 정상을 갑니다.
정상가는 길, 곳곳의 조망처
금오봉 정상 도착
금오봉 정상
이미 제법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정상이 한가롭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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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南山)과 망산(望山)의 유래_옮겨 보기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 또는 새벌이라 했으며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으로 아침 햇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각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땅이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날 두 신이 찾아 왔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 한 남신 이었고, 또 한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 예쁜 웃음이 아름다운 여신 이었다. 두 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 하고 외쳤고 이 소리는 너무나 우렁차 새벌의 들판을 진동하였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겁에 질려 '산 봐라!' 하고 소리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 '산 같이 큰 사람 봐라~!' 라고 해야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 하고 외쳤던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두 신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발을 멈췄는데 그만 왠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두 신은 그 자리에서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이곳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하고 강하게 생긴 남산(南山)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望山)이 되었다고 전해져온다, 고 안내되어 있다.
정상에서 잠시 휴식, 시원한 물도 마시고 간식으로 에너지 보충하고
정상 다음 봉우리에서 남산의 상징인 '도깨비바위'를 찾으러 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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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봉 정상에서 주능선 따라 잠시 이동 비파골 전설 안내판이 있는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잠시 쏟아져 내려서면 도깨비바위를 만납니다. |
▶ 남산의 상징_도깨비바위
남산의 상징인 '도깨비바위'
언듯 보면 왜 도깨비바위로 부르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무슨 짐승 머리정도 '말머리' 같은 형상이랄까. 하지만 남산의 상징이라고 하니
분명 도깨비바위로 부르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근거 자료가 없는 듯 합니다.
여하튼 절묘하게 균형잡고 있는 거대한 도깨비바위가 신비롭기만 합니다.
절묘한 균형,,,그래서 도깨비바위
제대로 서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신기한 균형...이라 '도깨비바위'
그래서 도깨비바위로 이름지어졌는지 추측 해 봅니다.
바위의 모양으로 이름지어진 것이 아닌, 신기하게 서 있어 '도깨비바위' 아닐까 합니다.
도깨비바위에서 한참 놀다 하산할 예정 입니다.
도깨비바위 뒤로 멀리 영남알프스가 펼쳐지고...
도깨바바위와 고위봉
아래로 비파골이 흐르고 좌측 능선 너머는 백양골 능선 입니다.
도깨비바위와 고위봉
당겨서 본 고위봉
우측으로 앞에 흐르는 바위능선이 이무기능선 입니다.
도깨비바위 넘어로 본 영남알프스 마루금
남산의 상징 도깨비바위를 충분히 즐기고, 도깨비능선으로 하산을 합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비파바위와 비파곡 삼층석탑을 기웃거리면 좋을텐데...
참~술이 웬수네요, 차츰 쇠약해지는 몸 신호인지, 이제 술을 마시면 아침이 개운치 않아 큰일입니다.
도깨비능선으로 하산, 제법 뚜렷한 등로가 있고, 잠시 내려서면 '삼형제바위'가 반깁니다.
도깨비능선의 삼형제 바위
제일 큰형인 듯 하고...
둘째와 세째 바위인 듯...
하지만 숲이 우거져 왜 삼형제 바위인지 헷갈리네요.
해서 옛 자료를 찾아보니, 아래 모양이라 삼형제 바위라고 합니다.
▶ 삼형제바위 옛 사진
삼형제바위 옛 모습
주변 숲이 우거지기 전 삼형제바위인데,
현재는 주변 나무들이 커서 전모를 볼 수 없더군요.
삼형제바위 옆 조망바위
삼형재바위와 함께 있으나 형제에 포함되지 못한 바위, 조망이 아주 좋은 곳 입니다.
삼형제바위에서 본 서북쪽
구미산과 우측 멀리 안강 금곡산, 구미산 앞에 위치한 산이 선도산 입니다.
남쪽으로 본 영남알프스 마루금
서쪽 단석산와 앞 벽도산
단석산 우측 뒤로 여근곡이 유명한 영천 오봉산이 조망됩니다.
삼형제바위에서 조망을 즐기고
조금 더 하산하니 또 다른 바위 조망처가 있네요.
바위 조망처에서 본 고위산
멀리 영남알프스
영알 준봉을 끝으로 짚어보고 마저 하산 합니다.
또 다른 조망바위에서
약수골 상류 암자터를 당겨서 보았습니다.
잠시 후 샛길은 좌, 우로 갈리고 우리는 우측으로 진행하고...
좌측길은 비파곡 삼층석탑으로 이어지는 듯 합니다.
계속 능선 따르다 고도가 낮아질 무렵 우측으로 내려서니 약수골
주등로에 합류 되고, 계곡 건너는 교도소 철망 팬스가 쭉~이어집니다.
약수골 주등로에 합류
솔밭길 따라 하산
월성대군단소로 하산
올려다 보이는 남산 금오봉
월성대군단소
제실이라고 하는데 으리으리하게 지어 놓았네요.
월성대군이라는 인물은 신라 박혁거세 29대손인 경명왕(신라54대 왕)의 8번째 왕자라고 하는데
참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힘은 대단하지만, 그 속내는 제명을 다하지 못하는 다툼아닐까!
도로 따라 원점회귀 합니다.
지붕없는 박물관 볼거리 많은 경주 남산, 오랜만에 이렇게
남산의 상징과 신적 존재인 귀물을 만난 반나절 산행을 잘 마무리 하고
작지만 큰산 경주 남산, 또 다른 궁굼증이 또 숙제를 남기네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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