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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다녀온山寺

청도 휴식_운문사와 내원암의 봄 '23.4.9 (일)

2023.4.9 (일)

 

오는 듯 했던 봄, 벌써 봄은 황급히 달아나고 있는 듯 하고...

 

어느새 산사면은 온통 신록 차올라, 화사한 단풍빛에 버금하고 있다.

 

청도에서 주말휴식 후 운문사와 내원암의 봄을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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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서부해당화가 활짝 만개 하여 운문사 경내를 빛내고 있다.

 

벚꽃 질 무렵 활짝 피는 서부해당화는 운문사의 또 다른 볼거리...

 

처진 소나무 옆에 밝게 빛나고 있어, 천연기념물 보다 더 인기가 좋다. 

 

 

 

 

운문사의 보물 '작압전'에 모셔진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

 

오갑사의 중심 대작갑사에서 유래한 운문사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 '작압'이란 작은 전각에 모셔져 있다. 작압이라는 말은 보양스님이 까치떼가 땅을 쪼고 있는 곳에 절을 지었다는 작갑사(운문사의 전신)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작압전 내부에는 위와 같이 보물인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가 모셔져 있다.

 

오갑사(五岬寺)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돕는다는 오갑사는 신라 진흥왕18년인557,운문으로 들어온 도승은 금수동(金水洞)계곡에 작은 암자를 지었다.현재의 운문사 옆 북대암 근처다.그리고3년을 수도하며 홀연히 득도한 그는 산세의 혈맥을 짚어 도우(道友) 10여 명과 함께 다섯 개의 갑사(岬寺)를 짓기 시작했다.가운데'대작갑사(大鵲岬寺)'를 중심으로 동쪽으로9천 보()지점에'가슬갑사(嘉瑟岬寺)',남쪽7리에'천문갑사(天門岬寺)',서쪽10리에'소작갑사(小鵲岬寺)',그리고 북쪽8리에'소보갑사(所寶岬寺)'이렇게 오갑사(五岬寺).기록에 따르면 다섯 갑사의 역사는560년에 착공해7년 동안 이루어졌고 거의 동시에 창건되었다고 한다.이 가운데 대작갑사가 오늘의 운문사이며, 소작갑사가 대비사다.

 

'소작갑사'는 박곡리 미륵당에서 약 900m 떨어진 북쪽 계곡 중턱의 베틀바위 부근 절터로 여겨진다. 베틀바위 북동쪽의 봉우리에서 남으로 뻗은 비교적 급한 사면의 가장자리다. 절터에는 건물지의 흔적과 불상대좌의 지대석과 하대석, 석불좌상의 하반신이 남아 있고 기와 조각이 넓은 지역에 걸쳐 산재하고 있어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작갑사는 운문사와 함께 중창한 대비사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보양국사가 중창 때 위치를 옮겨 원래의 자리는 아니지만 소작갑사의 법등을 잇고 있는 것이 바로 대비사라는 견해다.

'천문갑사'는 운문면의 신원리 절터로 여겨진다. 운문사 남쪽 운문천 상류의 사리암 골짜기에서 다시 상류를 따라 오르면 4개의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닿는데, 이곳을 천문동(天門洞)이라 부른다. 계류가 만나는 곳에 배 모양으로 튀어나온 구릉 위에 절터가 있다. 강돌로 쌓은 석축과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기단으로 추측되는 돌들을 볼 수 있다.

'소보갑사'는 운문면의 오진리 절터로 추정된다. 절터는 운문호와 옹산강에서 오진리 마을로 흘러오는 개울이 만나는 끝자락으로 갑(岬)형의 지형에 건물지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관련 유물이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신라의 기와 조각이나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됐다.

'가슬갑사'의 위치는 삼국유사의 원광서학(圓光西學)조에 나타난다. 기록에는 '원광법사가 수나라에 갔다 돌아와 가슬갑에 머문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지금 운문사 동쪽 9천보(步)쯤 되는 곳에 가서현이 있는데, 혹은 가슬현(嘉瑟峴)이라고 하며, 고개의 북쪽 골짜기에 절터가 있으니 바로 이것'이라는 설명이 남아 있다.

이를 근거로 가슬갑사는 운문면 바깥삼계리의 삼계리마을이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바깥삼계리는 운문산의 중앙부에 해당하고 운문령에서 발원하는 바깥삼계리천과 문복산에서 발원하는 개살피계곡이 만나는 골짜기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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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바위에 석굴...금은광이(가칭) ....... 큰골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사리암 맞은편 계곡을 치고 오르면 고도 450m 지점에서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크기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바위에 석굴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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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지치 [꽃말: 희생]

 

 

 


 

 

▣ Photo 후기

청도 매전면 금천리 잉어재 (2022.4.8 토)

 

금천리 형님네 전원에서 가족모임, 주말 휴식을 가졌다.

건너 비슬지맥 선의산과 삼성산을 이어주는 잉어재도 신록이 차 올랐다.

유독 산벚꽃이 많은 이곳, 신록과 산벚꽃이 조화로히 아름답다. 

 

 

 

 

 

좌측으로 선의산릉

 

 

 

 

 

신록 차오르는 선의산

 

채 못다 채운 신록이 9부 능선까지 채색하고 있다.

 

 

 

 

 

뒷산 두룹채취

 

그런데 올해 두룹이 해걸이를 하는 듯 하다.

 

 

 

 

 

 

 

 

 

 

 

핀 두룹도 상태가 영~

 

 

 

 

 

하늘빛이 달라지고...

 

 

 

 

 

 

 

 

 

 

 

 

 

 

 

 

 

 

곰취도...

 

 

 

 

 

곤달피도...

 

 

 

 

 

돌미나리 외 야채쌈 모두 모아서...

 

 

 

 

 

 

 

 

 

 

 

 

늦도록 소주병과 막걸리병만 자빠트리고...

 

 

 

 

 

 

 

청도에서 주말 휴식 후 일요일, 운문재로 귀울 하며...

 

산행은 접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봄을 즐기기로 하였다.

 

 

 

운문호 벚꽃길 쉼터 (2022.4.9 일)

 

 

 

 

 

 

 

 

 

 

 

좌측 서지산 우측 472봉

 

운문호 상류는 목말라 하고 있다.

 

 

 

 

 

당겨서 본 472암봉

 

서지산을 올라 본지 참 오래 되었다.

 

 

 

 

☞ 서지산 바로가기_https://mkhur1004.tistory.com/274

 

(100515-18)청도...운문호 따라 오른 서지산 실록과 암릉에 어우러지는 운문호

▲ 힘든 산행에서의 시원스러운 조망은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한다 사방이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지는 서지산 암봉에서 운문호가 시원스럽다 ▲ 서지산 정상 전...암봉에서 내려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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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강산과 멀리 문복산

 

 

 

 

 

옹강산

 

오진리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으로 그동안 한동안 멀리 했었다.

여러번 올라본 옹강산 이지만, 최근이 2017년이니 참 세월 유수와 같다. 

 

 

 

 

 

☞ 옹강산 바로가기_https://mkhur1004.tistory.com/2212

 

영남알프스 옹강산『봄 같이 포근했던 입춘』'17.2.4

↑ 옹강산 명물 말등바위 옹강산은 가지산에서 시작하여,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산맥에서 쌀바위와 상운산을 지나 운문령에 잠시 가라 앉았다가, 문복산을 지나 832.9봉 서담골봉에서 서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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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사

운문사 상징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

 

처진 소나무는 운문사 경내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삼월삼짓날에는 해마다 소나무에 막걸리를 주고 있다. 이 나무는 소나무의 일종으로, 그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점이 보통 소나무와 달라서 처진 소나무라고 한다. 처진 이런 나무는 간혹 야생상태에서 보고된 바 있고 또 소나무가 눌렀을 때에 가지가 위로 뻗지 못하여 밑으로 쳐저있다가 그대로 굳어져서 외관상 처진 소나무처럼 된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소나무는 전혀 그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이다. 나무모양이 아주 좋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보호육성을 위해 매년 봄.가을에 걸쳐 막걸리를 가장자리에 뿌려 주고 있다. 이 처진 소나무는 어떤 고승이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구전이 있다. 높이는 약 6m이고,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2.9m이며, 나무의 나이는 450~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운문사 서부해당화는 잠시 후 만나기로 하고...

 

 

 

 

 

신록이 참 곱다...

 

 

 

 

 

가장 아름다운 신록

 

 

 

 

 

운문사 전각 소개

 

 

 

 

 

 

전국에서 제일 큰 만세루

 

 

 

 

 

운문사 대웅보전

 

최근 1994년 건립 되었으며, 대중 스님들이 조석 예불을 모시는 주법당이다.

 

 

 

 

 

 

 

 

 

 

 

 

 

 

 

 

 

다시 신록

 

 

 

 

 

복호산

 

오갑사의 중심 북대암이 병풍암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당겨서 본 좌측으로 북대암

 

 

 

 

 

운문사 전향각

 

 

 

 

 

 

 

 

 

 

 

벚꽃

 

이미 벚꽃이 져 버렸는데, 홀로 만개하여 이제 지고 있다.

 

 

 

 

 

 

 

 

 

 

 

 

 

 

 

 

 

고목의 신록

 

그리고 앙상한 고목은...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웅보전과 만세루...그리고 곱디고운 신록

 

 

 

 

 

 

 

 

 

 

 

 

 

 

 

 

 

 

 

 

 

 

 

운문사는 신라 징흥왕 18년(557)에 한 신승이 현재의 북대암 옆 금수동에서 3년간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곳에 절을 창건하였는데, 중앙에 대작갑사(현재 운문사) 동쪽에 가슬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재 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인 오갑사이다. 600년 신라 원광국사가 중창하였으며, 이때 귀산과 추항 두 화랑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하였다. 이후 후심국의 혼란기에 폐허가 된 절을 930년에 보양국사가 크게 중창하였으며, 고려태조 왕건이 통일을 도운 보양국사에 대한 보은으로 937년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리고 전지 500결의 넓은 토지를 하사하였다. 이때부터 운문사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중기 가지산문의 원응 학일 스님이 주석하면서 나라의 제2선찰이라 할 정도로 사세가 커졌으며, 1277년 일연 스님이 주지로 머물면서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불교정화 직후인 1955년부터 비구니 사찰이 되어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77년 이후 명성 스님이 주지로서 도량의 면모를 크게 일신시켜 현재 승가대학과 대학원, 율원과 선원을 갖춘 전국 최대규모의 비구니 교육 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운문사 경내에는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를 비롯하여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미륵전, 작압전, 금당, 강당, 관음전, 명부전, 오백나한전 등 조선시대의 여러 건물들이 현존하고 있다.

 

 

 

 

 

서부해당화가 많다...

 

 

 

 

 

비로전과 동탑과 서탑 뒤로 오백전

 

 

 

 

 

 

 

 

 

 

 

동탑과 서탑

 

 

 

 

 

 

 

 

 

 

 

비로전(대웅보전)

 

1105년 (고려 숙종 10년) 원응 국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발견된 상량문에 藏次 順治 十年 癸巳 九月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653년(조선 효종 4년)에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 8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으나, 통칭하여 비로전이라고 부른다.

 

 

 

 

 

불이문 앞 게시판

 

오늘은 수놓은 홍매화 위에 법구경 한구절을 옮겨 놓았다.

 

 

 

 

 

 

 

 

아름다운저꽃이

향기가나듯

그말한바와같이

행동한다면

그사람의말에는

향기가있다.

 

                                          - 법구경 한구절 -

 

 

 

 

 

작압전과 명부전

 

 

 

 

 

운문사의 보물 '작압전'에 모셔진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

 

오갑사의 중심 대작갑사에서 유래한 운문사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 '작압'이란 작은 전각에 모셔져 있다. 작압이라는 말은 보양스님이 까치떼가 땅을 쪼고 날아 오른 곳에 절을 지었다는 대작갑사(운문사의 전신)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작압전 내부에는 보물인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가 모셔져 있다.

 

 

 

 

 

석조석가여래좌상

 

 

 

 

 

대작갑사의 흔적 작압전에 모셔진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인 작압전은 전면 측면 모두 한칸의 작은 건물이다. 삼국유사에 의사면 한 신승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떼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수행하여 큰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새를 보고 이른 터에는 무너진 석탑이 있어서, 무너져 있는 석조물로 다시 탑을 쌓으니 파편이 모라라지도 남지도 않는 것을 보고 좋은 징조로 여겼다고 한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뒤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남쪽에 천문갑사·서쪽에 대비갑사·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다섯 사찰을 두고 오갑사(五鴨寺)라고 하였다. 작압전은 신승이 발견한 석탑터에 지어진 전각으로, 나말려초의 보양국사가 전탑형식으로 초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식 된 이후 현재의 목탑형식으로 재건되었다. 내부에는 보물 제317호 석조여래좌상과 보물 제318호 사천왕 석주를 모시고 있다.

 

 

 

 

 

 

 

 

 

 

 

서부해당화 터널

 

 

 

 

 

 

 

 

 

 

 

서부해당화와 복호산

 

 

 

 

 

 

 

 

 

 

 

범종루

 

 

 

 

 

살짝 당겨서 본 운문산

 

 

 

 

 

다시 처진소나무

 

 

 

 

 

당겨서 본 복호산

 

 

 

 

 

 

 

운문사를 나서, 사리암을 오르까 했는데 차량들이 정체되고

더해 북대암 경사심한 포장길도 차량들이 많다.

 

해서 늘 한적한 곳 내원암에 들러 약수 한잔 하기로 하였다.

 

 

 

 

내원암 앞 사면 신록

 

 

 

 

 

산벚꽃과 신록

 

 

 

 

 

내원암의 홍매실꽃

 

스님이 잘 가꾸어 놓은 화단에 봄꽃 야생화가 유독 많은 곳이다.

 

 

 

 

 

운문사 산내 암자 내원암

 

내원암의 최초 창건주는 원응국사로 운문사 중창 연대와 같다. 1694년 설송 연초대사가 중창하고, 1831년 운악화상이 중수 하였다. 설송스님이 주석하면서 내.외저 강석을 열어 후학들에게 학문을 전수하였으며, 초대 원주는 유섭스님이었고, 1992년 이후 오늘까지 원주 재문스님이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현재의 도량을 갖추었다고 한다.

 

 

 

 

 

화단 한켠 붓꽃

 

 

 

 

 

제비꽃

 

 

 

 

 

개꽃(연달래)

 

 

 

 

 

소박한 산신각 길

 

 

 

 

하늘매발톱

 

 

 

 

 

꽃잔디

 

 

 

 

 

연달래와 조팝

 

 

 

 

 

반디지치가 한쪽 화단에 꽉~차있고...

 

 

 

 

 

내원암 목련과 신록 속에서...

 

 

 

 

 

 

 

 

자신의 몸통에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고목의 넉넉한 품속이 아늑하고...

 

그리고 내원암 약수 한바가지 마시고, 내원암을 나섯던 감사한 주말이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