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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영남알프스

영남알스프 갈산고지(태봉산)_681고지와 파래소 '23.9.22(금)

2023.9.22(금)

 

 

오랜만에 금요일 꿀 휴가와 함께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기로 하고

늦으막히 나서 파래소 폭포와 함께 갈산고지(681고지)를 올랐다.

 

주중 내린 많은 비로 파래소 폭포는 장관 이루고 있어 한동안 폭포에 머물렀다.

우렁찬 파래소폭포 물소리에 눈도 마음도 힐링하는 시간, 한없이 좋았다.

 

 

 

 

 

 

래소폭포는 밀양의 호박소, 철구소와 함께 영남알프스 3대 소이다.

 

파래소 폭포는 물기둥이 15m 소의 둘레가 100m 깊이가 평균 3m 정도 된다.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면 단비가 내려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다" 하여

당초 "바래소"라고 부르다가 변음 되어 "파래소"로 불리워 졌다고 한다.

 

 

 

 

 

 

래소 전설은 소에 명주실을 풀면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설과, 파래소와 철구소, 밀양의 호박소는 그 밑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선녀들이 목욕하러 내려올 때면, 이무기가 그 밑을 통해서 자리를 피해줬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아무튼 영남알프스 3대 沼중 가장 아름답다.

 

 

 

 

폭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파래소

 

 

이렇게 아름다운 이곳에도 현대사의 아픔이 있었으니, 바로 남도부 빨치산 이야기다.

갈산고지와 신불산 서릉 995고지에 진을 친 빨치산과의 전투가 수년간 있었다.

 

바로 이곳 파래소폭포는 이곳에 진을 친 공비들의 취사장으로 쓰이기도 했던 곳이다.

 

 

 

 

갈산고지 팔각정

 

갈산고지는 태봉산으로 주봉인 신불산을 주 배경으로 남도부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곳이다. 일명 681고지로 부르는 갈산고지는 배내골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고지로 사방을 관측하기 아주 적절한 지정학적 천혜의 요새이고 요충지다. 갈산고지에 오르면 사방이 모두 조망이 열리는 곳으로 주변의 동태를 쉽게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사시 도주에도 용의한 곳이다. 주변 신불산, 간월산, 천황산, 재약산 일대가 한눈에 관측되고 어디로든 이어갈 수 있는 이곳이 빨치산 남도부 빨치산의 숙영지이자 사령부였다. 토벌군과의 치열한 전투로 인해 아직도 이 고지 주변에는 2중 참호 흔적과 실탄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곳 681고지에 근거지를 둔 남도부에 속한 직속 빨치산으로 청도부대, 홍길동부대, 동래부대가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남한 후방을 교란하기 위한 최대의 조직 지리산 빨치산과 함께 이곳 영남알프스에도 남도부 빨치산으로 인해 남겨진 현대사의 아픔이 영남알프스 곳곳에 서려 있다. 현 팔정정이 있는 이곳이 빨치산 사령부가, 건너 신불산 서릉 995고지에 빨치산 지휘소가 있었으며 그 사이에 있는 왕봉골 파래소 폭포는 빨치산들의 취사장으로 사용되였다고 한다. 신불산 빨치산 대장은 하준수란 인물로 남도부(南都釜)란 '남쪽으로 진격하여 부산을 점령하라'는 뜻 이었다.

 

현재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는 실제 해발 727.8m인데, 왜 681고지로 알려져 있을까 해답은 아래 일제시대에 세워 놓은 삼각점 때문이다. 삼각점이 727봉이 아닌 서쪽 낮은 무명봉 681봉에 삼각점을 세워 681고지라 불렀다고 한다.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갈산고지 팔각정은 접근이 위험해 보인다.

노후된 기와가 떨어지고 있어 각별히 조심해야 되며, 조심스럽게 3층에 올라 보았다.

3층에서 조망은 천황산, 재약산, 신불산 배내골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지금은 주변 숲이 자라 3층에 올라야 제대로 사방을 조망할 수 있었지만

빨치산 주둔 당시는 정상에서 충분히 사방을 볼 수 있었을 천혜의 요충지로 충분하다.

 

 

 

 

갈산고지에서 본 신불산

 

 

우선 동쪽으로 보이는 신불산과 영축산이 코앞에 건너다 보인다.

이곳 갈산고지에는 공비사령부가, 저 995봉에는 공비 지휘소가 있었다.

 

995봉과 조금 아래 965봉 거북바위에 공비지휘소 소탕 기념비가 있었는데,

오래전 2007년 전, 누군가 박살 내 산 아래로 굴려 버린 비석 잔해를 본 기억이 있다.

 

민족상간 전쟁 전,후까지 신불산에서도 많은 이들이 처절히 죽어가야 했다.

1954까지 공비소탕 작적을 펼쳐 450여명을 소탕하고, 군경의용대 146명 희생이 있었다.

 

 

 

 

 

갈산고지에서 본 천황, 재약산

 

 

서북쪽 풍경은 재약산 천황산 사자평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고

부드러운 능선 끝자락에 능동산, 아래로 배내골이 아주 잘 내려다 보인다.

 

갈산고지 기점으로 남쪽으로 원동 배내골, 북쪽으로 상북 배내골이다.

 

 

 

 

갈산고지에서 본 배내골 원동 방향

 

 

 


 

 

▣ 산이름: 갈산고지(태봉산)

 

▣ 산행지: 울산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경남 양산 원동면 선리

              들/날머리: 울산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산 2-1 (국립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하단_P)

▣ 코  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_P~파래소 폭포~폭포전망대~폭포 상단~갈산고지(태봉산)~왕복~휴양_P 

             【산행】입산: 12:50~하산: 17:40/ 5km-4시간 40분

▣ 일  시: 2023년 9월 22일 (금) 

▣ 날  씨: 맑음 (구름 많음)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운전【84km】 출발: 11:50~도착: 19:20

▣ 경  비: 신불산폭포휴양림_주차료: 3,000원, 입장료1인: 1,000원 / 5,000원

 

 

 Photo 후기

오랜만의 금요일 나들이

 

늦은 시간이라 아낌없이 입장료와 주차비를 주고 폭포휴양림 하단 주차장에 패킹 후 산행채비

올려다 본 갈산고지 쪽 무명봉과 암벽을 올려다 보고 파래소 폭포와 갈산고지를 올라 보았다.

주중 내린 비로 왕봉골 계류소리 우렁차니, 파래소 폭포가 어떨지 눈에 선하고...채비하여 출발~!

 

 

 

 

 

 

 

 

 

 

 

신불재에서 발원하는 청석골(백련골)

 

청석골 계류도 풍부하여 물소리 우렁차니, 이것은 소음이 아닌 엔돌핀 팍팍 솟게 하는 힐링~@

 

 

 

 

 

 

 

 

 

 

 

왕봉골에 청석골이 저 아래서 합수되고... 

 

 

 

 

 

등산 안내도

 

표지판 우측으로 청석골과 만길능선 들머리가 있다.

 

 

 

 

 

왕봉골 계류

 

 

 

 

 

작은 석굴이 있는 암벽

 

 

 

 

 

 

 

 

 

 

 

 

 

 

 

 

 

오래전 아연 채굴 석굴이 있는 단애

 

 

 

 

 

폐쇄 된 아연광산

 

아연광산 저 석굴은 옛 아연광산 채굴하던 인공동굴로, 동굴길이는 31m로 여름엔 찬바람, 겨울엔 따뜻한 공기가 나온다고 소개하고 있다. 굴안에서 흐르는 물은 절대 마시지 말것이며,,,들어가면 위험하니 주의 바람...이렇게 소개하고 있지만, 철창으로 막아 놓아 출입을 막아 놓고있다. 상, 하 두개의 석굴 입구가 입을 벌리고 흰김이 무럭무럭 풍겨나오는데, 무척이나 시원할 듯 하다.

 

 

 

 

 

 

 

 

 

 

 

파래소폭포 아래 목교 도착

 

우측으로 덱 계단을 올라 내려서도 되지만, 우리는 늘 그럴 듯 그냥 계곡으로 접근

 

 

 

 

 

거대한 바위 아래로 흐르는 계류

 

마치 깊은 용소를 보는 듯, 계류가 휘도는 곳으로 거대한 암괴 아래를 파고 돌아 흐르는 곳이다.

 

 

 

 

 

상류에서 본 계류가 바위 아래로...

 

 

 

 

 

 

 

 

 

 

 

 

 

 

 

 

 

파래소 폭포 도착

 

역시 과하지도 부족함도 없는 멋진 파래소 폭포다.

폭포 소리로 짱과의 대화도 안되지만, 손짓으로 모든것을 소통하며 오랜시간 머물며 음이온 흠뻑 맞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폭포를 아주 여러뷰를 담고 또 담는다.

 

 

 

 

 

 

 

 

 

 

▶ 영상_파래소 정면에서 01

 

 

 

 

 

 

 

 

 

 

 

 

 

 

 

 

 

 

 

 

 

 

 

 

 

 

 

 

 

 

 

 

 

 

 

▶ 영상_파래소 우측에서 02

 

 

 

 

 

 

 

 

 

 

 

 

 

 

 

 

 

 

 

 

 

 

 

 

 

 

 

 

 

 

 

 

 

 

 

 

 

 

 

 

 

 

 

 

 

 

 

 

 

 

 

 

 

 

 

 

 

 

 

 

 

 

 

 

 

 

 

 

 

 

 

 

 

 

 

 

 

 

 

 

 

 

 

 

 

 

 

 

 

 

 

 

 

 

 

 

 

 

 

 

 

 

 

 

 

 

 

 

 

 

 

 

 

 

 

 

 

 

 

▶ 영상_파래소 좌측에서 03

 

 

 

 

 

 

파래소 폭포 아래를 건너...

 

파래소폭포 전망대까지 코박고 오른다.

 

 

 

 

 

올 여름은 버섯 풍년

 

 

 

 

 

 

 

 

 

 

 

 

 

 

 

 

 

폭포 전망대 오르는 덱계단

 

실상 전망대에 오르는 시설이기보다 신불산 모노레일 설치 때 폭포관람 목적으로 설치된 시설물이다.

필자가 보아도 너무 날림공사로 만들어진 모노레일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이니, 참 어처구니 없다.  

 

 

 

 

 

폭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파래소 폭포

 

 

 

 

 

 

 

 

 

 

 

 

 

 

 

 

 

너무 아름다운 파래소

 

 

 

 

 

 

 

 

 

 

 

 

 

 

 

 

▶ 영상_파래소 04

 

 

 

 

 

 

 

 

 

 

 

 

올려다 본 신불산 만길능선

 

 

 

 

 

 

 

 

 

 

 

파래소 폭포를 오랜시간 보고..

 

파래소폭포 상단으로 진행, 왕봉골을 따라 오른다.

 

 

 

 

 

구름버섯

 

 

 

 

 

구룸버섯과 목이버섯

 

 

 

 

 

 

 

 

 

 

 

 

 

 

 

 

 

싸리버섯이 보이지만 영~!!!

 

 

 

 

 

파래소폭포 상단

 

오랜시간 물에 깎인 협곡이 깊게 패여 있다.

 

 

 

 

 

 

 

 

 

 

 

 

 

 

 

 

 

팽이버섯

 

 

 

 

 

 

 

 

 

 

 

 

 

 

 

 

 

왕봉골 계류

 

 

 

 

 

취꽃

 

 

 

 

 

갈림길 (↗신불산휴양림, ↖갈산고지)

 

우리는 갈산고지를 오를 예정이니 좌측 모노레일 아래를 통과하여 오른다.

 

 

 

 

 

구름버섯(운지)

 

 

 

 

 

짱은 무엇을 보았는지...

 

 

 

 

 

흰목이버섯

 

 

 

 

 

이건 뭐지...?

 

아주 큰 버섯인데, 살짝 떼어보니 안에서 끈끈한 액체가 흘러 나오는데...!!!

마치 잘 구워 놓은 먹음직스러운 빵 같아 보이는데, 도저히 무슨버섯인지 !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

 

내가 보아도 모노레일 기둥이 너무 허술하게 보이니, 어떻게 이렇게 부실하게 공사를 했는지 한마디로 이해불가 !

모노레일 하중을 견뎌야 하는 기둥이 너무 약하고, 기초는 전혀 없는 상태 그냥 너덜 돌위에 대충 용접태그 한 상태다.

 

 

 

 

 

 

 

 

 

 

 

싸리버섯 종자가 간혹 보이지만...너무 작고

 

 

 

 

 

등로 좌측으로...

 

빨치산 참호 흔적이 있는 곳으로 거슬러 올랐다.

바로 앞 좌우로도 갈산고지를 애둘러 참호가 있었는 듯 하다.

참호 흔적에는 낙옆만 오랜시간 쌓여 자정치유 되고 있다.

 

 

 

 

 

갈산고지 팔각정

 

 

신불산 빨치산 남도부는 지리산 빨치산에 이어 두번째로 치열했던 현대사의 아픔 남아있는 영남알프스 산하, 특히 이곳 배내골 일원이 그들의 본거지였기에 간략하게 남겨 본다.  

6.25 전쟁 당시 신불산 빨치산 대장은 ‘남쪽으로 진격하여 부산을 점령하라’는 뜻을 가진 남도부(南到釜, 본명 하준수)였다. 남도부는 1950년 6월 24일 강동정치학원 출신 유격대원 300여 명을 이끌고 남하한다. 그는 전투를 계속하며 7월 경북 청도군 운문산에 도착한다. 병력은 130여 명으로 줄었다. 처음에는 주암계곡에, 나중에 681고지인 태봉산에 사령부를 두고 빨치산을 지휘했다. 지리산과 마찬가지로 영남알프스는 1천 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세와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었기에 유격활동으로, 무엇보다 부산 경남 일대의 후방을 교란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신불산 빨치산은 북에서 내려온 유격대원을 중심으로 그 후 지방당원을 받아들여 최고 220여 명에 이르게 되고, 전쟁중 합류한 인민군 후퇴병력까지 합쳐져 약 1,000명 가까이 세가 확장되었다. 군경과의 교전 700여 회, 군경 사살 1800여 명, 각종 무기 약탈 800여 정, 각종 실탄 약탈 2만여 발, 민가 방화 100여 호, 민가 습격 500여 호, 군용열차 전복 20여 차량, 군용트럭 소각 또는 파괴가 200여 대에 달하는 등 후방 교란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남도부의 전투지역은 전쟁 기간 동안 한 번도 인민군에게 점령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적진 한 가운데에서 고립적인 전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평양으로 어떤 연락을 해본 적도 없었고, 보고와 지령 그리고 전투장비와 물자의 보급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정규군인 빨치산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총과 탄약은 전투를 통해 노획 가능했지만, 식량은 결국 지역 주민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보급투쟁에는 부대원 60~70명과 당원 20~30명이 동원되기도 했다. 밀양 재약산에 많을 때는 소 32마리를 방목하고, 하루에 2마리를 잡은 적도 있었다. 쌀밥 대신 소고기로 배불리 먹기도 했다. 전투부대들은 교대로 영양보충을 하며 돌아갔다. 하지만 빨치산이 보급투쟁을 하며 지역민에게 주었던 ‘원호증’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일 100여 명이 먹을 식량을 확보한다는 것은 빨치산이나 지역민에게는 엄청난 고역일 수밖에 없다. 당시 지역주민 200여 명이 살상 내지 피해를 입었다.

 

1950년 12월부터 토벌활동이 시작됐다. 언양·삼남·상북 주민을 동원하여 하룻밤 부역으로 미군 비행장을 닦고 정찰기를 띄우기도 했다. 비행기는 네이팜탄을 투하하여 산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사자벌에서는 대포를 쏘았다. 1951년 겨울 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서자 신불산에 1만 명을 투입하여 토벌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52년 2월과 3월의 신불산 공비 토벌작전과, 6월의 고헌산 옆에 위치한 아미산 작전으로 빨치산은 소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각 산간 오지마을을 소개시켜 빨치산의 보급투쟁을 막았다. 토벌대의 공격 등으로 소위 총에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어 1953년 겨울 대원 수는 37명으로 격감하였다. 결국 남도부는 하산을 결정하게 된다.

남은 빨치산들은 그 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휘부는 휴전 이후 당의 지령에 따라 하산하여 도시에 잠입하여 지구당 구축을 하려다 남도부처럼 검거되어 사형을 당했다. 검거된 일부는 혹독한 전향공작으로 죽기도 했지만, 일부는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였고, 또 일부는 북한으로 넘어갔다. 신불산 빨치산 남도부(하준수)는 전향한 부하의 밀고로 1955년 8월 서울 외곽에서 체포되어 34세 나이로 총살을 당했다.

지금도 신불산 갈산고지 주변에서는 당시의 잔재로 어렵지 않게 치열했던 전투 잔재물을 볼 수 있으며, 빨치산이 묻힌 돌무덤들이 현존하고 있다. 빨치산에서 살아남은 일부 사회에 복귀한 이들은 이들의 유해를 수습해야 한다고 하지만, 갈등과 대립의 남북관계가 이마저도 쉽게 허락치 않음이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다.

당시 간월산 죽림굴은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고, 얼마전 주암계곡에서 이들이 사용했던 무쇠솥들이 발견되었다.

팔각정봉 공비사령부와 신불서릉 끝자락 969봉의 공비지휘소 사이 왕봉골 파래소폭포는 빨치산들이 취사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토벌군과 기나긴 전투의 긴장속에서도 그들도 이곳에서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도 지었을 것이다.

 

불산 빨치산은 배내골 갈산고지(태봉산)를 본거지로 한 빨치산은 지리산 빨치산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의 남도부 빨치산 부대가 영남알프스 일대 운문산, 가지산, 신불산, 고헌산 등에서 벌인 아군(토벌대)과의 치열한 전투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 동족산간의 비극은 1948년에서 1953년까지 7년 동안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남도부(하준수)는 남쪽으로 진격하여 부산을 점령하려는 목적으로 남하 한 특수 부대로 영남알프스의 산군에 위치한 울산, 경주, 청도, 밀양, 양산 지역의 반경 250km까지 이어져 산악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빨치산은 물론 토벌대와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현지 주민들을 학살하고 탈취하는 만행 저질렀다. 남도부 부대가 북한 회령을 출발할 당시(1950년) 병력은 300명 정도였으나 전쟁을 치르면서 신불산에 도착할 무렵엔 150명 정도로 줄어든다. 전쟁중 합류한 인민군 후퇴병력까지 합쳐져 약 1,000명까지 세가 확장되었다. 3년 후 토벌시기(1953년 7월 휴전협정)에 들어서는 미군 포격 지원과 적극적인 토벌작전으로 최후의 10여 명만이 살아 남았다. 남도부(하준수)는 전향한 부하의 밀고로 1955년 8월 서울 외곽에서 체포되어 34세 나이로 총살을 당했다.

지금도 신불산 갈산고지 주변에서는 당시의 잔재로 어렵지 않게 탄피를 볼 수 있으며, 빨치산이 묻힌 돌무덤들이 현존하고 있다. 당시 간월산 죽림굴은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도지역 빨치산은 6.25전쟁 당시 경북 청도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지향하며 유격전을 수행한 남조선 인민유격대(빨치산, 야산대, 공비) 게릴라 부대가 있었다. 1949년 7월부터 산발적으로 유격투쟁을 한 조직이며 지휘는 박헌영의 지도 아래 이승엽이 관장하였다. 남조선 인민 유격대는 빨치산, 야산대, 공비, 공산게릴라, 산사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었다. 

1946년 5월에 미소공동위원회의 협상 결렬, 대구 10월항쟁, 2.7사건 등을 거치면서 남한 내 모든 좌익 세력들이 불법화되었다.

이후 남로당 방침에 따라 무장게릴라 조직인 남조선 인민유격대가 전국적으로 5개 유격 지구에서 결성된다. 이 때 청도군은 영남 유격지구에 편성되어 활동을 하였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수립 이후 남조선 인민 유격대 청도 군당은 본격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하면서 청도 지역의 밤은 빨치산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군경의 통신 체계 교란 목적으로 전신주 경비 전화선을 절단하고 경찰서 및 관공서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또한 밤에 마을로 내려와 좌익 사상선전 교육 및 식량과 생활용품 약탈이 이어졌고, 다수 지역에서는 살상, 방화 사건들이 자행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대구 주둔 제3여단 제6연대를 비롯한 여러 부대가 청도에 파견되어 지속적인 토벌작전을 수행했고, 특히 과거 좌익 공비 출신들로 구성된 땅벌 부대의 공로가 빛났다. 1950년11월 중순경 빨치산 근거지 중 한 곳인 가지산 학소대 골짜기를 포위하여 공격, 운문산 빨치산 대장으로 활동하던 7명을 생포하였다. 그 후 잔당들은 오진리 웅기산 빨치산과 제휴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1952년 국군제875부가 운문사에 주둔해 토벌작전을 시작하면서 1953년에 완전 소탕되었다.

 

 

 

 

 

갈산고지 팔각정 도착

 

 

 

 

 

 

 

 

 

 

 

 

 

 

 

 

 

팔각정에서

 

주변에 지붕에서 떨어진 낡은 기와 조각들이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접근 시 위험해 보인다.

이곳까지 올라왔으니 조심스럽게 주변 조망을 하려 3층으로 올라 보았다.

 

 

 

 

 

갈산고지 팔각정 3층에서

 

먼저 코앞에 건너다 보이는 신불산

 

 

 

 

 

한마디도 사방의 산이 막힘 없이 조망되는 곳

 

 

 

 

 

재약산과 천황산

 

우측으로 부드러운 능선 끝에 능동산, 그리고 아래로 배내골이 아주 잘 보인다.

 

 

 

 

 

 

 

 

 

 

 

능동산과 간월서봉

 

 

 

 

 

 

 

 

 

 

 

신불산과 공비토벌 기념비가 있는 995봉 

 

 

 

 

 

신불산과 995봉

 

좌측 995봉이 빨치산 지휘소가 있었던 곳으로 왕봉골을 사이에 두고 이곳 빨치산 사령부와 대화도 가능할 수도 있을 듯 한 거리다.

 

 

 

 

 

영축산과 신불평원은 운무 속

 

 

 

 

 

신불산과 신불평원

 

 

 

 

 

 

 

 

 

 

 

그리고 원동 쪽 배내골 하류 방향

 

 

 

 

 

 

 

 

 

 

 

당겨서 본 배내골

 

 

 

 

 

 

 

 

 

 

 

 

 

 

 

 

 

신불산을 최대한 당겨 보고...

 

 

 

 

 

배내골 하류 방향

 

 

 

 

 

 

 

 

 

 

 

 

 

 

 

 

 

 

 

 

 

 

 

 

 

 

 

 

 

갈산고지 팔각정

 

제법 오랜시간 조망을 즐기다, 팔각정을 내려서 하산...!

 

 

 

 

 

파래소 폭포로 하산

 

 

 

 

 

잿빚만가닥버섯

 

 

 

 

 

 

 

 

 

 

 

다시 파래소폭포

 

오후 늦은 시간이 되니 폭포는 홀로 굉음을 뿜어내고 있다.

 

 

 

 

 

 

 

 

 

 

 

 

 

 

 

 

 

 

 

 

 

 

 

 

 

 

 

 

 

 

 

 

 

 

 

 

다음에 또 만나기로 하고...하산 !

 

 

 

 

 

 

 

 

 

 

 

 

 

 

 

 

 

 

 

 

 

 

 

 

 

 

 

 

 

 

 

 

 

 

 

 

 

 

 

 

 

 

 

이렇게 여유로운 금요일 짧은 휴식 산행을 마무리 하고...

안전하게 귀울하여, 또 다시 토요일 짧은 산행을 생각하니 행복하다.

 

가까이 있어 행복한 영남알프스,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