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353호 쌍사자석등과 돌계단
영암사지는황매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이는데, 홍각선사비가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발굴을 통해 조사해본 결과, 불상을 모셨던 금당·서금당·회랑터·기타 건물터가 확인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고, 금당은 3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삼층석탑·귀부·
당시의 건물 받침돌·각종 기와조각들이 남아있다. 특히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경의 것으로,
절의 창건 연대를 살피는데 중요하다.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금당지 연석에 얼굴모양이 조각되었고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동물상을 돋을새김한 점,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절터 내에 흩어져 있는 석조물은 이색적인 느낌마저 준다.
조형의 특이함과 입지 조건, 서남쪽 건물의 구획안에서 많은 재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세워진 절로 보인다
▲ 쌍사자석등...암수의 사자 한쌍이 석등을 받혀 들고 있어 특이하다
이 석등(石燈)은 8각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등 양식에서 간주석(竿柱石)을 사자로 대치한 형식이다.
하대석(下臺石)에는 8엽단판의 복련이 조각되었고 꽃잎 속에는 화형(花形)이 장식되었다.
상면에는 각형과 호형(弧形)의 괴임이 있고, 한 돌에 붙여 쌍사자를 세웠는데 가슴을 대고 마주서서
뒷발은 복련석 위에 세우고 앞발은 들어서 상대석을 받들었으며,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기와 꼬리,
몸의 근육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상대석에는 하대석에서와 같이 꽃잎 속에 화형이 장식된 단판 8엽의 앙련(仰蓮)을 조각하였다.
8각의 화사석(火舍石)은 한 돌이며 4면에 장방형 화창(火窓)이 있고,
나머지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어 있다. 8각의 옥개석(屋蓋石)은 평박(平薄)한데
아래에 1단의 넓은 받침이 있으며 처마밑선은 수평이고 추녀 위에는 귀꽃이 조각되어 있으며
상륜부(上輪部)는 전부 없어졌다.
하지만...보물인 이 석등도 일제 강정기 시절 왜구의 손에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실패를 하였다는데...우리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보물급 유물들이현재까지 수 없이
일본에 건너가 있다...일본은 앞으로 그 유물들을 송두리 아무조건 없이 반환해야만
할 것이다...그래도 그 응어리진 민족의 한이 치유되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도 망언을 거침 없이 토하는 왜구인데...그들을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
▲ 보물480호 영암사지 삼층석탑
이 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방형의 탑신부를 갖춘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탑이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기단 중석을 한 데 붙여 조각한 4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는데
기단 중석에는 양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1주를 조각하였다. 경사진 갑석 상면에는 호형(弧形)과
각형의 괴임을 조각하였다.
상층기단 중석은 모두 4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였는데 하층기단과 마찬가지로 모서리에 우주가 있으며
각 면은 탱주로 양분되었다. 갑석(甲石)은 아래에 부연이 있으며, 상면에는 각형의 괴임이 2단 조출(彫出)되어 있다.
탑신부는 각 층마다 옥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별석으로 만들었는데 옥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비교적 얇으며, 처마밑선은 수평을 아루며 옥개받침은 각 층 4단으로 줄었다.
상륜부는 전부 없어졌으며 3층 옥개석 상면에 찰주공(擦柱孔)이 있다.
이 탑은 옥개석의 받침수가 4단으로 줄어 탑의 규모가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결구하고
다듬은 수법이 정교하며 당당한 위풍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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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489호 영암사지 귀부
이 귀부 2기는 법당지의 동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모두 비신과 이수(?首)는 결실되었다.
동 귀부는 서 귀부에 비해 규모가 클 뿐, 직립한 목과 용두화(龍頭化)된 귀두(龜頭),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 등 조형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동 귀부의 등갑(背甲)에는 전면에 복선의 귀갑문(龜甲文)을 조식하였고,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碑座)의 측면에는 사실적으로 표현한 인동운권문(忍冬雲卷文)을 조각하였다.
서 귀부는 동 귀부보다 평박(平薄)한데 등갑에는 복선귀갑문(復線龜甲文)과 유려(流麗)한 인동문(忍冬文)을
조각하였다. 비좌의 4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상면 주연(周緣)에는 연판문을 조식하였는데
대체로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귀부의 양식, 주위 석조유물 등과의 관련을 고려할 때
조성 시기는 9세기말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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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영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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