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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국 내 전 체

울산 문수산『반나절 힐링 문수산 휘돌기』'17.8.20


♧ 문수산 소개

  

수산은 청량면 율리의 서쪽에는 웅촌면, 범서면, 삼남면 등 4개면의 경계를 이루는 문수산(600m)이 우뚝 솟아 있다. 문수산은 일명 청량산이라 하기도 하며 울산시 남쪽에 위치한 산이다. 이 산은 문수보살이 산세가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 여기에 와서 살았다하여 처음엔 청량산이라 불리워지다가 후에 문수산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문수산 남쪽으로 남암산이 쌍둥이처럼 솟아 있고  능선은 정족산 천성산으로 이어진다.

후한 영평 10년에 마동, 축법란 등이 이 산에 올라 암자를 지었으며 뒤에 두순, 도선 등 큰 스님들이 살았고, 고려때에는 라마교의 전당이었다고 한다. 강원도 오대산에 불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과 월정사가 있어 불교에서 유래된 산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곳 문수산도 그 동쪽의 영축산과 같이 불교와 깊은 관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에는 신라 때에 세웠다는 문수암(현재, 문수寺)이 있고 주변 청량면의 이름도 이 청량산으로 말미암아 붙여진 이름이다.




↑ 영축산 자락에서 건너다 본 남암산...멀리 대운산은 잔뜩 구름이




↑ 영축산 자락에서 좌)남암산 우)문수산




↑ 문수산의 암질 편마암




↑ 큰골 폭포


워낙 가물어 폭포가 폭포답지 못하고, 윗쪽 지방은 물난리인데 울산은 유래 없는 가뭄이 지속되고 있어 아쉽고, 아래 그림은 수량 개안을 때 폭포








↑ 참뀡의다리 소담하게 등로 주변에 활짝




         



▣ 산이름: 문수산

 

▣ 위   치: 울산 울주 청량면 웅촌면  범서면 삼남면

▣ 코   스:  → 망해사 → 영축산 → 문수봉 → 깔딱고개 → 큰골폭포 → 샛길 → 문수산 정상 → 문수사 → 문수사 위 샛길 

                 깔딱고개 → 안영축 → 영축 → 율리농협

               【반나절 힐링/ 땀내기/ 원점회귀

▣ 일   시: 2017년 8월 20일(일)  

▣ 날   씨: 흐림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운전(왕복 20km)

▣ 비   용: 없음


♧ 산행 이모저모


문수산은 울산에 있어 주중은 물론 주말에는 수 많은 시민이 문수산에 올라 휴식과 힐링을 하는 곳, 불과 90년대 초까지 문수암 암장의 암벽꾼들만이 찾던 곳이 이제는 수 없이 많은 산행로가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있지만 울창한 숲과 솔이 유독 많은 곳이다. 예전 문수암장에 오를때면 지금의 문수산국수집인 할매 홀로 안영축을 지키고 있었는데, 다 쓰러져가는 할매 집은 그때 당시 그냥 촌집이었고 암벽등반 후 하산 때 할매에게 국수좀 삶아 달라 하여 탄생한 곳이 문수산국수집으로 지금은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으로 탈바꿈하여 있다. 참 그때를 생각해 보면 모두들 도시로 떠나고 몆채 남지 않은 촌집이 안영축에 있었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신축을 하여 음식점이 가득 차 있는 곳으로 변해 있다.

올 여름 산행다운 산행 한번 제대로 못하고 체력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고, 반나절 시간을 내서 문수산을 올라 보았는데, 영축(농협)부터 능선을 이어가며 큰골을 다시 내려섯다 오른 문수산 그저 가볍게 걸었던 곳인데 오늘은 초축음 되어 걸어야 했던 시간이 나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다시 정상적인 체력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연일 이어지는 일과 스트래스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몸뚱이는 최악의 발악으로 혹독한 오름길이 이어지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챙겨야 겠다는 절실함을 일깨워 주었다.



↑ 율리 보호수


2000년 5월 보호수로 지정, 곰솔과 팽나무로 250~300년이 되었다.





율리농협부터 오르기로 하고, 어렵사리 길가 패킹 후 율리 보호수 보고 산행 출발...

보호수 건너편 산길 열려 있고, 시간 구애받지 않는 문수산이라 아직 많은 이들이 산행을 시작하고

슬쩍 스며들어 오르는 숲길, 바람 한점 없는 날씨, 초반부터 콩죽같은 땀 흘려야 했다. 



↑ 들머리




↑ 간단한 차림, 스틱 없이 잘도 오르는 짱














↑ 시야 트이는 곳 영축산에서 본 남암산과 문수산




↑ 남암산




↑ 문수산




↑ 남암산 좌측 멀리 대운산











빼곡히 자란 솔과 각종 활엽수림이지만 웬일인지 공기가 텁텁하게 느껴지는 건 왜인지

잔뜩 찌뿌린 날씨는 습한 기운으로 연신 땀만 줄줄 흐르고, 여름 가기전 짝짓기 찾는 매미 울음 소리만 요란하고

사뭇 다른 이느낌은 뭔지, 다리는 천큰처럼 땅에서 떨어지기 싫어하고, 잠시의 평지에서도

가쁜 숨만 몰아 쉬니, 정말 몸 컨디션이 엉망인것도 있겠지만 관리하지 못한 두달간의

시간이 이처럼 나늘 변하게 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 오르막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문수산 특유의 암질의 덩치 큰 바우들이 영축산 사면을 채우고 있어 그 육중함 자태가 차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문수산 깔딱고개 쉼터


늘 많은 이들이 한동안 쉬어가며 문수산 정상까지의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 출발지인 쉼터다.

과거 막걸리 파는 장사치 움막 없어지니 온전히 문수산을 오르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식처로 손색없고, 골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곳이다.



↑ 깔딱고개


이곳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샘터를 경유하여 정상을 애돌아 오를 수 있고, 직진하면 정상까지 바로 치고 오르는 곳, 좌측으로는 안영축에서 올라오고, 우측으로 직틀하면 천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우측으로 직틀하여 큰골에 있는 폭포까지 내려 섯다 다시 오를 예정, 워낙 밋밋한 산행이라 늘 그렇게 했는데 오늘은 폭포까지 내려섯다 다시오르는 가파른 샛길이 왜 그다지 힘들던지...!




↑ 등로 옆 참꿩의다리 몆송이 소담하게 피어 있고...




↑ 쏟아져 내려서 도착 한 큰골


오랜 가뭄에 계곡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초라한 풍경이다.










큰골폭포는 더욱 바싹말라 있고, 병아리 오줌마냥 낙수하는 물이 폭포임을 알려 주고 있으니...

그래도 몆차례 장대같은 비가 내리긴 했지만, 것도 매말라 있던 나무들이 생명수로 몽땅 저장을 했는 모양이다.

흘러야 할 물이 흐르지 못하고 고여있는 물에는 모기와 날파리 유충만 가득하고 잠시 서 있으니 몸에서 나는

찌든 내로 인해 날파리 떼가 내몸을 몽땅 휘감아 날며 눈과 귀를 공격하니 오래 머물러 있은 수 없었다.







↑ 실낱같은 폭포 물줄기





















날파리떼의 습격으로 더이 상 쉬지 못하고 바로 골짝 우측으로 치고 오르면 주등로까지

가파른 샛길을 올라야 하고, 바람한점 없고 습한 날씨에 바닥난 체력, 딱 그만큼 고통으로 전해진다.


그래도 쉬지 않고 올라 이정표 있는 주등로에 도착하여 또 물 들이키고서야 정신 차린다.








↑ 문수산 정상까지 750m 남은 지점




↑ 운지와 이름모글 버섯이 군락으로 피어 있고
















문수산 정상 직전, 가파른 계단 올라 서야 비로소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 정상...Finish






파김치가 되서 도착한 정상, 짱이 쓰디쓴 한소리 하고...그냥 웃고 만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더 절절히 느끼고 패자인듯 하였으니...할 말이 없기도 해서...날이 갈 수록 쇠퇴해진 내자신

나이탓 해야 할 일이 아닌것을 잘 알기에 창피함은 무어라 변명 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정상에서 북쪽방향


중앙 좌측부터 연화산 무학산 우축으로 치술령, 옥녀봉은 치술령 앞에 겹쳐 보인다.





정상에서 잠시 쉬어 가려니 오히려 바람한점 없어 무덥기만 하고, 바로 문수사 방향으로

오히려 숲속이 훨씬 시원한 상황, 흐린 날씨고 햇볕 강하지 않았지만 너무 무더웠다.


정상이 더워서 그런지, 항상 넓직한 정상에는 많은 이들이 진을 치고 먹거리 시간

즐기는 곳인데 그마져도 몆몆팀 밖에는 없어 정상은 한적하기만 한 것이 오히려 어색하였다.





그러고 보니, 문수산과 문수사를 몆달만에 오는 듯 하고, 문수사 위 샛길로

깔딱고개를 진행해야 하지만 오랜만에 문수사를 둘러 보았다.


퇴근 후 야밤에 수 없이 올라왔던 곳이라 정겨운 곳이기도 하다.




♧ 문수사 소개 ♧

문수사는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342번지에 자리잡은 절로 문수산의 이름을 딴 절이다. 이 문수산은 신라와 고려 때는 주로 영축산이라 불려오던 산이다. 천축국왕사성 부근에 있는 영축산의 이름이 불교를 따라 우리나라로 이동하여 온 것으로서 천축의 영축산은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곳이며, 신선들이 살았고 독수리가 많이 있으므로 영축산 또는 축두, 축봉, 축대라고도 하였다는 것이다. 또 축령들이 산에 있으므로 이름하였고 혹은 산모양이 수리머리와 비슷하다는데서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조에 와서는 문수산이라 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렇게 나타난다. 또 이 산을 일명 청량산이 라고 하였는데 산 아래에 있는 청량면은 청량산에서 비롯된 이름인 것이다.

이 산을 문수산이라고 한것은 화엄경 제10법 운지로서 보살들이 살던 곳이어서 문수보살이 응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삼국유사 권 5 연회도명 문수점에서 문수대성과 변재 천녀가 응현하여, 무거설화에서도 문수보살이 나타난다. 무거설화를 보면 "경순왕은 백척간두에 선나라의 장래를 영취산의 문수대성의 계시를 받아 결정키로 결심하고 태자와 둘째 왕자를 거느리고 하곡현의 영취산을 찾아 길을 나섰다. 먼저 태화에 이르러 참배하고 또 길을 나섰는데 중도에서 길가에 한 동자승이 나타나더니 대왕께서 오실 줄 알고 산으로 인도하여 모시고자 왔다고 하였다. 왕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크게 만족하여 길을 따랐다. 그러나 삼호 앞에서 태화강을 건너자 얼마가지 아니하여 동자승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왕은 직감에 이 동자승이 문수 보살임을 느끼고 하늘이 이미 나를 저버리는구나 하여 크게 탄식하며 이제는 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는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이래서 왕은 발길을 돌려 월성(지금의 경주)에 환궁하여 사방의 땅이 다 타인의 소유로 돌아가고
나라의 힘은 다 쇠퇴하여 다시 일으키지 못함을 통탄한 나머지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기를 꾀하였다. 이 탄식한 자리를 '헐수정'이라 하였으며 동자승이 자취를 감춘 속을 무거라 하였다.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이 곳에 절을 세워 문수사라 했다고 한다. 이 문수사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범어사의 말사가 되면서 사명을 문수암이라 고쳤다가 1989년에 중건하여 다시 문수사라 부르게 되었으며 건립연대 785년 추정된다




↑ 문수사 도착


문수사는 늦은 시간까지 식당에 가면 공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주말 이곳을 찾아 공양하는 이들이 많다.

울산 시민의 덕으로 키워진 문수사 또한 시민에게 배려하는 공양간을 늦은 시간까지 베푸니 참 고마운 일임에 분명하다.







↑ 문수사 명부전과 삼측석탑



↑ 문수사 절벽에 봉안한 미륵전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 미륵전 옆 문댐돌


소원을 빌며 문지르다 보면 어느순간 돌이 밀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동안 수없이 왔던 문수사이지만 아직 필자는 한번도 이 밀돌을 밀어본 적이 없다.








↑ 산신각






문수사 범종각 나서 다시 정상쪽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돌무더기(돌탑) 군락이 살짝 보이는 곳에서

주 등로 버리고 우측으로 스며들면 문수사 위를 돌아 깔딱고개로 횡단할 수 있는 샛길이 있다.


이 샛길은 안영축에서 문수산 정상을 가장 단거리로 오를 수 있는 곳이지만 문수산에서 가장 가파른 곳으로

수년전 야산으로 체력단력을 하는 코스로 주로 이용하였는데, 지금은 길이 많이 묶어 있다.



↑ 주등로 버리고 우측 샛길 들날머리










문수산 직등코스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바위를 지나면 산사태로 길 끊겨 있어 위로 돌아 건너야 한다.

큰 너덜경이 나타나고 작은 얼마전까지 돌무덤이 있었는데, 이장하라는 안내문이 있더니 이장을 한 것을 추정되고

암벽아래 너덜경에는 작은 움막 들어서 있는 걸 보면 사유지인 듯 하기도 하지만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 다시 깔딱고개 도착


정상아래 사면을 애돌아 횡단하여 도착한 깍딱고개는 이제 한산해져 있고...




↑ 우측으로 내려서...국수 먹으러 안영축으로 하산









↑ 안영축 도착무렵 올려다 본 문수산 정상






안영축 문수산국수집에어 정구지전과 국수 한그릇 먹고, 도로 따라 하산

입추 지난 후 살짝 꺽인 폭염이지만, 아직 완연히 가시지 않은 더위에 흠뻑 땀 흘려야 했다.

일과 스트래스에 지친 나날들, 비록 겨우 반나절 시간으로 걸음한 문수산 걸음

가까이 있어 더욱 고마운 곳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오래전 문수암장 개척과 등반차 수 없이 오가던 곳, 비록 그때 깡촌 정취 사라지고,

할매가 만들어 주시던 국수 맛은 변해 있지만, 옛 추억 남아 있는 곳이라 늘 정겨운 곳,

나도 나이 들어 감을 실감하는 지금, 그 때의 열정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 하루였다.


죽기까지 상록 읽지 않는 나무처럼...!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