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5(토)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와송, 전과 달리 건강해 보여 반갑기 그지없고
이미 여름 재촉하는 더운날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땀을 식혔던 하루...
늘 그렇듯 우리는 통증 다스리기, 최대한 거리 줄여 짧은 산행을 이어간다.
영축산 중 가장 험한 곳, 홀로 당당한 이 솔 존재로 외송능선으로 부르고
짧지만 익스트림 한 바윗길 놀이터가 이곳에 여러개 개척되어 있다.
외송이 위치한 거대한 오버행 바위 중단, 좌선대로 손색없는 곳
이곳에 앉아 바라보는 영축산 정상과 아래 풍광은 한마디로 명품 그자체다.
그리고 영축산 정상은 영남알프스 9봉 인증 산님들로 북새통이다.
영남알프스 영축산은 울산광역시 상북면 삼남면과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고도 : 1,081m). 북쪽 신불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영축산을 거쳐 시살등, 염수봉으로 이어진다. 양산천이 발원해 남류하며 남사면에 통도사와 19산내암자 사찰이 위치하여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양산에 '취서산(鷲棲山)은 군의 북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취서산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료에도 취서산(鷲棲山, 鷲栖山)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통도사 일주문에는 '영축산통도사'라고 기록되어 있어 일찍부터 영축산이라고도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2001년 취서산, 축서산, 영축산, 영취산 등으로 부르던 산을 영축산으로 정식 고시하였다. 영축산과 시살등 일대가 가지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 지명은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인도의 영축산과 닮아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실제, 필자가 접했던 이곳은 2000년까지 취서산으로 부르고 있었고, 영축산으로 개명 된 것에 익숙해 할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눈에 선한 풍경, 영축 정상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신령스러운 곳 신불산
펼쳐진 드넓은 평원 억새 무성한 곳, 참 멋드러진 이곳엔 가슴아픈 옛 애환이 서려있다.
정상부 가락능선에서 본 이어지는 앙칼진 능선, 언제보아도 매력 덩어리다.
♧ 영남알프스 소개 ♧
영남알프스는 영남 동부지역에 형성된 해발 1,000m 이상의 9개 봉우리 산악군을 영남알프스라 하며, 유럽의 알프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하여 영남알프스라 부르고 있다. 백두대간 피재에서 분기된 낙동정맥이 이곳까지 뻗어와 해발 1000m이상의 준봉이 힘차게 솟아 있는 영남알프스는 울산광역시, 경북 청도와 경주, 경남 밀양과 양산 5개의 시군에 속해 있다.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영남 동부지발을 남북으로 뻗어 내리다 대구 영천분지에서 산세를 낮추다 경주 단석산(827m)에서 고헌산(1,033m)으로 이어지며 다시 1000m 이상의 준봉들이 솟구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남알프스는 1979년 11월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영남알프스 대하여 ♧
영남알프스는 1000m 이상의 준봉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사자봉), 재약산(수미봉),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단조봉), 문복산, 고헌산 9봉을 말한다. 명확히 하자면 가지산릉의 상운산(1,114m)까지 더하면 영남알프스 1000m 이상의 준봉은 10봉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울산에서는 영남알프스 9봉을 완등 하는 분들께 이를 기념하는 인증서와 메달을 발급하고 있는데, 이는 5개 지자체(울주군, 경주, 밀양, 양산, 청도)가 연계하고 있다. 영남알프스 9봉이란 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고헌산(1,034m) 운문산(1,188m), 문복산(1,015m)를 칭한다.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영남알프스 전체면적은 약 255㎢ 이다.
여천각시굴 암장 정상, 하늘 향해 곧추서 있는 바위는 비수처럼 날카롭고
거대한 암벽 아래 아담한 석굴 여천각시굴, 앞 터엔 오래된 기와조각이 널부러져 있다.
여천각시굴_좌벽 |
여천각시굴_우벽 |
여천각시에 대한 유래를 요약하면, 임진왜란 전란시 1957년 정유재란 때 왜장 가또오가 남쪽으로 퇴각하다가 울산에 도산성(島山城)을 쌓고 그 곳에서 진을 치고 사수하고 있었는데 그 이듬해인 1598년 명(明)나라의 원군과 조선군이 포위하니 왜군은 굶주림과 추위로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이를 구하기 위하여 동래에서 온 왜의 원병과 아군이 현 삼남면 들레벌 (들 가운데 신불산에서 발원한 내<천(川)>가 흐르고 있는 가천벌 임)에서 치열한 교전 있었다. (결국 왜군의 반격으로 명(明)의 장수인 마귀가 이끄는 연합군이 도산성에서 퇴각하여 경주에 주둔했다 한다)
당시 아군이 단조성에 주둔하고 있었고 왜의 원정군이 동래에 양산 언양을 거쳐 울산 방면으로 북상하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을 때 이 곳에 있던 아군의 방해로 더 이상 북상 할 수 없자 이 영취산 단조성을 공략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는데, 영취산 정상 아래 바위굴에서 베를 짜고 있던 여천각시에게 아군으로 변장하여 성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영취산을 돌아 서편에 있는 백발등을 알려주게 되었다. 단조성의 약점을 파악한 왜군은 들레벌에는 짚으로 만든 인형을 줄지어 세워 놓고 단조성 서쪽 백팔등으로 단조성을 급습한 결과 아군은 전멸하고 성은 함락 되고 말았다. 전멸을 당한 아군과 의병들이 흘린 피가 성내의 못에 흘러 들어 피못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에 성(城)이 설치된 등을 피 못등(혹은 비패등)이라 하였으며, 그 굴을 여천각시굴이라 하였다는 아픈 유래가 있다. 이 지역 마을 사람들은 백발등으로 처들어온 왜병을 원망하며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등이 원수로다"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 산이름: 영남알프스『영축산』
▣ 산행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북/삼남면,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
▣ 코 스: 비로암_P~ 비로암골~ 외송능선~ 1060봉(추모봉)~ 영축산 정상~ 동봉~ 여천각시굴(영축산 암장)~우측 옛길
식수골~ 지산마을-비로암(횡단길)~ 비로암_P 【산행종료】입산 10:50 ~ 하산 18:20
▣ 일 시: 2021년 6월 5일(토)
▣ 날 씨: 맑음_헤이즈 심함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 운전【왕복 85km】 출발: 09:20/ 도착 19:30
▣ 경 비: 통도사 관람료(1인:3,000원/ 주차료:2,000원) 計:8,000원
▣ Photo 후기
이번에는 영축산 정상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여천각시굴 기웃거리기, 아마도 영축산 동봉 아래 옛길은 기억으로 25년은 넘은 듯 하고 반야암능선과 정맥길은 많은 산님들이 오르내리지만 가락능선과 식수원골 옛 등로는 이제 많이 묵어 있는 상태로 확인 되었다. 영남알프스 9봉 인증을 하려는 많은 산님들이 정상에 줄을 서 기다리는 현실이 좀 그래서 가능한 9봉 정상은 그동안 피했었다. 거듭되는 영남알프스 산행에서 옛 기록과 유래를 살펴보며 가슴아픈 사연들과 유래가 수 없이 전해 내려오지만 여천각시 유래 역시 가슴아픈 사연이 아닐 수 없다, 이땅을 지켜온 옛 선조들의 애환과 고충이 어떠했을까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하다. 영축산 아니 옛 취서산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아픔 서려 있는 곳으로 이번에는 여천각시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여천각시굴이라 불리고 있는 곳은 영축산 아래 옛 취서산 암장을 말하며 굴 앞 공터에는 축대와 기와 파편들이 수없이 널부러져 있어 암자터가 아닐까.... 여름을 재촉하는 더위로 땀 꽤나 흘려야 했던 산행, 또 한 추억을 더해 봅니다.
운동장 삼거리에서 본 영축산
누럿게 익은 보리밭 위로 영축산부터 죽바우등까지 능선은 언제보아도 매력 덩어리다.
왠지, 근래들어 블로그 작업이 성가시고 귀찮니즘, 묵은것은 천천히 올리기로...
영축산과 좌측 함박등
여천각시굴을 당겨보고
영축산 정상 아래 여천각시굴 암장이 올려다 보인다.
비로암 여시문
언제나 정겹고 아담한 비로암 여시문, 아래 주차장에 패킹 후 비로암 기점으로 산문에 들어선다.
삼거리_↖은수샘, 바산봉(비로암봉) ↗천정샘, 병풍바위, 외송, 삼형제바위
이번걸음은 외능능선 와송의 건강 상태를 첵크하러 우측으로 진행 한다.
정상까지 너덜지대인 곳
영축산 신의 영역에 올라서는 짓은 언제나 잔뜩 긴장해야 한다.
외송능선 진입 포인트
오랜된 괴목은 수백년을 이자리 지키다 이제 고사목이 되었다.
이곳에 들어서면 어디서든 코박고 올라야 하는 곳...외송능선에 접어들면
땅바닥과 이마를 맞대며 올라야 한다.
차츰 더 곧추서는 산길
와송 지킴이 바우
오랜 터줏대감인 와송과의 만남
전과 달리 올해는 와송이 무척이나 건강해 보인다.
당부드리건데, 이 와송을 찾는 산님들...
제발 뿌리를 밟지 말아달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건강한 모습에 무척 반가워 여러장 담아왔다.
건강한 모습
다음에 다시 만난 날을 기약하며...
본격적으로 외송능선 암릉길 열어 간다.
본격적인 바윗길
비로소 조망이 트이고
좌측에 올려다 보이는 죽바우등과 채이등 보이는 곳이다.
쭉~이어지는 네발 길
죽바우등 채이등 배경
죽바우, 채이등
그리고 좌측 아래 쥐바위, 중앙 채이등 아래 암벽은 금수샘이 있는 곳이다.
외송과 만나기...
거대한 오버행 암벽
홀로 우뚝 서 있는 외송
척박한 곳에 몸통 키워 곧은 이 외송이 있어 외송능선으로 부르고 있다.
외송에서 본 거대 암벽
올라야 할 암릉
외송과 영축산 정상부
정상 우측아래 여천각시굴 암장이 건너다 보인다.
당겨서 본 영축 전위봉
영축산 정상은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고, 우측 아래 암장이 여천각시굴이 있다.
당겨서 본 전위봉
우측아래 살짝 영축산 동봉 위에 산님 두분이 서 있다.
거대한 오버행 암벽을 좌측으로 감아 오르고...
외송과 거대암릉
좌선대에 오른 짱
짱이 건너다 본 내모습
좌선대에서 본 영축산
▶ 파노라마 뷰
좌선대에서...자리 바꿔서
대책없이 코로나 시대...확~찐자가 되어 버린 내모습이 참 거시기 하다.
유독 생명력 강한 돌양지
좌선대를 비워 두고...
좌측으로 죽바우등
바로 앞 건너 병풍바위능선 암릉이 단애를 이루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네발 길
경이로운 솔
작지만 제법 오래된 솔...!
병풍바위능선 암벽과 큰 솔
솔을 배경으로...
곧 올라 설 암릉
아무리 보아도 행복한 풍경
암릉에 올라...또 다시 멋진 풍경을 밑그림에 담은 짱
올려다 본 병풍바위
당겨서 본 병풍바위
병풍바위 암릉과 채이등 죽바우등
계속 이어지는 네발 길
이곳 올라서 멋진 조망처에서 오찬을 즐기기로 하고...
다아어트 식단 조촐하게...
멋진 풍경을 반찬으로 즐기는 오찬은 꿀맛이다.
오찬장소 흔적 남지지 않기, 정리~
오찬장소에서 본 병풍바위
살짝 당겨서 본 우측 바산봉(비로암봉)
함박등과 언제나 힘차 보이는 죽바우등
당겨서 본 바산봉(비로암봉)
올라온 곳 내려다 보고...
헤이즈 심해 먼 풍경은 좀~
하지만 이런 풍경도 참 좋기만 하다.
올라야 할 계속되는 암릉
우측으로 영축산 전위봉이 건너다 보인다.
헐~
단풍이닷~
계속 릿지로 진행
즐기며 놀며...유유자적
암릉이 뚝 끊기는 지점
우측으로 삼형제봉으로 건너가는 갈림길...
우리는 계속 외송능선으로 추모봉으로 올라 설 예정이다.
마지막 네발 길
추모봉 1060봉에서 주능선 합류
다시 보고...
1060봉
오래전부터 추보비 세워져 있어 추모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척인 정상으로...
신불평원과 넉넉한 신불산
당겨서 본 영축산 정상
정상 건너다 보며...
천정샘 갈림길
우측 아래 천정샘이 있고, 비로암에서 계속 올라오면 이곳으로 올라서게 된다.
거대한 영축산 정상부
영축산 정상
근래 엄청나게 바쁜 영축산 정상석
영남알프스 9봉 인증을 하려는 산님들오 주말이면 늘 북새통 이다.
올해부터는 순은메달과 10년을 모으면 순금메달을 증정한다고 한다.
살짝 욕심은 나지만, 그냥 산은 산이고 물은 물 이니...!!!
근래 최단코스와 9봉 정상은 일부러 피해 다니고 있으니 참 거시기 하다.
정상에서 본 신불산
아리랑, 쓰리랑릿지
언제 보아도 좋은~
정상에서 오랜만에 동봉으로...
영축지맥 마루금
함박등 채이등 당찬 죽바우등 희미하게 오룡산 연봉이다.
동봉 향하며 건너다 본 정상
영축산 동봉
독수리 부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동봉에서 본 신불산
동봉에서 본 영축지맥
죽바우등 오룡산을 살짝 당겨보고...
동봉 전 갈림길
여천각시굴 가는 길 동봉쪽으로 우측으로 내려 선다.
가락능선 상단에서 본 정상 병풍바위
삼형제바위를 당겨 보고...
아무리 보아도 좋은 곳
짱 폰에 찍힌 내모습
내려온 가락능선
옛길을 쏟아져 내려서면 만나게 되는 여천각시굴 암장 정상의 송곳바위가 날 서 있다.
여천각시굴 암장 정상
여천각시굴 좌측 암장
녹슨 볼트가 수 없이 박혀 있으니, 이제는 묵어버린 암장이 되어 버렸다.
이곳에 암장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30~40여미터 직벽에 순수 크랙을 따라 볼트가 있으니 난의도 높은 크랙등반지다.
내려서야 할 중앙부 직벽
고사목 사라리가 없으면 완력이 필요한 곳...
살짝 오버행인 이곳에 고사목 사다리가 톡톡히 제 역활을 하고 있다.
암장 정상에서 본
먼저 내려서고...
낡은 줄은 밸런스 유지, 많이 썩어 있는 고사목을 조심스럽게 의지하여 내려선다.
뒤 이어 짱도...
조심조심 실한 가지만 밟을 수 있도록 잔소리 아닌 잔소리만...
이젠 여유까지...
올려다 본 암장 정상
▶ 상/하 파노라마 뷰
짱이 먼저 내려서 담은...
침니에서 건너다 본 여천각시굴 우벽 상단
역시 40여미터 페이스 등반지
녹슨 볼트가 여러코스 개척되어 있다.
바위를 넘겨다 보니 아래 보이는 여천각시굴
올려다 본 암벽
조금 더 내려서면 좌측, 바위 사이 좁은 석문으로 들어서면
제법 넓직한 축대가 있는 터에 들어 서면 여천각시굴을 만난다..
여천각시굴과 앞 터
여천각시굴
석굴 좌벽 상단
미세크랙을 따라 녹쓸어 있는 볼트가 박혀 있고
역시 난의도 높은 크랙 등반지, 루트가 꽤 여러곳이다.
석굴 우벽 상단
여천각시굴 내부에서 본
오래된 기와 파편
석굴 앞 터에는 수많은 기와 파편이 널부러져 있으니, 분명 절터 였을 것 같다.
석굴 옆 샘
석간수인데, 물 빠지는 곳이 없다.
《영축산 단조성과 여천각시 유래》
취서산 정상에서 영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오르면 60여만평의 억새평원을 볼 수 있는데 이 억새평원을 가로지르는 긴 돌담이 단조성(丹鳥城)이다. 현재 이 돌담은 서북쪽으로는 많이 허물어 졌으나 동남쪽으로는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옛 문헌에는 단조성에 관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단조성을 취서산고성(鷲栖山古城)이라고 하였고, ≪증보문헌비고≫에는 언양의 남쪽 13리에 있는 취서산에 이 성이 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전설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한 장수가 "조선에 성이 많지만 이 성을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애기를 했고 영조 3년(1727)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영남을 시찰하는 도중 이 산성에 올라 "산성의 험준함이 한명의 장부가 만명의 적을 당해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해 이곳이 천연의 요새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성이 단지성(丹之城)으로 불리는 것 역시 이런 요새적인 위치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단지성이라 함은 바로 항성(缸城)으로 모양이 항아리(단지) 같이 생겼음을 뜻한다. 실제로 취서산은 정상이 동서로는 좁은편이고 남북으로 긴 형태를 보이고 있어 이런 지형을 이용하여 성을 쌓아 그 모양이 마치 단지같이 생겼고 따라서 천연 요새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이 있는 꼭대기를 단조봉(丹鳥峰)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성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 같다. 그런데 이 성에는 임진왜란 때부터 전해 오는 슬픈 전설이 있어 지금도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정규군은 왜군에 형편없이 패했지만 지방의 의병들은 그래도 왜적과 싸우면서 이 땅을 지켜 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언양 인근의 의병들이 북상하는 왜병들을 저지하기 위해 이 성에 모여들었다.
부산에서 출발해 양산, 언양을 거쳐 북으로 진군하려던 왜군들은 의병들이 단조성을 지키면서 강력히 대항하자 더 이상 북상을 할 수 없었다. 이 때 왜군들은 이 성을 공략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웠으나 성의 함락이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성의 정찰에 나섰다. 이 때 왜군들은 영취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굴에서 베를 짜고 있던 사람을 발견하고 이 사람에게 이 성의 지형에 대해 물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여천각시였다고 한다.
이 때 왜군은 아군으로 위장하여 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물었기 때문에 여천각시는 서슴치 않고 영취산을 돌아 서편에 있는 백발등으로 들어가면 쉽게 입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왜군은 바로 그날 백발등으로 들어가 의병을 기습하니 지금까지 후퇴하지 않고 이 성을 지켰던 의병들이 한꺼번에 전사를 하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 아군이 흘린 피가 얼마나 많았던지 피로 못을 이루었다는 애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단조성 아래에는 진풀이 있는데 오늘날에도 이 진풀에 불그스레한 이끼가 끼는 것은 당시 의병들이 흘린 피 때문이라는 애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전설은 내용이 비슷하지만 여천각시 대신 떡 장수가 등장하는 것이 차이가 있다.
즉 왜군에게 단조성을 공략할 수 있는 길을 가리켜 준 사람이 여천각시가 아니고 이곳 인근에서 떡을 팔던 할머니였다는 애기다. 당시 단조성 공략이 어려웠던 왜병장이 인근에서 떡을 팔고 있는 노파에게 떡을 모두 팔아준 후 이 산의 형세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파는 이 산의 형태가 흡사 산나운 개가 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왜군은 취서산을 우회해 산뒷편에서 공격을 해 단조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이 때 왜병들은 단조성의 백발등으로 쳐들어가 성을 함락하엿다고 전한다.
취서산에는 억새풀이 많다. 그런데 이 풀들이 가을이 되면 흡사 나이든 사람의 백발 처럼 흰 모습을 보이면서 흔들리기 때문에 억새풀이 휘날리는 이 언덕을 백발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전설을 들어보면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려 했던 우리 조상들이 엄청나게 희생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런 안타까움은 현재 이성 인근에 있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설화에서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 지역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등이 원수로다" 하는 노래와 함께 "원수로다 원수로다 인간 백발원수로다."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어 억새풀이 휘날리는 취서산 언덕의 백발등을 인생의 무상과 함께 원망스러운 어조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여천각시굴을 둘러보고 나서는 입구(좁은 석문)
여천각시굴을 쉽게 접근하려면 축대 아래로 나서면 되지만, 지금은 이렇게 석문을 통과 한다.
좌측 암장 상단
여천각시굴에서 조금내려서면 좌측으로 진행하면
가락능선이나 정맥길로 나설 수 있지만,
우리는 희미한 길로 진행하여 식수원골로 내려 설 예정이다.
식수원골의 까칠한 옛 등로
옛 등로는 묵어 있지만 분간이 가능하지만 까칠하기만 하다.
내림길 좌측 암괴
물이 흐르는 깔칠한 곳을 내려서 좌측으로 보이는 암괴
바위지대 내려서 돌아 본
조릿대가 꽃을 피웠는지, 몽땅 죽어 있다.
비로소 번듯한 길을 만나는 지점의 괴목
숲속 대너덜과 괴목
번듯한 길
축대도 있고, 길은 묵어 있지만 옛 수렛길 정도의 묵은길이 사면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토록 돌아가야 할 것 같으면 길은 없지만 직등으로 내려 서야 했는데...
사면길 버리고 우측으로 하산
더 횡단하여 가락능선으로 하산하면 되지만 우리는 우측으로...
하지만 이길도 계속 지산마을 쪽을 향하니, 등로 버리고 솔숲을 째고 하산...
비교적 쉽게 째고 내려서는 솔숲
괜히 갈팡질팡하여 트랙에 되돌아 온 알바아닌 알바가 하고...
다시 식수원골
수백년 됨직한 거대한 솔들이 반기고...
또 다른...
식수원골
인적없는 식수원골 탈출, 식수탱크로 나서고
비로소 지산~비로암 횡단길을 만난다.
잠시 열도 식히고...
편안한 횡단길 따라...
노루발꽃
비로암 여시문에서 마무리
비로암은 수없이 드나들어 이번에는 패스하고
옆 계곡에서 발피로 풀고, 이번 산행을 마친다.
비로암에서 올려다 본 주능선
삼거리에서 본
오후 늦어지며 헤이즈가 더욱 심해지고~조망이 닫힌다.
백련암에 들러 마실물 취수, 약수터에 없었던 복전함이 있다.
이곳 물이 이젠 많이 알려진 탓인가...걍~입장료에 다 포함 됐답니다.
그런데 근래 블로그 작업이 영~의욕이 없으니 왜일까...그냥 귀찮니즘~!
또 하루 영축산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산은 늘~감사함 입니다.
《end》
'″°³ 산행후기 ³°″ > 영남알프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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