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일 보이지 않던 황매산 정상
황매산은 해발 1,108m로 상봉 중봉 하봉 삼봉이 나란히 연봉을 이루고 있다.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며, 700∼900m의 고위평탄면 위에 높이 약 300m의 뭉툭한 봉우리를 얹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북쪽 비탈면에서는 황강(黃江)의 지류들이, 동쪽 비탈면에서는 사정천(射亭川)이 발원한다. 전국 최고의 철쭉군락이 유명하여 철쭉꽃 피는 5월이면 많은 상춘객이 몰려 든다.
↑ 황포돛대바위
↓ 2010년 돛대바위 능선
↑ 철쭉군락, 몇일전 강풍으로 인해 꽃이 모두 떨어지고 남은 꽃도 녹아 버린다.
↓ 아쉬움에...2010년 만개한 철쭉 풍경
올해 황매산 철쭉은 풍해로 절정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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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산재 정상, 잠시 구름 걷히며 황매삼봉
모산재는 해발 767m이다. 황매산군립공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합천팔경 가운데 제8경에 속한다. 주민들은 잣골듬이라고도 부르며, '신령스런 바위산'이란 뜻의 영암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위산에 산이나 봉이 아닌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의 재라는 글자가 붙은 것이 특이한데, 모산재의 옆과 뒤에 여러 개의 고개가 있고 재와 재를 잇는 길 가운데에 산이 위치한 탓에 산보다는 재로 인식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웃한 있는 감암산과 함께 빼어난 암릉미를 간진한 곳으로 절묘한 기암이 수두룩한 곳이다.
산 북동쪽에는 바위 끝 부분이 갈라진 커다란 순결바위가 있는데, 평소 사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이 바위의 틈에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돛대바위는 높은 쇠사다리 위의 넓은 암릉 끝에 돛대처럼 우뚝 솟아 있다. 정상에는 한국 제일의 명당자리로 알려진 무지개터가 있다.
↑ 순결바위 능선, 순결바위
평소 사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이 바위의 틈에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모산재 감암산 황매산 지도
* 산이름: 경남 합천 황매산『돗대바위 순결바위 모산재』 * 산행지: 경남 합천군 대병면 가회면, 산청군 차황면 * 코 스: 둔내리[모산재식당] AM11:50 → 돛대바위능선 → 돛대바위 → 모산재 → 제1철쭉군락지 → 축제장 ★ 중식 ★ 안부→900봉→베틀봉→제2철쭉군락지→ 모신제→ 순결바위능선→ 영암사지터→ 둔내리[모산재식당] 산행시간 5시간50분 (휴식시간 없음/ 오찬시간 20분) * 일 시: 2016년5월6일 (금) * 날 씨: 비온후 흐림 (운무 가득) * 일 행: 조릿대 & 짱 [자가 승용차】 ★ 출발 AM08:00 경부,남해고속도(군복IC) 의령 79번 국도 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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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산재 황매산 산행 이모저모 ♧
징검다리 연휴가 임시공휴일로, 연휴기간 바람이나 쏘일겸 장도의 길 나선 보았다. 황매산 철쭉은 몇일 전 불어 닥친 강풍으로 철쭉꽃이 몽땅 낙화, 남은 꽃들도 모두 녹아내리는 현상, 그러나 남은 꽃몽울이 꽃피운다면 다음주 정도가 피크일 것 느낌이다. 오전 내린 비로 비개여 가는 둔내리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그리 복잡한 분위기는 아니다.
여유롭게 패킹 후 모산재 돛대바위 능선으로 잡고 오르는데 가득한 운무로 빼어난 암릉미를 두루 구경할 수 없어 아쉬움이다.
가끔 와본 곳이라 머리속에 그리며 풍광을 느끼지만, 그 좋은 암릉미를 짱에게 보여 주지 못해 진한 아쉬움으로 남은 산행이었다. 하지만, 산행만으로 족한 모산재와 황매산 철쭉 구경, 이 또한 한 추억으로 남겨 본다.
↑ 둔내리 모산재식당 주차 후 입산
↑ 영암사지 금당, 영암사지는 하산 때 다시 둘러보기로 하고 돛대바위능선 접어 든다.
↑ 건너편 순결바위 능선 암릉미가 멋진 곳인데, 진한 운무로 아쉬움
↑ 촉스톤 바위
↑ 먼저 오른 한팀, 비온 후 미끄러운지 헤메고 있고, 한참 기다린 후 퍼뜩 오른다.
↑ 경사 심한 계단, 철계단은 철거되고 새로운 계단...이곳을 오르면 돛대바위를 만난다.
↑ 돛대바위, 암릉 끝에 절묘하게 서 있는 돛대바위 볼 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 무지개터 도착 전, 앞서가던 팀이 따라 온다.
↑ 모산재 정상 도착
모산재는 해발 767m이다. 황매산군립공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합천팔경 가운데 제8경에 속한다. 주민들은 잣골듬이라고도 부르며, '신령스런 바위산'이란 뜻의 영암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위산에 산이나 봉이 아닌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의 재라는 글자가 붙은 것이 특이한데, 모산재의 옆과 뒤에 여러 개의 고개가 있고 재와 재를 잇는 길 가운데에 산이 위치한 탓에 산보다는 재로 인식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웃한 있는 감암산과 함께 빼어난 암릉미를 간진한 곳으로 절묘한 기암이 수두룩한 곳이다.
↑ 찍사는 늘 바쁘다. 열심히 다른팀 사진도 담아 주고...!
모산재 정상은 다시 조우하기로 하고, 황매 철쭉평전까지 단숨에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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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욱한 운무곳에 가끔 빛추는 철쭉군락, 이게 머지 ???
↑ 꽃이 짖무르고, 강풍에 철쭉이 많이 낙화 상해 버렸다.
↑ 모습 감추고 있던 황매삼봉도 살짝 모습 보인다.
↑ 아~모습 드러낸 황매산 삼봉
↑ 베틀봉 사면 철쭉도 마찬가지
↑ 베틀봉 사면 철쭉군락
↑ 황매평전 임도 넘는 안부에서 황매산 정상이 운무에 휩싸여 있다.
↑ 900봉 정상에서 만난 구술붕이
↑ 베틀봉 능선 철쭉군락
↑ 베틀봉
짙은 운무 걷히기를 기다려 보았지만, 오늘은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은 적중한다.
철쭉군락 남겨두고, 다시 모산재 향한다.
↑ 운무로 운치있는 모산재 향하는 길
↑ 다시 모산재 도착
모산재에서 잠시 휴식 중...황매 삼봉이 잠시 드러난다.
아쉬움 남지만, 순결바위능선으로 하산
↑ 운무는 더 짙어 지고, 순결바위 능선
♧ 운무 속 순결바위 능선 풍경 ♧
↑ 순결바위 능선, 기암절벽
↑ 측면에서 본 순결바위
↑ 순결바위
↑ 국사당
이곳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렸다는 곳"으로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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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보아도 신비스러운 곳, 절터 유적지, 영암사지를 둘러 보았다
영암사지는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에 있는 신라의 절터. 사적 제131호. 절터에는 당시의 건물 초석이 잘 남아 있으며,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 과 삼층석탑(보물 제480호), 통일신라 말기 형식의 귀부(보물 제489호) 2기가 서금당지의 좌우에 남아 있다.
영암사지는 사적 제131호. 지정면적 3,812㎡. 해발 1,103.5m의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이 절은 그 정확한 창건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려 때인 1014년(현종 5)에 적연선사(寂然禪師)가 이곳에서 83세로 입적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졌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84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절터의 일부를 발굴, 조사하여 사찰의 규모를 부분적으로 밝히게 되었다. 조사된 건물터로서는 불상을 모셨던 금당(金堂)·서금당(西金堂)·회랑(回廊) 기타 건물지가 확인되어, 당시의 가람규모를 파악하게 되었다.
특히, 금당은 개축 등 3차례의 변화가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영암사지쌍사자석등(靈巖寺址雙獅子石燈, 보물 제353호)이 있다. 이 석등은 1933년 일본인들이 불법반출하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제지하여 가회면 사무소에 보관해오던 것을, 1959년에 면민들이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다시 원위치로 이건하였다.
이 밖에 높이 약 4m의 삼층석탑(보물 제480호)과, 비록 비는 없어졌지만 통일신라시대 말기 형식의 귀부(龜趺, 보물 제489호) 2기가 서금당지의 좌우에 남아 있다.
그리고 건물의 초석, 즉 당시의 건물축대석이 잘 남아 있으며, 발굴결과 통일신라 말에서부터 고려시대에 걸친 각종 기와편 등이 다량 출토되었고, 특히 출토유물 가운데 높이 11㎝의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1점은 8세기경의 제작으로 판단되고 있어, 이 절의 창건연대를 고찰하는 데 도움을 주고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합천영암사지 [陜川靈巖寺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보물480호 영암사지 삼층석탑
이 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방형의 탑신부를 갖춘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탑이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기단 중석을 한 데 붙여 조각한 4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는데 기단 중석에는 양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1주를 조각하였다. 경사진 갑석 상면에는 호형(弧形)과 각형의 괴임을 조각하였다.
상층기단 중석은 모두 4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였는데 하층기단과 마찬가지로 모서리에 우주가 있으며 각 면은 탱주로 양분되었다. 갑석(甲石)은 아래에 부연이 있으며, 상면에는 각형의 괴임이 2단 조출(彫出)되어 있다. 탑신부는 각 층마다 옥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별석으로 만들었는데 옥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비교적 얇으며, 처마밑선은 수평을 아루며 옥개받침은 각 층 4단으로 줄었다. 상륜부는 전부 없어졌으며 3층 옥개석 상면에 찰주공(擦柱孔)이 있다. 이 탑은 옥개석의 받침수가 4단으로 줄어 탑의 규모가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결구하고 다듬은 수법이 정교하며 당당한 위풍을 지니고 있다
↑ 쌍사자석등...암수의 사자 한쌍이 석등을 받혀 들고 있어 특이하다
이 석등(石燈)은 8각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등 양식에서 간주석(竿柱石)을 사자로 대치한 형식이다. 하대석(下臺石)에는 8엽단판의 복련이 조각되었고 꽃잎 속에는 화형(花形)이 장식되었다. 상면에는 각형과 호형(弧形)의 괴임이 있고, 한 돌에 붙여 쌍사자를 세웠는데 가슴을 대고 마주서서 뒷발은 복련석 위에 세우고 앞발은 들어서 상대석을 받들었으며,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기와 꼬리, 몸의 근육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상대석에는 하대석에서와 같이 꽃잎 속에 화형이 장식된 단판 8엽의 앙련(仰蓮)을 조각하였다.
8각의 화사석(火舍石)은 한 돌이며 4면에 장방형 화창(火窓)이 있고, 나머지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어 있다. 8각의 옥개석(屋蓋石)은 평박(平薄)한데 아래에 1단의 넓은 받침이 있으며 처마밑선은 수평이고 추녀 위에는 귀꽃이 조각되어 있으며 상륜부(上輪部)는 전부 없어졌다.
하지만...보물인 이 석등도 일제 강정기 시절 왜구의 손에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실패를 하였다는데...우리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보물급 유물들이현재까지 수 없이 일본에 건너가 있다...일본은 앞으로 그 유물들을 송두리 아무조건 없이 반환해야만 할 것이다...그래도 그 응어리진 민족의 한이 치유되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도 망언을 거침 없이 토하는 왜구인데...그들을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 !
↑보물 제489호 영암사지 귀부
이 귀부 2기는 법당지의 동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모두 비신과 이수(?首)는 결실되었다. 동 귀부는 서 귀부에 비해 규모가 클 뿐, 직립한 목과 용두화(龍頭化)된 귀두(龜頭),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 등 조형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동 귀부의 등갑(背甲)에는 전면에 복선의 귀갑문(龜甲文)을 조식하였고,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碑座)의 측면에는 사실적으로 표현한 인동운권문(忍冬雲卷文)을 조각하였다.서 귀부는 동 귀부보다 평박(平薄)한데 등갑에는 복선귀갑문(復線龜甲文)과 유려(流麗)한 인동문(忍冬文)을 조각하였다. 비좌의 4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상면 주연(周緣)에는 연판문을 조식하였는데 대체로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귀부의 양식, 주위 석조유물 등과의 관련을 고려할 때 조성 시기는 9세기말경으로 추정된다.
운무 가득한 산행, 철쭉꽃 기대 못미친 산행, 이 또한 행복 추억 남겨 본다.
황금연휴 기간 특별한 계획 없지만 갈 곳은 많은데, 그냥 향한 곳 충북 단양에 머문다.
다음날, 단양 팔경 중 구담봉과 옥순봉 산행 이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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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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