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15 (화) 78주년 광복절
이번 산행은 천성산 중앙능선을 올라 적멸굴을 들여다 보고
내원사에 들러 계곡따라 내려서며 물놀이 할 요량으로 늦게 나섯다.
하지만 내원사길은 피서객들 차량이 정체되어 난리복고통...
긴 막다른 길 정체에서 언제 벗어날지 모르니 차를 돌려 용소마을로 향했다.
천성산 적멸굴은 먼 옛날 원효대사와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수도한 곳으로,
석굴에는 '적멸수'라는 석간수가 마르지 않아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천혜의 석굴이다.
천성산(비로봉)에서 복서쪽으로 뻗어 있는 중앙능선 암봉아래 크게 처마 이룬
천연 바위굴로 능선 바로 아래지만 석굴 깊숙한 곳에 신비하게 샘이 나고 있다.
또한 석굴 앞에는 오래된 대나무 숲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암자터가 아닐까 조심히 추측할 수 있다.
천성산에 가장 오래 머물며 원효대사가 수도 했다는 석굴은 4곳으로
아래 미타암 미타굴, 금수굴, 큰바위석굴, 적멸굴이 대표적이다.
오래전부터 기웃거렸던 천성산의 대표적인 4곳의 석굴을 아래와 같다.
높이 20여미터의 아름다운 사폭으로 이것이 용소폭포가 아닌 만수동폭포다.
이곳을 "만수대"라고도 불러 왔으며, 폭포 바로 위 바위사면에 "만수동"이란
각암이 새겨져 있고, 만수동폭포는 용소폭포에서 약700미터 상류에 있다.
이곳이 만수동(晩搜洞: 늦게 찾은 골자기) 폭포로, 상북면 상삼리의 만석지기였던
초은 김교환(樵隱: 金敎桓)이 1936년경 축조한 누대(樓臺)가 있었다고 한다.
천성산(원효산)은 이전에는 제1봉(922.2m)을 원효산(元曉山)으로 제2봉(855m, 비로봉)을 천성산(千聖山)으로 칭했다. 그러나 양산시에서 이 2개 산의 이름을 통합하여 천성산으로 변경하고, 기존의 원효산을 천성산 주봉(제1봉), 천성산을 제2봉으로 삼았다.
천성산의 유래는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1천(千)명의 스님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聖人)이 되게 했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효산은 원효대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대동지지에서는 이 산을 원적산(圓寂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는 이 산을 소금강(小金剛) 또는 '소금강산'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천성산은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불리었다. 동쪽으로는 양산시 웅상읍, 서쪽으로는 양산시 상북면에 접해 있으며 산 아래 서북쪽에 내원사가 위치해 있다. 또한 천성산에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화엄늪과 밀밭늪이 있다. 이곳은 희귀한 꽃과 식물(끈끈이 주걱)등 곤충들의 생태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다.
중앙능선에서 건너다 보이는 공룡능선은 천성산의 수려한 산세를 말해주고 있고
우측 639봉을 넘어서면 짚북재에서 중앙능선과 만나 비로봉을 받치고 있다.
결코 작은 산이 아닌 천성산은 웅장하면서도 큰산으로, 부드러운 육산인듯 하지만
육중산 암산으로 육산과 악산의 면모를 두루 갖춘 곳으로, 왜 소금강산으로 불리워졌는지 알수 있다.
공룡능선 넘어로 정족산이 보이고, 아래로 깊은 상리계곡이 흐른다.
좌측 홀로 솟은 금봉암 바위 아래는 단아한 암자 금봉암이 있고
상리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노전암, 안적암, 조계암, 대성암 등의 암자가 있다.
어둠 스미는 내원사계곡, 그 많은 물놀이 객들은 떠나고, 달궈진 몸 푹~식혀 보았다.
▣ 산이름: 천성산 (중앙능선 적멸굴)
▣ 산행지: 경남 양산 하북면 용연리
들/날머리: 경남 양산 하북면 용연리 992번지 (용소마을 입구) / 양산 하북면 용연리 277-2 (내원사 매표소)
▣ 코 스: 용소마을 입구_P ~ 용소마을 ~ 용소골 ~ 만수동폭포 ~ 능선안부 ~ 내원사계곡 ~ 내원사(왕복) ~ 제2주차장
~ 적멸굴 ~ 중앙능선(2-12구조목) ~ 내원사 매표소 (현지 식당차량 이동) ~ 용소마을 입구_P
【산행】입산: 10:20~하산: 19:10/ 11km-8시간 30분
▣ 일 시: 2023년 8월 15일 (화) 78주년 광복절
▣ 날 씨: 맑음 (무더운 날)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운전【왕복 77km】 출발: 09:00 ~ 도착 20:40
▣ 경 비: 내원사 주차장~용소마을(식당 주인장 차량 픽업): 10,000원/ 부엉이 가족: 20,000원/ 기와불사: 10,000원
▣ Photo 후기
용소마을 입구
이번 산행은 무리없이 내원사 주차장에서 중앙능선을 올라 적멸굴을 둘러보는 짧은 산행을 하려 나섯는데, 내원사 입구부터 수많은 물놀이 객들로 차량 정체가 되어 자동차를 돌려 용소마을에서 용소골을 올라 능선 넘어 내려서 내원사골에서 중앙능선을 갈아 타기로 급변경 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중앙능선 적멸굴을 오르는데 더위에 지쳐 힘겨웠던 산행이었다. 중앙능선 허리를 오르는 적멸굴 오름길은 설상가상 아무도 지난이 없는지 무수히 많은 거미줄을 걷어내며 오르니 더욱 힘들었던 산행이었다.
차량을 돌려 도착한 용소마을 입구
이곳에도 수많은 피서객들로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고, 불과 수년전까지 이곳은 그저 한적한 시골작은 마을이었는데 용소폭포가 알려지며 많은 물놀이객들이 몰려 들고 있으니 마을주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아래로 들어서며 용소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안 주차공간이 없으므로 마을입구에 차량을 패킹하는 것은 용소마을에 대한 에티켓으로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용소마을 길
가을이면 돌담 담쟁이 단풍이 아주 예쁜 곳, 마을 지나는 갈림길에서는 우측 계곡쪽으로 진행하며 오르면 될 일, 마지막 농막에서 우측 계곡으로 들어서면 용소폭포가 숨어 있다. 하지만 수많은 물놀이 객들이 몰려 있어 소란스러움은 물론 고기굽는 냄새와 음식냄새가 진동하여 용소폭포는 패스 바로 지나쳐 올랐다. 잠시 뒤면 아래 넓은 공타(쉼터)가 있다.
제발...가져온 쓰래기는 되가져 가면 좋으련만, 마을입구부터 쌓여 있는 쓰래기 더미가 영 신경쓰이니 참 안타까운 마음이다.
용소폭포 위 쉼터
용소마을를 지나 본격적인 용소골 진입 포인트다.
용소폭포는 지난 사진으로 대신하고, 용소골 들어선다.
▶ 용소폭포 (지난 사진)
용소마을 용소골에 꼭꼭 숨어있는 용소폭포, 금방이라도 용이 솟구쳐 오를 것 같이 서슬퍼런 용소다. 이 용소에 떨어지는 10여미터 높이의 폭포수가 용소폭포, 소(沼)는 약 50여평 가량 둥글고 수심이 2m가 넘는다.
하북면지(下北面誌)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이곳에 명주실을 풀어 넣으면 그 끝이 우틀소를 통해 울산 방어진 앞바다까지 간다고 하며, 절벽 아래 굴속에 용이 살면서 우틀소까지 왕래했다고 한다.
여기서 "우틀소"는 용소마을 입구의 소(沼)로서 무척 깊어서 "위태로운 소"라는 말이 방언으로 "우트러운 소"가 우틀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용소골을 여러차려 건너며 오른다.
큰비가 내린 후라 계곡을 끼고 있는 등로가 많이 유실되어 계곡 건너기를 신경써야 한다.
만수동폭포 도착
이곳에는 넓은 길과 축대 등이 남아 있어, 옛 흔적이 남아 있다.
용소골 만수동 폭포는 높이 20여미터의 아름다운 사폭으로 이것이 용소폭포가 아닌 만수동폭포다. 이곳을 "만수대"라고도 불러 왔으며, 폭포 바로 위 바위사면에 "만수동"이란 각암이 새겨져 있다.
만수동폭포는 용소폭포에서 약700미터 상류에 있다. 계곡을 따라 난 산길을 따라 20여분 더 오르면 높이 20미터의 사폭(斜瀑)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만수동(晩搜洞: 늦게 찾은 골자기) 폭포다.
이곳 만수동폭포에는 상북면 상삼리의 만석지기였던 초은 김교환(樵隱: 金敎桓)이 1936년경 축조한 누대(樓臺)가 있었고, 천성산 정기를 밭아 경광 수려한 이곳에서 낙수의 물보라로 목을 축이며 득음(得音)을 위해 많은 시조창객이 이곳에 모여들었던 곳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그 흔적과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만수동폭포 상탄 깍아지른 암벽에 유일하게 "만수동"이라는 음각이 남아있으며, 폭포 주변에는 축대가 여러속 산재해 있으며 폭포에 이르는 넓은 길 축대가 현존하고 있다.
짱을 먼저 올려보내고...
폭포 위에 서 있는 짱의 모습이 깨알만 하고...ㅎ
짱이 내려다 본 내모습
뒤 따라 올라 잠시 배낭을 벋고 쉬어 간다.
만수동폭포 상단
만수동 각암
만수동 각암
올때마다 눈팅하고 가는 각암, 만수동(晩搜洞 저물만, 찾을수,로 늦게 찾은 곳) 뜻
까막눈인 내가 봐도 참 명필임에 틀림 없고, 단아한 세글자가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려다 보고...
용소골 풍경
잠시 땀 식히고, 용소골을 거슬러 오른다.
용소골 풍경
이후 별다른 특징이 없는 용소골, 여러차래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큰 물이 쓸고 내려간 뒤라 등로는 흔적도 없어 보이는 곳이 여러곳이다.
큰 마가목 나무
능선도착 직전
능선안부 도착
우리는 내원사계곡으로 가야하니, 바로 내려선다.
큰 솔들이 많은 곳...
건너 중앙능선이 보이고...
내원사 계곡 내려서기 전 오찬
내원사계곡에서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즐겁게 물놀이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즐거운 오찬시간
늘 그렇듯...아니온듯 흔적 남기지 말기는 기본...!
내원사 제2주차장 도착
내원사제2주차장
빈틈없이 차량들이 가득차 있는 내원사 2주차장 모습이 이채롭다.
막바지 물놀이 객들의 부지럼함으로 이곳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위로 가야 할 적멸굴 암봉이 보이고, 먼저 오랜만에 내원사로 간다.
당겨서 본 중앙능선의 적멸굴이 있는 암봉
간혹 이런 좋은 글귀를 보며...
세전교 건너며 본 아래 풍경
수많은 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고, 아이들은 물놀이 어른들은 발담그고 늘어지게 낮잠자는 모습이 보인다.
내원교 윗쪽
천혜의 노천 풀장이 이곳이 아닐까 !
이후 내원사까지 조용한 길
여의교 건너 비구니 사찰 내원사 도착
아래쪽 수많은 물놀이 객들의 소음이 소란스럽지만, 이곳은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옆 화단 상사화
목을 축이고...
내원사 경내로 들어 선다.
내원사 대웅전
전에는 단청이 되지 않았는데, 단청을 입혀 아주 곱게 변모해졌다.
여러번 내원사를 들렀지만, 옛스러움은 없지만 볼 때마다 정갈한 느낌인 곳이다.
그렇듯이... 이곳 내원사가 6.25때 전소된 것이 아쉽기만 하다.
내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로써 수려한 산수와 6Km에 달하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 2의 금강산이라 일컬어지는 천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1300여년전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성사께서 창건하신 절이다. 1898년 석담유성(石潭有性)선사가 설우(雪牛), 퇴운(退雲), 완해(玩海)등과 더불어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여 절이름을 내원사로 개칭하고 동국제일선원이라 명명한 후 선찰로써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경허선사의 법제자인 혜월선사께서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운봉, 향곡선사등 한국 선종사의 선맥을 잇는 명안종사를 배출한 도량이다. 6ㆍ25사변으로 사원이 전소되자, 비구니 수옥스님의 원력으로 10년만에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써 새롭게 중창되었다. 그 후 만공스님의 법제자인 법희, 선경스님등 납자들의 정진처가 되었다. 1979년 도용스님을 입승으로 모시고 18명의 스님들이 모여 삼년결사를 시작한 이후 1999년 여섯 번째 회향을 하였고 지금도 매 안거마다 수십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대웅전 앞 선해일륜
'선해일륜'란 현판이 걸려 있는 아름다운 내원사
내원사 심우당
대웅전과 죽림원
샘과 청동금고 누각
보물 제 1734호 내원사 청동금고(청동북)
불구(佛具)는 사찰의 행사 때 사용되는 모든 도구를 말한다. 금고는 이러한 불구 가운데 범종·운판·목어 등과 함께 소리를 내는 것으로 징모양을 하고 있고 반자라고도 부른다. 양쪽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쇠북이는 뜻에서 금고라 부르고, 한쪽 면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반자라고 하였는데, 후대에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내원사의 것은 한쪽 면만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것으로, 가운데 부분에 2중선을 돌려 안과 밖을 구분하였다. 안쪽 원에는 6개의 잎을 가진 꽃을 새겼고, 바깥쪽 원에는 4곳에 구름과 꽃무늬를 새겼다. 옆면의 위쪽에는 동그란 구멍을 가진 돌출된 귀를 달았고, 아래에는 고려 선종 8년(1091)에 금인사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알려주는 글이 새겨 있다. 이 금고는 만들어진 시기가 분명하고 상태도 양호한 편으로, 고려 전기의 금속공예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랜만에 왔으니...
왠만해서 잘 하지 않는데, 기와불사도 남겼다.
내원사 경내를 나선다.
더위탓인지, 절간은 너무도 조용하기만 하고...스님께서 공양은 하셨냐고,
배불리 먹었다고 하니 베지밀을 두개 주시며 마시고 가시란다.
밴취에 잠시 앉아 주신 베지밀을 마시고 오랜만에 들러 본 내원사를 나섯다.
범의꼬리꽃
꽃은 참 예쁜데, 꽃 이름이 무서운 '범의꼬리'라고 한다.
벌개미취 꽃과 표범나비
여의교
여의교 아래 풍경
내원사 연리지
나미아무타불 표석
적멸굴 가는 길목
제2주차장에서 200여미터 내려오면 화단에 적멸굴 가는길 표석이 있다.
계곡을 건너고...
수많은 물놀이 객들을 지나치고 내원사 계곡을 건넌다.
땀흘리는 몰골을 보는 물놀이객들의 시선이 따갑기만 하고...
어떤 모습으로 빛추어질까...이더운데 미친짓이라 하겠지...!
적멸굴 오름길
가뜩이나 덥고 바람한점 없어 더위에 지쳐가고, 아무도 지난이 없는지 거미줄을 걷어내며 오르려니 여간 성가시다.
요즘 이곳을 오르는 이들이 뜸해서인지, 길도 묵어가고 간혹 있는 모산악회에서 걸어놓은 적멸굴 표시가 위안이다.
어렵게 오른 조망바위
건너 화엄벌에서 흐르는 넘어온 능선이 보인다.
유일한 친구였던...
멧돼지들이 헤집어 놓은 희미한 길을 놓쳐 잠시 알바 후 만난 표식이라 더 반가웠다.
이제 다 왔다~!
대나무 숲을 만나고...
이 높은 곳에 대나무 숲이라, 뭔가 아늑한 느낌을 주긴 한다.
적멸굴 도착
엄청난 규모의 석굴...적멸굴
거대한 바위가 처마를 이루고...
석굴 안의 석간수(적멸수)
석간수로 잠시 더위을 씻고...
얼마나 시원하던지, 시애라 컵으로 떠 땀을 식혔다.
적멸굴과 관련된 주요 인물로 먼 옛날 원효대사로 천성산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깊은 관련이 있다. 661년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을 가던 중 어느곳에서 비바람을 피하며 잠을 청하고 박가지에 고인 물을 마셨다. 하지만 날이 밝으니 그 박가지의 물은 해골에 고였던 물이였다고 한다. 비바람이 그치지 않아 다시 하루밤을 유하며 전날밤은 편안했는데 오늘밤은 귀신의 집에 의탁하니 매우 뒤숭숭하여, "이제 알겠도다 !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므로 땅막과 무덤이 둘이 이 아님을,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현상이 없는데 어디서 따로 구하겠는가?" 하며 원효는 당나라에 가지 않고 신라로 돌아 온 원효는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치열한 수행과 자신의 깨달음을 글쓰기에 전념했다고 한다. 요석공주와 사이에 설총을 낳은 뒤로 승복을 벗은 원효는 소성거사라는 이름으로 저잣거리에 나가 무애행을 행했다고 한다. 원효의 깨달음은 "일심(한마음), 화쟁(어울림), 무애(걸림없음)"으로 표현됐다. 원효 나이 66세에 글쓰기를 그만두고 궁을 떠나 어느 굴로 들어간 원효는 686년 나이 70세에 어느 굴에서 조용히 입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적멸굴은 "동학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가 득도 했다는 곳으로, 1897년 여름 경주 최복술(수운 최제우)은 이곳 적멸굴에서 49일 동안 기도를 했던 곳이다. 최복술은 이태 뒤 뒤 고향인 경주 용담정으로 돌아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제우(濟愚)라 개명하고 수도에 전면해 1860년 마침내 도를 깨우쳤다. 그의 나이 37이었다.
"한울님을 내 안에 모신다"는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는 해월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나아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의암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동학 사상으로 이어진다.
적멸굴에서...
석굴안이 시원하여 오랬동안 머물며 땀도 식히고 원기회복을 하였다.
혹시 아나...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 도통 할지...ㅎ
이곳에 머물렀던 옛 선인들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저렇게 사진도 여러장 찍었지만 폰카 한계로 좋은뷰는 없다.
하지만 굴안 샘물에 빛추어지는 반영에 반해 여러장 담아 보았다.
적멸굴 적멸수 샘
나는 샘물이 많지 않아 물이 고이도록 바위를 파낸 흔적이 있다.
적멸굴을 나서며...
오랜시간 머물며 땀도 식히고, 원기회복 하여 지척인 능선에 오른다.
중앙능선 (2-12구조목)
옆에 작은 돌탑이 있어, 적멸굴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이후 중앙능선을 오르내리며 하산, 조망처마다 눈이 시원하다.
적멸굴 암봉 고스락
적멸굴 암봉에서 본 원효산
멋진 조망봉의 명품솔
건너 공룡능선이 웅장하게 보이는 곳이다.
건너다 보이는 공룡능선
당겨서 본 성불암
공룡능선과 뒤로 정족산
사거리 안부 도착
좌측으로 내려서도 되지만, 중앙능선이 오랜만이니 다시 오른다.
다시 조망처에 올라 서고...
공룡능선 전모가 조망되고...
뒤로는 정족산이 모습을 보인다.
조망바위에서 풍경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며, 시원한 바람 불어주니 살맛 나는 듯...!
주변 풍광도 깨끗해지며 천성산 산하가 모두 깔끔하게 보인다.
아무리 보아도 싫지 않은 풍경
다시 부지런히 걸음 옮겨 다음 봉우리에 올라선다.
쉬여가기 좋은 조망처
용수골에서 넘어온 능선
공룡능선과 멀리 정족산
금봉암을 가리켜 보고...
아래로 상리계곡이 흐르고...
중앙 멀리 정족산 우측은 공룡능선 첫 봉우리
가운데 홀로 우뚝 서있는 흰바위가 금봉암이다.
화엄벌이 멀리 보이고...
작은 석문을 통과하여...
멀지 않은 중앙능선을 하산하는데 제법 힘이 들었다.
다행히 짱의 몸 컨디션이 좋아 걱정없이 돌파하였다.
중앙능선 마지막 암봉 명품솔
이후 오래되어 썩어 내려앉은 통나무 계단을 내려서 하산...!
내원사 길 도착
그리고 길 건너 계곡으로 우당탕탕~~~!!!
우~메...시원한거...ㅎ
그많던 물놀이객들이 떠난 내원사계곡을 홀로 독차지 하고 첨벙거린다.
저 위 깊은 곳까지...
수심이 제법 깊고...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으니 키보다 깊은곳은 되돌아 나선다.
그래도 한동안 개헤염 치며 몸을 식히는 시간은 늘 즐겁다.
내원사 계곡에서...
주섬주섬 챙겨서 지척인 매표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무것도 없다.
종일 북새통이였을 주차장이 마법처럼 아무도 없이 적막하다.
택시 콜을 하니 근처 택시가 없다고, 다음에 이용하란다...헐~!
바쁘게 식당일 마무리하고 계시는 주인장에게 땡깡 부려 용소마을까지 픽업...!
광복절 공휴일, 이렇게 알찬 산행을 마무리 하고 귀울하니 한밤이었다.
《end》
'″°³ 산행후기 ³°″ > 영남알프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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