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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영남알프스

울산 정족산 철쭉꽃 구경『그룹원과 함께』'17.5.6

 

 

 

 

정족산 정상 ♧

 

 

가까이 있어 늘 부담없는 곳, 천성산과 더불어 친숙한 곳, 정족산

 황금연휴 기간을 쪼개어, 그룹원들과 함께 올라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족산은 일명 솥발산이라고 하며, 울산광역시 웅촌면과 양산시 하북면 경계를 이루는 높이 700.1m로 정상부는 암봉으로 솟구쳐 있다. 천성산과 원효산으로 이어리는 북쪽 긑자락으로 낙동정맥을 이어주는 곳으로, 정상에서는 영남알프스 연봉과 천성산 대운산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멋진 조망처로 일망무제의 풍경이 펼쳐진다.

정족산은 가물 때 기우제를 지냈던 무제치늪과 신라시대 창건했다고 하는 운흥사는 지금은 터만 남아있으며 일부 부도만 남아 있다. 정족산은 일명 솥발산이라 하는데 한자화하여 정족산이 되었다. '솥밭'은 가마솥을 얹어 놓을 때 사용하는 솥밭처럼 생겨 이름 지어졌다고 하며 옛날 온 천지가 물에 잠겨 있을 때 남은 정상부의 암봉이 솥밭과 같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여지도서』 "언양에 정족산은 으듬 산줄기가 취서산(영축산) 남쪽 기슭에서 뻗어 나온다" 고 하였다. 『청구요람』 22층 7면에 취서산 남동쪽의 산으로 정족산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비롯해 고지도에 정족산과 그 기슭에 있었던 대찰 운흥사가 표기되어 있다. 또한, 운흥사지가 있는 반계계곡에는 '운흥동천'과 '홍류동문'이란 각암이 있는데, 운흥사계곡(반계계곡) 운흥동천은 하동 쌍계사의 화개동천, 합천 해인사의 홍류동천과 함께 영남의 3대 동천으로 꼽혔다고 한다.

'울산도호부사 홍상빈(경종 1년 1721) 각자했다는 운흥동천 각암(마애석각)은 운흥사 입구 계곡에 현존하고 있다.

 

 

 

 

          

 

↑ 운흥사 입구 계곡에 음각되어 있는, 『운흥동천(좌) 각암과 홍류동문(우)』각암

 

흥사 마애석각은 운흥사에 들어가는 어귀에서 오른편으로 보는 암벽에「雲興洞天」이라 크게 각자한 것이다. 동천(洞天)이라 함은 산천이 둘러 있고 경치가 뛰어난 곳을 말함인데 이 동천은 택리지(擇里志)에서 따온 글로 생각된다. 운흥골(雲興谷)의 석각은 울산도호부사로 있었던 홍상빈(洪尙賓)이 각한 것이다. 홍부사는 경종 1년(1721)에 떠난 사람이니 이 글을 새긴 것이 재직기간에 새긴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운흥사는 폐사된지 오래전이지만 정족산의 반계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는 운흥골의 수려한 자연은 변함없어 그곳 사람들은 운흥사지를 물으면 '운흥동천' 각암 네 자까지 위치까지 잘 알려주고 있다.

또한 "운흥동천" 각암 옆에 바위에 "홍류동문"이란는 음각이 있는데, 누가 언제 각암했는지 알수 없지만 명필임에 분명하다.

 

 

 

 

 

 

 

 

 

        

 

 

 

 

 

 

↑ 정족산 철쭉군락지 꽃은 끝물로 치닫고 있다

 

 

 

 

 

 

 

 

          

 

 

 

▣ 산이름:  천성산 북부 정족산

 

▣ 산행지: 울산광역시 웅촌면과 삼동면, 경남 양산시 하북면 

▣ 코   스:  반계마을(경로당)→ 반계저수지둑(건너) → 운흥동천, 홍류동천 각암 → 운흥사지부도 → 주능선(대성암)갈임길

                   남앙지맥분기점 → 용바위 → 정상 → 철쭉군락 → 임도 → 남암지맥분기점 → 초소 → 남암지맥 따라 진행 

                   우측갈림길(희미) → 무제치 제2늪 → 묵은 임도 → 좌측 갈림길 → 운흥사지 → 반계마을(경로당)【산행종료】

                  [원점회귀] 입산 09:20 ~하산15:05 완료 _산행 후 대복식육식당 이동

▣ 일   시: 2017년 5월 6(토)

▣ 날   씨: 맑음 _올봄 최대의 중국발 미세먼지

▣ 일   행: CLX총무팀 운영그룹 조릿대 외 4명

▣ 이   동: 자가 운전【왕복 60km】

 

♧ 산행 이모저모

 

족산 철쭉군락 철쭉꽃 산행이라 할 수 있지만, 한달전 계획하여 추진한 행사라 연휴기간이 쪼개져 버렸다. 하지만 오랜만의 그룹원들과 함께 나들이 길이니 이것 또한 기분좋은 하루일 것이라 생각하고, 약속된 시간을 팀원들에서 다시한번 문자로 전하고, 토요일 문수구장에서 모였다. 가까운 거리니 모든게 부담이 없는 곳, 산행 또한 격한 오름길도 아니고 내림길 또한 그렇다. 아마도 철쭉군락 꽃은 조금 늦은 듯 하지만 어제 천성산이 만개였으니 그래도 볼만 할 것이라 판단된다.

아무튼 토요일 약속시간에 맞추어 문수구장에 도착, 사촌동생 상으로 빠진 한명을 제외한 5명이 모여 반계마을를 향하고, 그다지 어려운 곳 없는 산행이니 부담없는 산행, 이 또한 한 추억으로 남겨 봅니다. 

 

 

 

 

↑ 반계마을 갈참나무 보호수

 

반계마을 당산목으로 안내판에 갈참나무라 소개하고 있으며, 수령이 4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울산광역시에서는 이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감참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며 줄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과 비슷하여 잘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는 나무다. 아직도 도토리 열매가 열려 매년 묵을 쑤어 마을잔치를 한다고 한다.

 

 

 

 

 

↑ 반계마을 경로당 앞 패킹 후 산행채비

 

 

 

 

↑ 포장 임도가 싫어 반계저수지 뚝방 건너 계곡으로 진행

 

잘 지어진 별장사이를 지나, 농수로 콘크리트 도랑을 따라 진행 한다.

농수로 따라 오르다 우측으로 샛길 따라 오르면 계곡 우측을 따라 오르는 옛길이 이어지고, 큰 바위가 우측으로 보이고 그곳에 "훈흥동천"이라는 각암이 있다.

 

 

 

 

↑ 운흥동천 각암

 

무심코 지나치면 각암이 희미하여 놓치기 쉽지만 바위가 나타나면 유심히 살펴야 한다.

 

 

 

 

 

 

 

 

 

 

 

흥사 마애석각은 운흥사에 들어가는 어귀에서 오른편으로 보는 암벽에「雲興洞天」이라 크게 각자한 것이다. 동천(洞天)이라 함은 산천이 둘러 있고 경치가 뛰어난 곳을 말함인데 이 동천은 택리지(擇里志)에서 따온 글로 생각된다. 운흥골(雲興谷)의 석각은 울산도호부사로 있었던 홍상빈(洪尙賓)이 각한 것이다. 홍부사는 경종 1년(1721)에 떠난 사람이니 이 글을 새긴 것이 재직기간에 새긴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운흥사는 폐사된지 오래전이지만 정족산의 반계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는 운흥골의 수려한 자연은 변함없어 그곳 사람들은 운흥사지를 물으면 '운흥동천' 각암 네 자까지 위치까지 잘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운흥동천" 각암을 지나 몆걸음 지나면 "홍류동문"이란 음각이 있는데,,,

 

 

 

 

↑ "홍류동문" 음각

 

 

 

 

 

 

"홍류동문"이란는 음각이 까막눈이 보아도 범상치 않는데누가 언제 각암 했는지 알수 없다고 하지만, 명필임에 분명하다.

 

 

 

 

산호가든과 무릉도원 가든을 만나 지나면 운흥사지 가는 임도 따라야...

 

 

 

 

↑ 운흥사 표석 앞 도착

 

이곳에서 직진이면 운흥사지로 향하고 무너진 좌측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운흥사부도를 오르게 된다.

또한 좌측 산길 들면 폐사된 운흥사지를 복원코자 뜻하는 운흥사로 가게된다.

 

 

 

 

↑ 지난 홍수로 무너진 다리를 건너...

 

 

 

 

 

 

 

훈흥사 번창 당시 민초들의 터전인듯, 대나무 숲 지나면 좌측으로 운흥사 부도에 도착한다. 

 

 

 

 

↑ 운흥사지 부도 도착

 

부도나 운흥사지 터를 보면 운흥사가 얼마나 규묘가 컷음을 짐작 할 수 있다.

 

 

 

 

 

 

 

 

 

 

 

 

 

 

 

 

흥사지의 부도는 모두 7기가 있었다 하는데 한기는 흙속에 묻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문화재로 지정된 부도는 금당자리가 있었던 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2기이다.

이 부도는 지대석(地臺石) 위에 넓은 기대석(基臺石)을 얹었는데 이 기대석은 중앙부분은 한돌로 된 석면에 2구(區)의 안상(眼象) 같은 것을 둘러서 그 가운데는 꽃무늬를 양각(陽刻)하고 좌우에는 결구(結溝)한 석면에도 각각 화문을 양각한 조각법으로 4면 다 똑같이 되어 있다.

이 기대석 위에는 방형의 석면 위에 복련화(伏蓮花)를 조각한 하대석을 얹었고 그 위에는 다시 앙연화좌대(仰蓮花座臺)를 받쳤다. 그 위에 얹은 탑신은 일반형의 석종형(石鍾形)인데 이 부도는 지금 허물어지고 있어 다시 복원을 요한다.

옆에 있는 또 한기의 부도는 지대석 위에 방형의 기대석을 얹고, 그 위에 앙연화좌대를 받쳐 탑신을 얹은 간략한 일반석종형부도로 연화대를 제외한 다른 부위에는 아무 무늬의 조각도 없다. 이 부도도 넘어진 것을 다시 세운듯 한데 연화좌대를 받치지 않은 채 기단석 위에 탑신만 안치하고 연화좌대는 그대로 지상에 굴러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운흥사 부도를 지나면 낙동정맥 주능선 대성암 갈림길까지 꾸준한 오름길 올라야 한다.

 

 

 

 

↑ 한바탕 땀 흘려 올라, 잠시 휴식하며 목축이고...

 

 

 

 

 

 

 

 

 

 

↑ 주능선 대성암 삼거리까지 계속 오르고...

 

 

 

 

↑ 대성암 갈림길 주능선 도착

 

 

 

 

 

 

 

 

 

 

 

 

 

 

 

 

 

 

 

 

 

         

 

 

 

         

 

 

 

 

 

 

 

 

 

 

 

 

↑ 잠시 휴식과 간식타임 갖고...다시 출발

 

 

 

 

 

 

 

 

 

 

↑ 거친 임도길 치고 오르면...정족산 정상이 지척에 보인다.

 

 

 

 

 

 

 

 

 

 

 

 

 

 

 

 

↑ 지맥 갈림길 지나 안부 철쭉

 

 

 

 

        

 

 

 

 

 

 

 

 

 

 

임도 버리고 정족산 정상 오르는 길, 정상 도착 전 용바위에 도착 한다.

 

 

 

 

↑ 용바위

 

 

 

 

 

 

 

 

 

 

 

 

 

 

 

 

 

 

 

 

 

 

↑ 용바위와 뒤로 천성산

 

크게 멀지 않는 곳인데, 올봄 최악의 황사로 혼탁하지만 다행히 숲속에서는 황사를 느끼지 못하겠고...그냥 느낌일까 !

 

 

 

 

 

 

 

 

 

 

 

 

 

 

 

 

 

 

 

정상 직전 암벽아래 명당터에서 조금 이른 오찬시간 즐긴 후

 

 

 

 

↑ 정상을 오른다.

 

 

 

 

↑ 정족산 정상 도착

 

 

 

 

 

 

 

 

 

 

 

 

 

 

 

 

 

 

 

 

 

 

 

 

 

 

 

 

↑ 정족산 정상에서 천성산

 

 

 

 

↑ 멀지 않은 곳 건너편 대운산도 황사로 탁해 산릉 형체만 보이고...

 

 

 

 

 

 

 

 

 

 

 

 

 

 

 

 

↑ 정족산 정상아래 철쭉군락

 

 

 

 

 

 

 

 

 

 

 

 

 

 

 

 

 

 

 

 

 

 

 

 

 

 

 

 

 

 

 

 

 

 

 

 

 

 

 

 

 

 

 

 

 

 

 

 

 

 

 

 

 

 

 

 

 

 

↑ 철쭉군락을 지난다.

 

 

 

 

 

 

 

 

 

 

 

 

 

 

 

 

 

 

 

 

 

 

 

 

 

 

 

 

 

 

 

 

 

 

 

 

 

 

 

 

↑ 철쭉군락 애돌아 임도따라 다시 지맥분기점까지 빽코스

 

 

 

 

↑ 돌양기가 많이 보이고...

 

 

 

 

 

 

 

 

 

 

↑ 다시 그자리 도착

 

 

 

 

↑ 지맥분기점, 낙동정맥에서 문수산으로 이어지는 지맥 분기점

 

 

 

 

 

 

 

능선 초소에서 바로 하산하기 아쉬워, 남암지맥 임도길 버리고

주 능선으로 한동안 진행 후 우측, 무재치늪으로 내려 섯다.

 

 

 

 

 

 

 

 

 

 

 

 

 

 

 

 

↑ 무재치 제2늪 가장 많은 수량이 솟는 샘

 

늘 맑은 물이 펑펑 솟아 주변 넓은 평원 고산늪에 생명수가 흘러 든다.

 

 

 

 

 

 

 

 

 

 

↑ 무재치 샘

 

늪 주변에는 고산늪 보호를 위하 밧줄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8~90년대 이곳에서 취식을 하며 막영하던 생각에 잠시 추억에 젖어 보았다.

 

 

 

 

 

 

 

 

 

 

 

 

 

 

 

 

 

 

 

 

 

 

 

 

 

 

 

 

 

 

 

 

 

 

 

 

 

무재치늪 따라 오르다 잠시 휴식 취하며 담소 나누고...

초소 있는 무명봉 아래, 훈흥사지에서 올라오는 갈림길 좌틀하여 하산

 

 

 

 

 

 

 

 

 

 

 

 

 

무재치늪에서 발원한 거미줄 같은 물길(계곡) 비슷한 곳으로 쭉~ 하산한다.

 

 

 

 

 

 

 

 

 

 

↑ 그리고, 엉성한 돌담 안 넓은 운흥사지 터를 만난다.

 

 

 

 

 

흥사신라 진평왕(제위579-632) 때 원효대가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고려 말 지공대사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14년(광해군6)에 대희선사가 재건하였다. "저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 운흥사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으나, 1749년(영조25) "학성지"에는 관련 기록이 없어, 그 이전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운흥사는 불교 경판의 간행으로 유명하였으며, 1672년부터 1709년까지 많은 불경이 간행되었다. 운흥사지 목판본에서 나온 기록을 정리하면 16종 673판으로, 이 목판은 현재 양산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다.

2001년 국립창월문화재연구소(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학술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건물터 7동, 부도 6기, 수조 4기 등의 중요한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다. 발견된 부도 6기 중 2기는 울산시 유령문화재 제4호 운흥사지 부도로 지정되었으며, 나머지 4기는 운흥사지 인근에 공간을 마련하여 정비하였다.

 

☞ 2004년 12월 16일 울산광역시기념물 제43호로 지정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옹촌면 고연리 산 175

 

 

 

 

 

 

 

 

 

 

 

 

 

 

 

 

 

 

 

 

 

 

 

 

 

 

 

 

↑ 이토록 규모가 컷던 운흥사가 어떻게 폐사되었는지,,,궁굼증만 증폭된다.

 

 

 

 

↑ 운흥사지 옛 축대와 사방시설의 설치된 계곡 따라 내려서면...

 

 

 

 

↑ 다시 그자리에 당도하게 된다.

 

 

 

 

         

 

 

 

         

 

 

 

         

 

 

 

 

 

 

 

 

 

 

 

 

 

 

 

 

 

 

 

 

 

 

 

 

 

 

 

 

 

 

 

 

 

 

 

 

 

 

 

임도 따라 내려서 반계마을 원점회귀 하여 산행 마무리 하고...

 

 

 

 

 

♧ 반계마을 갈참나무에 대하여 ♧

 

어른 두세사람이 팔을 벌려 잡아야 할 만큼 큰 이 갈참나무는 조상대대로 살고 있는 현주민들 말에 의하면 이 갈참나무 수령이 2천년이 넘었다고 알고 있다고 한다. 옛날부터 마을에 있던 이 참나무를 쓸모없이 여겼음에도 오랫동안 반계마을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에 가끔 구렁이를 잡아서 나무 밑둥 구멍으로 양분 삼아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해마다 도토리가 엄청나게 열려 그 도토리로 묵을 쑤어 마을 잔치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현주민들은 울주군에서 조사(수령 402년)을 믿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도그럴것이 타 지방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 285호인 영풍 단산명의 갈참나무는 높이가 13.8m 둘레가 3.39m인데 수령이 600년이라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반계마을 갈참나무는 높이가 19m 둘레가 둘레가 4.3m 밑둥 둘레는 6.1m에 달하니, 울주군에서 조사한 수령에 대하여 신뢰할 수 없다고 하니, 의문이긴 하다.

 

 

 

 

 

 

 

수백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갈참나무를 뒤로하고, 예정된 뒤풀이 장소로 이동,

쇠고기도 익고, 담소도 익고, 술도 익어가는 자리, 낮술에 반술 취하니...

연일 치열한 일터 아닌 곳에서 그룹원과의 하루, 즐겁고 유쾌하게 마무리 하였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