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7 (토)
영남알프스 우마고도 "긴등" 옛길과 밝얼산 자락에 얽힌 옛 이야기 따라
석이와 순이의 못다한 사랑의 애한 "정아정도령바위" 찾아 실체를 확인하였다.
그 길 천화현 옛길 걷기, 무더운 날씨로 땀을 박가지로 흘린 하루였다.
천화현은 불로 하늘을 뚫었다는 뜻으로, 천(穿)의 의미가 불뫼(火山)와 연결된 것이다
영남알프스를 제법 기웃거렸지만, 정아정도령바위를 이제서야 찾았다.
밝얼산 자락 한켠 다정한 한쌍의 바위, 슬픈 사랑을 했던 석이와 순이를 소환 한 듯...
다정하게 마주한 굳은 바위 모습에 옛 전설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 유명한 "긴등 옛길"과 "정아정도령바위"가 묻혀 있어 큰 아쉬움이다..
밝얼산(박월산)은 신성함과 광명을 의미하고 '밝어리산' '밝얼재'로도 불렀다. '밝'자는 신불산의 '불'자와 함께 '광명'을 뜻하며 간월산과 더불어 신성시 여기는 산이라 한다. 영남알프스 주능선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배내봉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나온 긴 능선의 기(氣)가 밝얼산에 모인 형상이라고 한다.
영남알스의 지붕이라 부르는 배내봉에서 동쪽으로 허리를 틀어 밝얼산을 지나 언양 봉화산, 부로산(봉수대)까지 이어지는 긴 능선을(긴 등)으로 부르고 있다. 옛날 제대로 된 도로가 없었던 시절, 우마고도와 같은 긴 능선 길을 넘나들었던 배내골 사람들과 밀양, 원동에서 물목을 거두어들인 장꾼과 보부상, 소 떼를 모는 소 장수들이 언양 장으로 넘나들어야 했던 고행길 우마고도(우두매기)였다. 이 긴 능선길은 상북 거리오담(간장, 거리 하동, 지곡, 대문동, 방갓)마을과 이어지는데 마치 말안장처럼 생겨 말무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남알프스 우마고도로 알려진 '긴등재'. 천화현은 울창한 숲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아 불을 질러 하늘을 뚫었다는 유래가 있다. '뚫어서 통하게 한다'는 천(穿)의 의미가 불뫼(火山)와 연결된 것이다. 간월산 불등, 신불산 칼등, 천황산 사자등, 능동산 얼음동의 아찔한 벼랑은 마치 불에 데인 공룡이 꿈틀거리는 형상을 하고 있어 영남알프스의 불등(火登)과 같다. 과거에는 밀양 얼음골 산내면을 천화면이라 불렀고, 신불산 아래의 '천화'를 거꾸로 읽은 '화천'마을과 이불이라는 '지화'마을이 있다.
배내고개에서 올라 배내봉에서 동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긴등재
"오뉴월 엿가락처럼 휘어졌다"고 표현한 긴등은 유순하기 짝이없지만
기러기처럼 떠돌았던 장꾼들이 넘나들며 언양장을 오갔을 것이다.
더해 시집을 오갓던 옛 새색시들의 가마길로도 알려져 있는 옛길이다.
순정마을에서 배내로 넘어가는 옛 천화현(穿火峴) 길, 오래동안 묵었지만
거의 우마차가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옛길이 너무도 선명히 남아 있다.
서어나무가 있는 넓직한 길목은 옛 천화현을 넘나들었던 이들의 쉼터였을 것이다.
이곳부터 순정마을 전 정아정도령바위까지 급경사로 지그재그 길이 이어진다.
흔한 등산객들 발길도 뜸한 곳, 깊히 빠지는 낙옆이 말하듯 잊혀지고 있어 아쉬움이다.
▣ 정아정도령바위 이야기와 긴등(천화연)
순정마을에서 배내로 넘어가는 옛 천화현(穿火峴) 길은 산등이 길어 "긴등, 장등"이라고도 한다. 긴등에서는 해가 가장 일찍 뜨는 밝얼산 외에도 저승골에서도 배내봉을 오를 수 있다. 이곳에는 "정아정도령바위"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한 마을에 살던 석이와 순이는 어릴때부터 소꼽친구로 마을에서 소문난 한 쌍이었다. 세월이 흘러 처녀 총각이 된 순이와 석이는 혼인을 하고자 했지만, 순이의 집안에서 가난하고 병근 어머니를 모시는 석이에게 순이를 시집보내려 하지 않았다. 결국 순이는 상북의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배내 아가씨들이 명촌으로 시집가려면 가마를 타고 긴등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한참을 오르던 순이네 가마 역시 정아정도령바위 앞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정아정도령바위는 나란히 사이좋게 붙어 있는 한쌍의 바위인데 순이는 이 바위를 보며 석이 어머니의 병이 빨리 낫기를, 다음에 태어나면 부자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빌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의 명물인 순나물(순정)을 캐러 가는 주민은 정아정도령바위에서 무사 안녕을 빌곤 한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 올 수 있는 들머리가 애매하니, 들머리에 작은 이정표 하나 만들어 놓으면 좋을 듯 하다. 해서 아래 포토후기에 정아정도령바위를 찾아가는 들머리를 잘 안내하였으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 동뫼산(밀양산) 이야기
울주군 상북면 거리 하동마을 앞 들녘에는 동뫼산이라는 아담한 동산이 하나 거리 평야에 섬처럼 떠 있다. 현주민들은 이 산을 밀양산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 밀양산의 전설이 아래와 같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언양 고을에 성을 쌓기 위해 수많은 백성이 동원 되었다. 오랜세월 축성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민심이 흉흉해졌다. 뿐만 아니라 야반도주까지 이어지니 울산 백성들만으로 성을 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서 밀양에 있는 백성들까지 공사에 동원하다 보니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고, 이 소문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밀양에서 살고 있던 마고할매가 이 소식을 듣고 축성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을 가엽게 여겨 앞치마에 밀양에 있는 흙을 담아 밀양고개를 넘어 이곳까지 왔다. 그러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언양 고을의 축성공사가 이미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고할매는 담아 온 흙을 이곳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마고할매가 버리고 간 흙이 작은동산이 되어 이때부터 이산을 밀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산에 묘를 쓰면 마을에 큰 재난이 일어났다. 가물거나 수해가 나거나 돌림병이 돌거나 큰화재가 일어나거나 가축들이 몰살하거나하는 등의 큰 재난이 일어났다. 풍수지리에 능한 풍수가는 이 산을 대명산이라고 하여 여기에 묘를 쓰면 마을에는 재난이 일지만, 묘를 쓴 자손들은 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터라고 했다. 이후 마을 사람이 선친의 묘를 파서 몰래 이곳에 평장으로 위장하여 암장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어김없이 마을에는 재난이 닥치니 이곳에 누군가 묘를 쎃다고 믿고 암장한 묘를 찾아 파내 시신을 버리면 신기하게 마을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밀양산을 금장지로 정하고 묘를 쓰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상북면 지화리에 사는 동래정씨 문중이 여기에 묘를 쓰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를 당연히 막으려 했다. 하지만 동래정씨 문중에서 "이산은 본래 밀양산이기 때문에 우리는 밀양 부사에게 세금을 내고 장지 허가를 받았 왔다"며 밀양 부사가 발행한 장지 허가서를 내놓으니 마을 주민들도 달리 막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곳에 묘를 쓴 동래정씨 문중은 재산도 크게 일구고 인재도 배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다시 마을에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아무런 재난이 없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 이전에 묘를 쓴 사람들은 산주에게 산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마고할매의 노여움을 사서 그런 화가 닥쳤으나, 동래정씨 문중은 정당한 산세를 내고 장지 허가까지 받아 묘를 써 마고할매가 노여워하지 않았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처럼 배내봉(천화현)을 넘나들었던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상북, 언양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밝얼산 소문골(소목골, 소암골) 전설
소목골 우곡은 길천리 후리마을 뒤 밝얼산의 골짝이다. 옛날 이곳에 외동아들을 둔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부인은 늘 병약한 몸으로 나날을 살고 있었다. 때문에 외동아들이 좋은 배필을 만나 장가를 들면 죽어도 여한에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 아들은 장가를 들고 들어 온 며느리는 절세미인으로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이 장가를 든지 사흘만에 병약했던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외동아들도 장가를 든지 석달도 못되어 죽고 말았다고 한다. 하루 아침에 절세미인의 며느리는 청상과부가 되어 시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해 동지섣달 긴나긴 밤, 밝은 달이 후리마을을 대낮같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저녁상을 일찍 물리고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달은 아직 중천에 머물러 있는 밤, 시아버지는 사내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며느리가 자는 방으로 들어가 며느리에게 겁탈하려 달려 들었다. 놀란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밀쳐 냈으나 이미 욕망을 들어낸 시아버지는 멈추지 않으려 했다. 이에 며느리는 꾀를 내어 시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님 제가 몸단장을 할 동안 소암골 뒷골에서 소울음 소리를 세번 내고 오시면 아버님의 청을 들어주겠다"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시아버지는 곧바로 소암골 뒷골에 가서 소 울음소리를 세번 내고 돌아와 보니, 며느리는 그만 대들보에 목을 매 죽어 있었다. 그날 밤 시아버지는 집을 떠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는 유래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세번의 소울음소리를 내고 오라 한데는 상피(相避)를 거부하는 매서운 결의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뒤 이곳을 소암골 또는 소목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전설이 전해오는 장소는 현재 수몰되어 있다.
♧ 영남알프스 소개 ♧
영남알프스는 영남 동부지역에 형성된 해발 1,000m 이상의 9개 봉우리 산악군을 영남알프스라 하며, 유럽의 알프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하여 영남알프스라 부르고 있다. 백두대간 피재에서 분기된 낙동정맥이 이곳까지 뻗어와 해발 1000m이상의 준봉이 힘차게 솟아 있는 영남알프스는 울산광역시, 경북 청도와 경주, 경남 밀양과 양산 5개의 시군에 속해 있다.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영남 동부지발을 남북으로 뻗어 내리다 대구 영천분지에서 산세를 낮추다 경주 단석산(827m)에서 고헌산(1,033m)으로 이어지며 다시 1,000m 이상의 준봉들이 솟구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남알프스는 1979년 11월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영남알프스 대하여 ♧
영남알프스는 1000m 이상의 준봉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사자봉), 재약산(수미봉),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단조봉),고헌산, 문복산 9봉을 말한다. 영남알프스 9봉이란 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고헌산(1,034m) 운문산(1,188m), 문복산(1,015m)를 말한다.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영남알프스 전체면적은 약 255㎢ 에 이른다.
▣ 산이름: 밝얼산 "긴등 옛길과 정아정도령바위"
▣ 산행지: 울산 울주군 상북면 거리 산 135-1 (들/날머리: 울산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 1088-1_순정마을경로당)
▣ 코 스: 순정마을경로당_P ~ 천주교 묘소 ~ 알바(직등) ~ 대덕사 등로 ~ 순정마을 갈림길 ~ 긴등(옛길) ~ 552봉 ~
긴등 ~ 밝얼산 ~ 긴등(옛길) ~ 정아정도령바위 ~ 순정마을_P
【산행】입산 10:30 ~ 하산 16:30 / 6.1km / 5시간 40분
▣ 일 시: 2023년 6월 17일 (토)
▣ 날 씨: 맑음 (올들에 최고 더운 날)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 운전【왕복 72km】 출발: 09:30 ~ 도착 18:20
▣ 경 비: 18,000원 (냉메밀 국수)
▣ Photo 후기
언양 상북면 순정마을 경로당 앞 공터
정아정도령바위 이야기 안내판 하나 딸랑 있지만, 정아정도령바위를 찾아가는 이정표나 이곳에 갈 수 있는 설명은 전무하여 아쉽다. 순정마을 앞 터에 패킹 후 출발, 하지만 올들어 최고로 더운 날씨, 급작스럽게 치 솟은 수은주는 무더운 한여름에 와 있는 듯 찜통 속 바람한점 없으니 땀 꿰나 흘려야 할 듯 하다. 하지만 "정아정도령바위"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짧게 산행하며 순정마을과 이어지는 긴등 옛길을 찾아 보았다. 하지만, 필자도 이곳 들머리를 잘못 찾아 알바 등각을 했고, 되돌아 오며 긴등 옛길을 따라 정아정도령 바위를 비로소 찾았다.
정아정도령바위를 찾는 묻 산객들에게 이 후기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긴등과 정아정도령바위 이야기 안내문
전문은 위 정아정도령 바위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순정마을에서 본 동뫼산(밀양산)
뒤로 영남알프스 준봉인 고헌산이 넉넉하고, 거리 평야 가운에 섬처럼 떠 있는 작은 산 밀양산 또한 전설이 남아있다.
당겨서 본 밀양산
언양에 축성공사에 동원된 백성과 도탄에 빠진 가여운 백성들을 도우려 한 마고할매의 전설이 남아 있다.
순정마을 경로당을 지나...
바로 우측으로 진행
막집 우측 돌담길 따르면...
산으로 향하는 임도를 만나 오른다.
더 쉬운 길은 아래 (사진) 작은 전원주택 좌측 임도를 따르면 된다.
▶ 순정마을에서 밝얼산 들날머리(안내)
순정마을에서 밝얼산 등로(좌측)임도
경로당 앞에 주차 후 우측길로 50여미터 따르면, 길이 좁아지는 막지막 작은 전원주택에서 좌측(산쪽) 임도를 따르면 된다.
이곳은 유독 산딸기가 지천인 곳...
돌아 본 풍경
상북면과 건너 작약봉이다.
임도 끝지점
전방으로 천주교인 묘소가 들어 차 있고, 우측 임도로 살짝 들어서면 "밝얼산" 등산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밝얼산 들머리를 알리는 유일한 이정표
그리고 정아정도령바위 찾아가는 입구는...앞서가는 짱의 위치 좌측 숲 속으로 들어서야 한다.
아마도 새로히 임도를 내며 밝얼산 긴등 오르는 옛길초입 흔적이 지워진 듯 하여, 아쉬움이었다.
▶ 긴등 옛길과 정아정도령바위 들머리
정아정도령바위와 긴등 옛길 들머리 안내
밝얼산 이정표에서 전방 10여미터 좌측 숲으로 들어서면 길이 보인다.
우리는 무심코 임도따라 그냥 올라 오름길에 정아정도령바위를 놓치고
다시 되돌아 오면서 복귀하며 긴등 옛길과 정아정도령바위를 찾았다.
옛길 입구에는 그 흔한 시그널 하나 없고 숲까지 우거진 묵은 길이다.
임도를 따르다 보니...(무작정 직등)
마지막 천주교인 묘소를 지나며 길은 끊기고, 우리처럼 알바한 이들이 많은지 이곳저곳 희미한 발자욱, 작은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더해 재선충 벌목으로 이곳저곳이 어수선하여 GPS를 보며 무작정 대덕사에서 552봉으로 올라오는 길로 올려 쳐야 했다. 경사 심해 무더운 날씨로 초반부터 빡시게 알바하니 땀을 박아지로 쏟아야 했다.
비로소 시크널이 보이고...
대덕사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났다.
그리고 옛길로 질러가는 샛길이 있다.
552봉까지 오름길
가득이나 경사심한 곳을 숲 혜치며 올라온 터라 힘겹기만 하고, 바람한점 없으니 죽을 맛이다.
바로 올려친 사면길이 길진 않았지만 푹푹 빠지는 묵은 낙옆으로 땅속에서 뭔가 끌어땡기는 듯 했다.
그리고 552봉은 좌측으로 사면길을 따라야 하고, 드디어 옛길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순정마을로 이어지는 긴등 옛길, 거의 우마차가 지날 수 있는 폭이며 오래된 길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순정마을 방향 옛길
오랜동안 묵어있어 낙옆이 무릎까지 빠지니 걷기가 성가시기만 하다.
바윗길도 만나고...
자주 휴식...
바람한점 없는 무더운 날씨, 고도가 높아지면 왠만하면 시원해 지는데...너무 덥다.
급작스럽운 더위로 날파리와 모기는 왜 그리 많은지, 계속 기피재를 뿌리지만 역부족이다.
인적 없는 곳에서 모기떼에게 특식을 제공해 주었던, 아낌없는 헌납을 해야 했다.
긴등 옛길을 따라 계속 오르기...
바위를 깨서 만든 길도 지나고...
바위를 잘라 파낸 길을 만든 흔적은 석문을 연상케 한다
밝얼산 정상 200여미터 전, 긴등 옛길를 버리고 정상으로...
긴등 옛길은 밝얼산 정상 우측 사면으로 질러 이어지며 배내봉을 향한다.
옛 장꾼들의 걸음은 딱히 힘겹게 정상을 넘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밝얼산 정상에 다다르게 되고, 참 오랜만에 밝얼산에 왔다.
밝얼산 정상에 오른 짱~
얼핏 밝얼산 정상은 그냥 평범한 육산으로 보이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암봉의 정상이다.
밝얼산 정상
참 오랜만에 이곳에 온 듯, 늘 그냥 밝얼산 정상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거처가던 곳이였다.
"밝고 신령스럽다"는 뜻의 밝얼산은 박월산으로도 부르기도 하며, 정상에는 2014년 울산참고래산악회에서 세운 앙증맞은 정상석으로 바뀌어 있다.
밝얼산 정상에서 본 가지산
불당골 건너 오두산이 지척에 보이고 오두산 넘어 영남알프스 상봉 가지산이 우뚝하다.
배내봉까지의 긴등(천화현)
오누월 엿가락처럼 휘어졌다는 부드러운 능선이 배내봉까지 이어진다.
우선,,,가지산
밝얼산 정상에서 보이는 조망을 쓸어담아 보았다.
최대한 당겨서 본 가지산
중앙 멀리 문복산
우측으로 고헌산이 잘 보인다.
당겨서 본 고헌산
좌측골이 유명한 계곡등반지 대통골이며 우측 대너덜이 곰지골이다.
아래로 불당골
건너 오두산과 송곳산이, 아래로 불당골
최대한 당겨 본 배내봉
당겨서 본 문복산
당겨서 본 문수산과 남암산
앞으로 밝얼산에서 봉화산까지의 긴 산릉 긴등이라고 한다.
최대로 당겨 본 문수 남암산
밝얼산에서 브런치 타임
맛난 밥상이지만...
더위에 진을 빼니 입맛이 없고, 그래도 냉커피와 함께 체력보충을 하였다.
밝얼산에서 배내봉까지의 천화현
오두산 너머 가지산
멀리 문복산 우측으로 고헌산
당겨서 본 문복산
밝얼산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어디로 하산할까 고민...
애당초 장군폭포로 하산을 할 예정이었지만, 정아정도령바위를 놓쳤으니
배내봉쪽으로 진행하다, 다시 빽코스하여 옛길로 복귀하기로 하였다.
옛사람들이 오고갔을 옛길
밝얼산을 질러 가는 옛길은 역시 넓직하다.
오래된 축대까지 남아 있다.
뚜렸하게 이어지는 옛길
넓직한 쉼터였을 곳도 지나고...
천화현 옛길은 더 뚜렸해지고...
552봉을 지나 넓직한 쉼터
오래된 서어나무가 있는 넓은 터, 아마도 옛사람들은 이곳에서 달콤한 쉼을 했을듯 한 평평한 넓은 터가 있다.
순정마을로 이어지는 옛길
이곳부터 경사가 가팔라지고...
옛길은 이렇게 계속 지그재그 길
경사가 심한 곳이라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옛길이 쏟아져 내린다.
한참을 이렇게 왔다갔다...
경사가 수그러들 즘...
옛길은 물없는 골 옆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우측으로 그토록 찾던 바위...
한눈에 봐도 정아정도령바위를 만난다.
실체를 확인한 정아정도령바위
좌측 큰바위가 정도령, 우측이 정아 바위일 것, 높이는 6~7m로 크지 않은 바위지만 모양이 너무 다정하다.
순정마을에서 0.8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정아정도령바위, 하지만 현주민들 조차도 제대로 아는이가 없다.
▣ 정아정도령바위 이야기와 긴등(천화연)
순정마을에서 배내로 넘어가는 옛 천화현(穿火峴) 길은 산등이 길어 "긴등, 장등"이라고도 한다. 긴등에서는 해가 가장 일찍 뜨는 밝얼산 외에도 저승골에서도 배내봉을 오를 수 있다. 이곳에는 "정아정도령바위"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한 마을에 살던 석이와 순이는 어릴때부터 소꼽친구로 마을에서 소문난 한 쌍이었다. 세월이 흘러 처녀 총각이 된 순이와 석이는 혼인을 하고자 했지만, 순이의 집안에서 가난하고 병근 어머니를 모시는 석이에게 순이를 시집보내려 하지 않았다. 결국 순이는 상북의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배내 아가씨들이 명촌으로 시집가려면 가마를 타고 긴등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한참을 오르던 순이네 가마 역시 정아정도령바위 앞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정아정도령바위는 나란히 사이좋게 붙어 있는 한쌍의 바위인데 순이는 이 바위를 보며 석이 어머니의 병이 빨리 낫기를, 다음에 태어나면 부자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빌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의 명물인 순나물(순정)을 캐러 가는 주민은 정아정도령바위에서 무사 안녕을 빌곤 한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 올 수 있는 들머리가 애매하니, 들머리에 작은 이정표 하나 만들어 놓으면 좋을 듯 하다. 해서 아래 포토후기에 정아정도령바위를 찾아가는 들머리를 잘 안내하였으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궁굼증을 개운하게 풀고...
계속 이어지는 옛길은 순정마을로 이어진다.
아마도 사유지인 듯...
참 품이 많이 든 안내, 경고 문구인 듯 하다.
이정도 크기면 글자 한자에 큰 달력으로 오려내 페인트로 뿌려 쓴 글씨인데...
"밤 주지마세요"라고 써 있지만, 충분이 이해하고도 남을 글귀가 아닐 수 없다.
한바탕 웃고 마져 하산...ㅎ
그리고 정아정도령 바위 접속 지점은 바로 요기...!
하필이면 그 좋던 길이 들머리 지역에 숲이 우거지다 보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밝얼산 이정표
이곳에서 바로 이정표 전방에서 10시 방향으로 들어서야 한다.
흔하디 흔한 시그널 하나 없고, 무심코 지나면 절대 찾을 수 없을 듯...
오를 때 제대로 못보았던 곳, 숲이 우거져 찾을 수 없는 길이였다.
까치수염
길가 바로 옆
산딸기가 참 많다~!!!
도깨비가지꽃
지난번 철마산에서도 보았는데, 이곳에 유독 많다.
올라가면서도, 내려오면서도...산딸기는 덤...!
마을 안으로 들지 않아도 이곳이 들/ 날머리
밀양산과 뒤로 고헌산
▣ 동뫼산(밀양산) 이야기
울주군 상북면 거리 하동마을 앞 들녘에는 동뫼산이라는 아담한 동산이 하나 거리 평야에 섬처럼 떠 있다. 현주민들은 이 산을 밀양산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 밀양산의 전설이 아래와 같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언양 고을에 성을 쌓기 위해 수많은 백성이 동원 되었다. 오랜세월 축성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민심이 흉흉해졌다. 뿐만 아니라 야반도주까지 이어지니 울산 백성들만으로 성을 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서 밀양에 있는 백성들까지 공사에 동원하다 보니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고, 이 소문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밀양에서 살고 있던 마고할매가 이 소식을 듣고 축성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을 가엽게 여겨 앞치마에 밀양에 있는 흙을 담아 밀양고개를 넘어 이곳까지 왔다. 그러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언양 고을의 축성공사가 이미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고할매는 담아 온 흙을 이곳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마고할매가 버리고 간 흙이 작은동산이 되어 이때부터 이산을 밀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산에 묘를 쓰면 마을에 큰 재난이 일어났다. 가물거나 수해가 나거나 돌림병이 돌거나 큰화재가 일어나거나 가축들이 몰살하거나하는 등의 큰 재난이 일어났다. 풍수지리에 능한 풍수가는 이 산을 대명산이라고 하여 여기에 묘를 쓰면 마을에는 재난이 일지만, 묘를 쓴 자손들은 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터라고 했다. 이후 마을 사람이 선친의 묘를 파서 몰래 이곳에 평장으로 위장하여 암장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어김없이 마을에는 재난이 닥치니 이곳에 누군가 묘를 쎃다고 믿고 암장한 묘를 찾아 파내 시신을 버리면 신기하게 마을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밀양산을 금장지로 정하고 묘를 쓰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상북면 지화리에 사는 동래정씨 문중이 여기에 묘를 쓰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를 당연히 막으려 했다. 하지만 동래정씨 문중에서 "이산은 본래 밀양산이기 때문에 우리는 밀양 부사에게 세금을 내고 장지 허가를 받았 왔다"며 밀양 부사가 발행한 장지 허가서를 내놓으니 마을 주민들도 달리 막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곳에 묘를 쓴 동래정씨 문중은 재산도 크게 일구고 인재도 배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다시 마을에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아무런 재난이 없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 이전에 묘를 쓴 사람들은 산주에게 산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마고할매의 노여움을 사서 그런 화가 닥쳤으나, 동래정씨 문중은 정당한 산세를 내고 장지 허가까지 받아 묘를 써 마고할매가 노여워하지 않았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처럼 배내봉(천화현)을 넘나들었던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상북, 언양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순정마을 앞 공터 원점회귀
정아정도령바위 이야기
이렇게 적응하지도 못했던 무더위에 짧은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그리고, 정아정도령바위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정표가 있으면 좋겠다.
순정마을 앞 둘레길 이정표
천주교인 묘소가 많다 했더니, 천주교 순정공소가 순정마을에 있다.
순정마을에서 본 영남알프스
좌측 넘어 신불산, 간월산, 밝얼산 우측 높아 보이는 봉오리가 552봉이다.
밝얼산과 552봉
순정마을에서 밝얼산까지 3km의 거리다.
순정마을 나서며 본 풍경
영남알프스가 크게 휘돌고 전설이 전해지는 밀양산이 거리 평야에 떠 있다.
순정마을 나서며 본 밀양산
밀양산 너머 멀리 문복산이, 좌측으로 상운산이, 우측으로 고헌산
바람한점 없었던 무더운 날씨로 인해 흠뻑 땀 흘리면서, 종일
얼음동동 뜨는 시원한 밀면이 눈앞에 왔다리갔다리...!
수암시장 메밀면집으로 고고씽~뚝딱 한그릇하고 하루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가까이 있어 좋은 영남알프스...늘~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 입니다.
《end》
'″°³ 산행후기 ³°″ > 영남알프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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