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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갈산고지(태봉산)_파래소와 681고지 '25.9.14(일)

 

주말, 추적추적 비 내리고, 일요일 비 개이는 영남알프스 한켠에서 놀기

일요일 잔뜩 흐리고 습한 날씨로 땀 흘리기 딱 좋은 날씨 입니다.

 

주말내 비 내렸지만, 엄청 가물었으니 파래소 물기둥이 많이 약해 보입니다.

지난해 이곳에서 말벌에 당했던 징크스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어게인..!

 

 

 

 

 

파래소폭포는 이천리 철구소, 밀양 호박소와 함께 영남알프스 3대 沼 입니다.

 

파래소 폭포의 물기둥은 15m로 沼의 둘레가 100m 깊이가 평균 3~4m 정도 됩니다.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면 단비가 내려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다" 하여

당초 "바래소"라고 불렀는데 발음이 변음 되어 "파래소"로 불리워 졌다고 합니다.

 

 

 

 

 

파래소 전설은 소에 명주실을 풀면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설과, 파래소와 철구소, 밀양의 호박소는 그 밑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선녀들이 목욕하러 내려올 때면, 이무기가 그 밑을 통해서 자리를 피해줬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믿거나 말거나,,,아무튼 영남알프스 3대 沼중 가장 아름답습니다.

 

 

 

 

 

갈산고지 3층으로 설치된 육각정 전망대는 관리가 되지 않아 접근 시 위험이 도사리고

노후된 지붕의 기와가 떨어지고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조망은 천황산, 재약산, 신불산, 영축산 배내골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요충지로

이곳 갈산고지는 현대사의 아픔이 남아있는 곳으로, 바로 신불산 빨치산 입니다.

지금은 갈산고지 숲이 자라서 3층에 올라야 제대로 사방을 조망할 수 있지만

빨치산 주둔 당시는 정상에서 사방을 볼 수 있었을 천혜의 요충지로 충분한 곳 입니다.

 

또한, 고지주변 2중 참호에는 실탄은 물론, 수류탄이 잔존하니 등로를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갈산고지 육각정 전망대 설치는 아래 공비토벌작전기념비가 세워진 2001년 전후 입니다.

신불서릉의  986봉, 거북바위가 있는 969봉, 갈산고지 3곳에 함께 세웠졌던 공비소를 알렸던 비석

또한 이때 세워졌으나, 이에 반하는 이들 소행인지 986봉 비를 제외하고 2곳의 비석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갈산고지는 태봉산으로 주봉인 신불산을 주 배경으로 남도부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곳이다. 일명 681고지로 부르는 갈산고지는 배내골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고지로 사방을 관측하기 아주 적절한 지정학적 천혜의 요새이고 요충지다. 갈산고지에 오르면 사방이 모두 조망이 열리는 곳으로 주변의 동태를 쉽게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사시 도주에도 용의한 곳이다. 주변 신불산, 간월산, 천황산, 재약산 일대가 한눈에 관측되고 어디로든 이어갈 수 있는 이곳이 빨치산 남도부 빨치산의 숙영지이자 사령부였다. 토벌군과의 치열한 전투로 인해 아직도 이 고지 주변에는 2중 참호 흔적과 실탄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곳 681고지에 근거지를 둔 남도부에 속한 직속 빨치산으로 청도부대, 홍길동부대, 동래부대가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남한 후방을 교란하기 위한 최대의 조직 지리산 빨치산과 함께 이곳 영남알프스에도 남도부 빨치산으로 인해 남겨진 현대사의 아픔이 영남알프스 곳곳에 서려 있다. 현 팔정정이 있는 이곳이 빨치산 사령부가, 건너 신불산 서릉 986고지에 빨치산 지휘소가 있었으며 그 사이에 있는 왕봉골 파래소 폭포는 빨치산들의 취사장으로 사용되였다고 한다. 신불산 빨치산 대장은 하준수란 인물로 남도부(南都釜)란 '남쪽으로 진격하여 부산을 점령하라'는 뜻 이었다. 

 

신불산 빨치산 남도부는 지리산 빨치산에 이어 두번째로 치열했던 현대사의 아픔 남아있는 영남알프스 산하, 특히 이곳 배내골 일원이 그들의 본거지였기에 간략하게 남겨 본다.  

6.25 전쟁 당시 신불산 빨치산 대장은 ‘남쪽으로 진격하여 부산을 점령하라’는 뜻을 가진 남도부(南到釜, 본명 하준수)였다. 남도부는 1950년 6월 24일 강동정치학원 출신 유격대원 300여 명을 이끌고 남하한다. 그는 전투를 계속하며 7월 경북 청도군 운문산에 도착한다. 병력은 130여 명으로 줄었다. 처음에는 주암계곡에, 나중에 681고지인 태봉산에 사령부를 두고 빨치산을 지휘했다. 지리산과 마찬가지로 영남알프스는 1천 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세와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었기에 유격활동으로, 무엇보다 부산 경남 일대의 후방을 교란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신불산 빨치산은 북에서 내려온 유격대원을 중심으로 그 후 지방당원을 받아들여 최고 220여 명에 이르게 되고, 전쟁중 합류한 인민군 후퇴병력까지 합쳐져 약 1,000명 가까이 세가 확장되었다. 군경과의 교전 700여 회, 군경 사살 1800여 명, 각종 무기 약탈 800여 정, 각종 실탄 약탈 2만여 발, 민가 방화 100여 호, 민가 습격 500여 호, 군용열차 전복 20여 차량, 군용트럭 소각 또는 파괴가 200여 대에 달하는 등 후방 교란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남도부의 전투지역은 전쟁 기간 동안 한 번도 인민군에게 점령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적진 한 가운데에서 고립적인 전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평양으로 어떤 연락을 해본 적도 없었고, 보고와 지령 그리고 전투장비와 물자의 보급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정규군인 빨치산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총과 탄약은 전투를 통해 노획 가능했지만, 식량은 결국 지역 주민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보급투쟁에는 부대원 60~70명과 당원 20~30명이 동원되기도 했다. 밀양 재약산에 많을 때는 소 32마리를 방목하고, 하루에 2마리를 잡은 적도 있었다. 쌀밥 대신 소고기로 배불리 먹기도 했다. 전투부대들은 교대로 영양보충을 하며 돌아갔다. 하지만 빨치산이 보급투쟁을 하며 지역민에게 주었던 ‘원호증’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일 100여 명이 먹을 식량을 확보한다는 것은 빨치산이나 지역민에게는 엄청난 고역일 수밖에 없다. 당시 지역주민 200여 명이 살상 내지 피해를 입었다.

 

1950년 12월부터 토벌활동이 시작됐다. 언양·삼남·상북 주민을 동원하여 하룻밤 부역으로 미군 비행장을 닦고 정찰기를 띄우기도 했다. 비행기는 네이팜탄을 투하하여 산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사자벌에서는 대포를 쏘았다. 1951년 겨울 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서자 신불산에 1만 명을 투입하여 토벌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52년 2월과 3월의 신불산 공비 토벌작전과, 6월의 고헌산 옆에 위치한 아미산 작전으로 빨치산은 소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각 산간 오지마을을 소개시켜 빨치산의 보급투쟁을 막았다. 토벌대의 공격 등으로 소위 총에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어 1953년 겨울 대원 수는 37명으로 격감하였다. 결국 남도부는 하산을 결정하게 된다.

남은 빨치산들은 그 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휘부는 휴전 이후 당의 지령에 따라 하산하여 도시에 잠입하여 지구당 구축을 하려다 남도부처럼 검거되어 사형을 당했다. 검거된 일부는 혹독한 전향공작으로 죽기도 했지만, 일부는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였고, 또 일부는 북한으로 넘어갔다. 신불산 빨치산 남도부(하준수)는 전향한 부하의 밀고로 1955년 8월 서울 외곽에서 체포되어 34세 나이로 총살을 당했다.

지금도 신불산 갈산고지 주변에서는 당시의 잔재로 어렵지 않게 치열했던 전투 잔재물을 볼 수 있으며, 빨치산이 묻힌 돌무덤들이 현존하고 있다. 빨치산에서 살아남은 일부 사회에 복귀한 이들은 이들의 유해를 수습해야 한다고 하지만, 갈등과 대립의 남북관계가 이마저도 쉽게 허락치 않음이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다.

당시 간월산 죽림굴은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고, 얼마전 주암계곡에서 이들이 사용했던 무쇠솥들이 발견되었다.

팔각정봉 공비사령부와 신불서릉 끝자락 969봉의 공비지휘소 사이 왕봉골 파래소폭포는 빨치산들이 취사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토벌군과 기나긴 전투의 긴장속에서도 그들도 이곳에서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도 지었을 것이다.

 

청도지역 빨치산은 6.25전쟁 당시 경북 청도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지향하며 유격전을 수행한 남조선 인민유격대(빨치산, 야산대, 공비) 게릴라 부대가 있었다. 1949년 7월부터 산발적으로 유격투쟁을 한 조직이며 지휘는 박헌영의 지도 아래 이승엽이 관장하였다. 남조선 인민 유격대는 빨치산, 야산대, 공비, 공산게릴라, 산사람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었다. 

1946년 5월에 미소공동위원회의 협상 결렬, 대구 10월항쟁, 2.7사건 등을 거치면서 남한 내 모든 좌익 세력들이 불법화되었다.

이후 남로당 방침에 따라 무장게릴라 조직인 남조선 인민유격대가 전국적으로 5개 유격 지구에서 결성된다. 이 때 청도군은 영남 유격지구에 편성되어 활동을 하였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수립 이후 남조선 인민 유격대 청도 군당은 본격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하면서 청도 지역의 밤은 빨치산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군경의 통신 체계 교란 목적으로 전신주 경비 전화선을 절단하고 경찰서 및 관공서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또한 밤에 마을로 내려와 좌익 사상선전 교육 및 식량과 생활용품 약탈이 이어졌고, 다수 지역에서는 살상, 방화 사건들이 자행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대구 주둔 제3여단 제6연대를 비롯한 여러 부대가 청도에 파견되어 지속적인 토벌작전을 수행했고, 특히 과거 좌익 공비 출신들로 구성된 땅벌 부대의 공로가 빛났다. 1950년11월 중순경 빨치산 근거지 중 한 곳인 가지산 학소대 골짜기를 포위하여 공격, 운문산 빨치산 대장으로 활동하던 7명을 생포하였다. 그 후 잔당들은 오진리 웅기산 빨치산과 제휴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1952년 국군제875부가 운문사에 주둔해 토벌작전을 시작하면서 1953년에 완전 소탕되었다.

 

현재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는 실제 해발 727.8m인데, 왜 681고지로 알려져 있을까 해답은 아래 일제시대에 세워 놓은 삼각점 때문이다. 삼각점이 727봉이 아닌 서쪽 낮은 무명봉 681봉에 삼각점을 세워 681고지라 불렀다고 한다.

 

 

 

 

전망대가 있는 728봉과 좌측으로 681봉

 

 

 

 

 

 

갈산고지서 동쪽에 보이는 986봉과 신불산 영축산이 코앞에 건너다 보입니다.

이곳 갈산고지에는 공비사령부가, 저 986봉에는 공비 지휘소가 있었습니다.

 

986봉과 조금 아래 969봉 거북바위에 공비지휘소를 알렸던 비석이 있는데

2007년 전 969봉 비석은 깨져 벼랑 아래로 버려진 비석 잔해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영남알프스에도 역사의 아픔이 있었으니, 빨치산 이야기는 마음을 짠하게 합니다.

무수한 희생으로 지켜 온 평화, 참 우리는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 복받은 세대가 아닐까 !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영남알프스 자락 곳곳에 서려 있는 과거사의 아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 입니다.

 

가지산 석남사 일주문 좌측에 있는 신불산 공비토벌작전기념비,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전문을 옮겨 보았습니다.

 



 

 

신불산 공비토벌작전기념비

가지산 석남사 일주문 좌측에 있는 이 기념비는 동족상간의 비극인 6.25전쟁을 전후하여 신불산 일대에 준동하였던 빨치산 부대를 소탕하는 “신불산공비토벌작전”이 있었는바 이때 조국과 지역을 사수하다 산화한 영혼을 추모하고 피해지역 주민의 고귀한 향토수호 의지와 희생정신을 기리고 나아가 조국수호의 참 의미를 후손들에게 물려 주고자 생존하신 전우를 중심으로, “신불산참전전우회”를 결성하고 2001년 6월 27일에 신불산공비토벌 기념비가 세워졌다.

우리 울산광역시는 6.25전행의 직접적인 격전지는 모면했지만 소위 영남알프스의 고산준봉을 근거지로 빨치산이라 불리우는 수많은 공비가 준동하여 갖은 만행을 일삼았다. 특히 신불산에 거점을 두었던 속칭 동부지구 제4지구당으로 불리우며 북괴군 중장 칭호를 받고 있던 남도부 “하준수” 부대는 그 병력이 240여명으로 전쟁기간 중 지역 좌익단체와 인민군 낙오병, 남파된 유격대 등과 합세하여 신불산 일대 (995고지와 681고지)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온양의 대운산, 두서의 아미산, 두동의 치술령 등에 은거지를 구축, 수차에 걸쳐 관공서, 경찰서 등을 습격하며 학살과 방화를 자행하여 재산의 약탈은 물론 경찰 146명, 지역주민 200여명이 살상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1949년 말부터 휴전직후인 1953년 10월까지 4년간에 걸쳐 군, 경 및 의용경찰이 상호 교대하며 토벌작전을 전개 하였다. 이 작전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중의 하나가 1952년 3월 6일 까지 있었던 “신불산공비토벌작전” 이었으니 당시 수도사단기갑연대(1개 중대)와 울산경찰서가 미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 995고지와 681고지를 점령하여 우리 울산지방의 평화와 안전을 되찾을 수 있었던 바 이곳 영남알프스 전역은 역사의 산 현장 입니다.

당시 신불산 공비토벌작전 종료 이듬해인 1955년 당시 울산경찰서(현 울산 중구 교동) 앞에 희생자의 이름이 새긴 충혼탑을 세웠으나, 역사의 현장인 영남알프스 현장 가지산 입구에 제대로 기념비를 세운 것은 2001년 6월 이었다.

그 당시의 상황이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아 참전자 정확한 명부가 없었는데, 지난 2003년 8월에 참전이 확인된 64명이 처음으로 참전유공자 증서를 받았고, 2004년에 47명, 2005년에 10명이 추가로 유공자 증서를 받았으며 아직도 신불산공비토벌 유공자 찾기가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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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름: 태봉산 727.8m (갈산고지/ 일명: 681고지)

 

▣ 위   치: 울산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경남 양산 원동면 선리

              들/날머리: 울산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산 2-1 (국립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하단_P)

▣ 코   스: 불산폭포자연휴양림 하단_P~파래소 폭포~폭포전망대~폭포 상단~ 갈산고지(태봉산)~ 신불산휴양림 상단~

             왕봉골~ 파래소폭포~ 신불산휴양림 하단_P

               【산행 】입산: 09:50~하산: 15:30/ 7.0km/ 5.4H (유람산행)      

▣ 일   시: 2025년 9월 14일(일) 

▣ 날   씨: 흐림(구름 많음)_오후 맑음

▣ 일   행: 조릿대 & 짱

▣ 이   동: 자가운전(왕복: 80km) 울산출발: AM09:00~ 울산도착: PM17:30

▣ 비   용: 휴양림 입장료 1인 1,000원, 주차비 2,500원/ 울산 서울국밥 21,000원/ Total: 25,500원 (도로비 & 유류비 별도)

 

 

 

 

▣ Photo 후기

잔뜩 흐린 날씨

 

신불산휴양람 하단 상부 주차장에 패킹 후 올려다 본 갈산고지에서 뻗은 암봉 입니다.

오늘따라 휴양림에 온 이들이 많아 주차장이 거의 만차상태, 산행채비 후 출발 합니다.

 

 

 

 

 

 

신불산휴얄림 하단 주차장과 파래소 들머리

 

주차비 3000원 입장료 1인 1000원, 5천원 거금을 들여 신불휴양림 하단의 상부 주차장 입니다.

자동차가 자연친화적 차량이라고 500원 깍아 주내요 ㅎ

 

 

 

 

 

왕봉골로 합수되는 백련골(청석골)

 

백련골은 일명 청석골이라 하고, 비가 내렸어도 백련골 계곡도 이렇게 물줄기가 약하네요.

 

 

 

 

 

아래로 합수부

 

청석골 계류를 건너면 만길능선, 청석골 들머리가 있습니다.

 

 

 

 

 

청석골 만길능선 들머리

 

 

 

 

 

 

왕봉골 본류

 

멋진 와폭이 이어지는 곳인데, 계곡수량이 적어 감흥이 없네요.

 

 

 

 

 

파래소 가는 길

 

 

 

 

 

작은 석굴

 

 

 

 

 

 

 

 

 

 

 

아연 폐광산

 

 

 

 

 

 

 

 

 

 

 

폐 아연광산

 

아연광산 저 석굴은 옛 아연을 채굴하던 인공동굴로, 동굴길이는 31m로 여름엔 찬바람, 겨울엔 따뜻한 공기가 나온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굴안에서 흐르는 물은 절대 마시지 말것이며,,,들어가면 위험하니 주의 바람...이렇게 소개하고 있지만, 철창으로 막아 놓아 출입을 막아 놓고있습니다. 상, 하 두개의 석굴 입구가 입을 벌리고 흰김이 무럭무럭 풍겨 나옵니다.

 

 

 

 

 

 

 

 

 

 

 

 

 

 

 

 

 

 

 

 

 

 

 

다리 아래로 파래소에 접근

 

 

 

 

 

바위 아래 물길

 

 

 

 

 

아름다운 파래소 폭포

 

파래소 폭포 아래로 내려서는 덱 입구를 모두 로프로 막아 놓았는데, 무슨 연유인지...!

 

 

 

 

 

 

 

 

 

 

 

 

 

 

 

 

▶ 영상_파래소

 

 

 

 

 

▶ 영상_파래소

 

 

 

 

 

 

파래소 폭포

 

전망대에서 파래소를 보는 이들이 많아, 살짝 눈치가 보이지만 주말 비 내리니 접근을 막아 놓은 듯 하고, 거시기 하니 재빨리 건너 좌측으로 스며 오릅니다.

 

 

 

 

 

전망대 오르는 덱계단

 

비온 뒤라 이끼가 흠뻑 젖어 있어 무척 미끄러운 상태 입니다.

 

 

 

 

 

파래소 전망대 도착

 

본래 이곳에 오르면 파래소가 잘 보이는 곳으로, 휴양림 하단과 상단을 이어주는 모노레일을 설치하며 깔끔하게 덱 조망덱을 설치했습니다. 허나 모노레일 운영 첫날 사고로 인해 모노레일을 채 하루를 운행 정지가 되었지요.지난해까지 부실시공 되었던 모노레일 잔재가 남아았었는데, 이제 레일철거가 완료 되어 모노레일 흔적을 볼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시공업체는 망하다 보니 수십억을 들였던 바용은 떡 사먹은 꼴이 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파래소

 

 

 

 

 

 

 

 

 

 

 

 

 

 

 

 

 

 

 

 

 

 

 

 

 

 

 

 

 

▶ 영상_파래소

 

 

 

 

 

 

 

 

 

 

 

 

전망대에서 한땀 식히고 다시 출발

 

폭포 좌측으로 이어지는 휴양림 상단 가는 길로 진행 합니다.

 

 

 

 

 

비온 뒤라 온갖 잡버섯이...

 

 

 

 

 

 

구름버섯

 

실상 이곳에 이맘때 매년 오는 이유는 잠시 산행과 더불어 싸리버섯 자리를 들어다 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갈산고지 갈림길 삼거리

 

 

 

 

 

이름모를 버섯들이 예쁘네요~!

 

지난해 말벌에 당했던 곳을 오를때 애프킬라를 꺼내 발사 준비를 단디 하고 조심스럽게 통과, 다행히 올해는 말벌이 있었던 큰 갈참나무에 없는 듯 합니다.

 

 

 

 

 

갈산고지 도착

 

왠지 이곳에 오면 항상 숙연해 지는 듯 합니다.

 

 

 

 

 

갈산고지 육각정 전망대

 

3층으로 설치된 전망대는 관리가 되지 않아 노후된 기와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전망대 주변에 접근하면 떨어진 기와 조각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면, 언젠가 사고가 날 듯...!

관련 기관에서는 접근금지 안내판만 설치할 것이 아니라, 보수 또는 철거를 해야 할 듯 합니다.

하지만 갈산고지에 설치한 상징성이 있으니, 안전을 위해 보수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됩니다.

 

전망대 1층에는 한 단체팀이 전을 펼지고 있고, 모이고 마시면 그렇듯 아주 씨끌벅적 요란합니다.

기와가 떨어지니 처마끝에 나설 때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드리고, 우리는 위로 살짝이 올라갑니다.

 

 

 

 

 

 

사방 멋진 영남알프스 전망대

 

영남알프스 고산중봉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조망이 압권인 곳 입니다.

 

 

 

 

 

 

갈산고지 육각정 전망대 3층 풍경

 

아쉽게도 천미터 이상 고산준봉은 운무를 드리우고 있어 숨어 버렸네요.

 

 

 

 

 

 

 

 

 

 

 

 

 

 

 

 

 

 

 

 

 

 

 

 

 

 

 

 

 

 

 

 

 

 

 

 

운무를 이고 있는 배내골 건너 천황산 재약산

 

 

 

 

 

건너 969봉과 신불산 정상 운무

 

이곳에 빨치산 사령부가, 저 969봉과 986봉에 공비지휘소가 있었지요.

좌측으로 보이는 간월산 서봉, 준봉의 운무가 걷히기를 기다려 봅니다.

 

 

 

 

 

살짝 당겨 본 신불산

 

길게 패인 골짝이 백련골 또는 청석골 이며, 신불재로 이어집니다.

바로 앞 거북바위가 있는 969봉 손짓을 해도 보일 듯 한 거립니다.

 

 

 

 

 

영축산에서 이어지는 영축지맥

 

영축산 함박등 죽밧등 오룡산까지도 운무 속 입니다.

 

 

 

 

 

영축산 정상부 운무

 

 

 

 

 

 

 

 

 

 

 

아래 배내골과 중앙 V 배내고개

 

 

 

 

 

천황산 재약산 운무

 

 

 

 

 

▶ 영상_갈산고지 풍경

 

 

 

 

 

 

이곳에서 런치타임

 

이제는 배낭 무게가 부담스러우니, 간단한 차림으로 준비하기로 합니다.

 

 

 

 

 

 

 

 

 

 

 

런치타임 후 영축산이 모습을 보이고...

 

좌측 영축산 정상, 중앙 함박등 운무속 죽바우등 우측 오룡산까지 보입니다.

 

 

 

 

 

 

 

 

 

 

 

신불산 서봉이 살짝 보이고...

 

 

 

 

 

천황산 재약산도 다시 한번보고...

 

 

 

 

 

 

아니온 듯...

 

깨끗이 정리 후 내려 옵니다.

 

 

 

 

 

다시 한번 보고...!

 

 

 

 

 

능선을 따라 휴양림 상단으로 진행

 

휴양림에서 갈산고지까지 능선길을 이렇게 잘 정비해 놓았습니다.

모노레일 운행이 계속 되었다면 이 길을 걷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간월산이 보이고...

 

 

 

 

 

당겨서 본 간월산

 

 

 

 

 

걷기 좋은 길

 

간혹 몀품솔이 반겨 줍니다.

 

 

 

 

 

휴양림 상단 임도 접속

 

관리초소가 있고 우리는 우측 신불산휴양림으로 진행, 휴양림에서 임도 따라 계속 오르면 유명한 죽림굴이 있지요.

죽림굴은 신불산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했던 곳이며, 천주교 박해 때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천주교성지 입니다.

 

 

 

 

 

휴양림 상단 관리소

 

 

 

 

 

휴양림 숲속의 집 임도따리 하산

 

옆에는 왕봉골 계곡수가 통앞반 위로 흐르고, 천혜의 자연을 차지하고 있는 신불산 휴양림 입니다.

 

 

 

 

 

 

 

 

 

 

 

신불산휴양림 안내도

 

국립신불산자연휴양림은  최초 1998년 6월 18일 개장하였습니다. 이후 계속 늘어나는 휴양림 이용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2016년 2월 29일~7월 27일 하단 지구에 연립동 신축되었습니다. 이후 2017년 6월 16일~10월 13일 상·하단을 이어주는 편의시설인 모노레일 설치하였으나, 운행 첫날 사고가 발생하여 모노레일 운영은 하루도 채 하지 못하고, 정밀 안전점검 결과 운영불가 판정으로 2024년까지 모노레일 전체를 철거 하였습니다.

 

 

 

 

 

휴양림 상단을 벗어나는 길

 

멋진 솔숲이 잠이 이어집니다.

이후 왕봉골 우측길로 하산~!

 

 

 

 

 

이어지는 왕봉골

 

계곡 수량이 적어 아쉽기만 합니다.

 

 

 

 

 

 

 

 

 

 

 

넓은 沼

 

 

 

 

 

왕봉골 따라 하산 길

 

 

 

 

 

 

 

 

 

 

 

파래소 상단 길

 

파래소 폭포까지 조심스럽게 내려서고...!

 

 

 

 

 

아름다운 파래소

 

이쪽에서 보는 파래소는 푸른 이끼와 함께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파래소에서...!

 

다시 골따라 내려서 등로로 올라 섭니다.

 

 

 

 

 

다시 폐 아연광산

 

 

 

 

 

 

 

 

 

 

 

 

 

 

 

 

 

 

 

 

 

 

 

 

 

 

 

 

 

 

 

 

 

 

 

무덥고 슴한 날...!

 

땀을 엄청 흘린 짧은 산행, 개운하게 씻고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그리고 청수골산장 주변 싸리버섯 군락지를 잠시 들어다 봅니다.

 

 

 

 

 

▶ 버섯 군락지 이동

이름모를 버섯이 제법 지천

 

 

 

 

 

 

 

 

 

 

배젖버섯

 

버섯을 살짝 흠집을 내면 하얀 우유같은 액체가 줄줄 나옵니다.

 

 

 

 

 

잡버섯이 우후죽준

 

 

 

 

 

아~역시...보인다~!

 

아직 손 타지 않은 줄싸리를 만나는 행운, 횡재를 합니다.

 

 

 

 

 

 

 

 

 

 

 

 

 

 

 

 

 

싸리버섯 

 

줄싸리를 만나 제법 많은 량을 채취했네요~ㅎ

작은 것은 놔두고 실한 것들만 채취를 합니다.

 

일거양득, 어찌 이번에는 손타지 않았을까 !

아무튼 감사한 마음으로 휘파람 불며 옵니다.

덕분에 다시 땀 흘렸지만, 더 좋을 수 없네요.

 

 

 

 

 

큰 다라이에 가득

 

 

 

 

 


이렇게 짧은 산행도 하고, 덤으로 챙겨 온 버섯까지 감사한 하루...!

가까이 있어 행복한 영남알프스는 무한정 배품을 주는 곳 입니다.

 

폭염, 극한호우, 가뭄이 지속되는 긴 여름, 아직도 늦더위가 기승이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은 이미, 성큼 다가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