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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다녀온山寺

청도 박곡리사지 석가 석조여래좌상과 오갑사는 '23.4.16 (일)

 

 

 

청도 박곡리사지 '석조 석가여래좌상'을 알현하려 조심스럽게 빗장을 열었다.

 

온전치 못한 석탑과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모셔 놓은 작은 전각이 보이고...

좁은 터에 초라해 보이는 보물, 아마도 절터에는 오래전 민가들이 무분별하게 들어 선 듯 하다.

 

또한 베틀바위 아래 '오갑사' 중 하나인 '소작갑사'와 연관되지 않을까 궁굼하기만 하다.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203호)

 

높이는 대좌까지 2.76m, 불상 1.54m 이다. 8세기 후반 9세기 전반에 조성한 불상으로 추정되며, 1928년 큰 불로 불상이 많이 훼손 되어 있어 얼굴은 알아 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 되었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양식으로 당당하고 세련된 조각품이다. (주소: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653번지

 

오갑사(五岬寺)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돕는다는 오갑사는 신라 진흥왕 18년인 557, 운문으로 들어온 도승은 금수동(金水洞)계곡에 작은 암자를 지었다. 현재의 운문사 옆 북대암 근처다. 그리고 3년을 수도하며 홀연히 득도한 그는 산세의 혈맥을 짚어 도우(道友) 10여 명과 함께 다섯개의 갑사(岬寺)를 짓기 시작했다.가운데 '대작갑사(大鵲岬寺)'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9천보() 지점에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 7리에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 10리에 '소작갑사(小鵲岬寺)', 그리고 북쪽 8리에 '소보갑사(所寶岬寺)' 이렇게 오갑사(五岬寺). 기록에 따르면 다섯 갑사의 역사는 560년에 착공해 7년 동안 이루어졌고 거의 동시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작갑사가 오늘의 운문사이며, 소작갑사가 대비사가 유력하다.

 

호거산(虎踞山)은 '운문산'을 지칭하는 것이며, 이 곳에는 호랑이와 관련 된 산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1188m 운문산을 중심으로 바로 아래가 '범봉'이며, 삼지봉 북릉(호거대 능선)을 내려서면 서래봉을 지나게 되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호랑이가 있으니 '장군봉'이라고 하는 '호거대'를 만나게 된다. 필봉 같이 뾰족하게 솟아 올라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호거대에서 잠시 오르면 우측은 방음산 방향이고 좌측은 까치산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데 여기도 '해들개봉'이라는 '호거산' 정상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방음산으로 진행하면 '와호산' 이라는 작은 봉우리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도 호랑이와 관련이 있다. 더해 북대암을 감싸고 있는 산 또한 '복호산'이니 사방이 온통 호랑이가 버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작갑사'는 박곡리 미륵당에서 약 900m 떨어진 북쪽 계곡 중턱의 베틀바위 부근 절터로 추정된다. 베틀바위 북동쪽의 봉우리에서 남으로 뻗은 비교적 급한 사면의 가장자리다. 절터에는 건물지의 흔적과 불상대좌의 지대석과 하대석, 석불좌상의 하반신이 남아 있고 기와 조각이 넓은 지역에 걸쳐 산재하고 있어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작갑사는 운문사와 함께 중창한 대비사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보양국사가 중창 때 위치를 옮겨 원래의 자리는 아니지만 소작갑사의 법등을 잇고 있는 것이 바로 대비사라는 견해다.

'천문갑사'는 운문면의 신원리 절터로 여겨진다. 운문사 남쪽 운문천 상류의 사리암 골짜기에서 다시 상류를 따라 오르면 4개의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닿는데, 이곳을 천문동(天門洞)이라 부른다. 계류가 만나는 곳에 배 모양으로 튀어나온 구릉 위에 절터가 있다. 강돌로 쌓은 석축과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기단으로 추측되는 돌들을 볼 수 있다.

'소보갑사'는 운문면의 오진리 절터로 추정된다. 절터는 운문호와 옹산강에서 오진리 마을로 흘러오는 개울이 만나는 끝자락으로 갑(岬)형의 지형에 건물지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관련 유물이나 유구는 확인되지 않지만 신라의 기와 조각이나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됐다.

'가슬갑사'의 위치는 삼국유사의 원광서학(圓光西學)조에 나타난다. 기록에는 '원광법사가 수나라에 갔다 돌아와 가슬갑에 머문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지금 운문사 동쪽 9천보(步)쯤 되는 곳에 가서현이 있는데, 혹은 가슬현(嘉瑟峴)이라고 하며, 고개의 북쪽 골짜기에 절터가 있으니 바로 이곳이라는 설명이 남아 있다.
이를 근거로 가슬갑사는 운문면 바깥삼계리의 삼계리마을이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바깥삼계리는 운문산의 중앙부에 해당하고 운문령에서 발원하는 바깥삼계리천과 문복산에서 발원하는 개살피계곡이 만나는 골짜기의 땅이다.

 

 

 

박곡리사지 석조여래좌상 안내문과 전각 대문

 

 

 

 

 

아래에 안내문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조심스럽게 빗장을 열고...

 

 

 

 

 

삼층석탑과 전각

 

온전치 않지만 단아한 삼층석탑이 서 있고

뒤로 불상은 모신 작은 전각이 조촐히 있다.

 

 

 

 

 

 

 

 

 

 

 

 

 

 

 

 

 

불상 광배와 전각

 

다시 조심스럽게 전각 문을 열었다.

 

 

 

 

 

석조 석가여래좌상

 

경북 청도 박곡리 석가 석조여래좌상은 통일 신라 시대인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불상으로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76m이며, 불상의 높이는 1.54m이다.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 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이름 중의 하나이다. 불상은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데 신체는 양감이 풍부하며 허리의 굴곡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데, 이 손모양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악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은 1928년에 큰 화재로 얼굴, 신체 각 부분, 대좌 등이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당당하면서도 세련된 통일 신라 전성기의 불상으로 높이 평가된다.

 

* 대좌: 불상을 올려놓는 대

* 결과부좌: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얹은 다음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체 얹어 앉는 자세

 

[안내문 옮김]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

 

 

 

 

 

 

불상 광배

 

또한 온전치 않지만, 제자리가 아니라서 아쉽다.

 

 

 

 

 

삼층석탑

 

이 또한 온전치 않지만 섬세한 조각미가 돋보인다.

 

 

 

 

 

 

 

 

 

 

 

 

 

 

 

 

 

불상 광배와 석불 전각

 

 

 

 

 

 

 

영남알프스 변방의 오봉산 베틀바위 산행 후 찾아 본 박곡리사지

 

오갑사 중 한곳인 소작갑사 터가 주변에 있고, 대비사와 함께

 

이 박곡리사지는 오갑사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오갑사에 대하여 궁굼증이 깊어 간다.

 

아무도 없는 이곳, 석탑 위에 동자승 앉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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