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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 산행후기 ³°″/다녀온山寺

오갑사(五岬寺)의 근원 북대암과 운문사 '21.4.4

2021.4.5(일)

 

 

운문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오갑사 근원지 북대암이 있다.

 

신승이 수도하여 오갑사 '대작, 천문, 소작, 소보, 가슬갑사를 탄생시킨 곳...

 

 비온 뒤 오갑사의 근원지 북대암과 오갑사의 중심 운문사를 다녀왔다.

운문사 여러 산내 암자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이곳 북대암이다.

 

 

 

 

 

북대암

 

북대암(北臺庵)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속한 암자로, 운문사 북쪽 600m 정도 떨어진 복호산 자락의 병풍같은 암벽이 둘러쳐진 천혜의 비경지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 일대 오갑사인 5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신승이 수도했던 곳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으로 창건된 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아래로 운문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가지산, 운문산, 범봉, 억산, 호거대, 영남알프스 운문지맥 마루금이 장쾌하게 조망되는 전망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암자로 원래는 불전과 수행공간을 겸한 작은 전각만 있었으나 지금은 산신각, 칠성각과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오갑사인 5사찰 중 북쪽 소보갑사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문사 산내 암자중 가장 조망이 수려한 곳이며 암자 주변 또한 깍아지른 암벽과 암봉이 볼거리라 할 수 있다. 

 

 

 

 

 

북대암에서 내려다 본 오갑사의 중심 운문사(대작갑사)

 

오갑사(五岬寺)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돕는다는 오갑사는 신라 진흥왕 18년인 557, 운문으로 들어온 도승은 금수동(金水洞)계곡에 작은 암자를 지었다. 현재의 운문사 옆 북대암 근처다. 그리고 3년을 수도하며 홀연히 득도한 그는 산세의 혈맥을 짚어 도우(道友) 10여 명과 함께 다섯개의 갑사(岬寺)를 짓기 시작했다.가운데 '대작갑사(大鵲岬寺)'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9천보() 지점에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 7리에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 10리에 '소작갑사(小鵲岬寺)', 그리고 북쪽 8리에 '소보갑사(所寶岬寺)' 이렇게 오갑사(五岬寺). 기록에 따르면 다섯 갑사의 역사는 560년에 착공해 7년 동안 이루어졌고 거의 동시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작갑사가 오늘의 운문사이며, 소작갑사가 대비사가 유력하다.

 

호거산(虎踞山)은 '운문산'을 지칭하는 것이며, 이 곳에는 호랑이와 관련 된 산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1188m 운문산을 중심으로 바로 아래가 '범봉'이며, 삼지봉 북릉(호거대 능선)을 내려서면 서래봉을 지나게 되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호랑이가 있으니 '장군봉'이라고 하는 '호거대'를 만나게 된다. 필봉 같이 뾰족하게 솟아 올라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호거대에서 잠시 오르면 우측은 방음산 방향이고 좌측은 까치산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데 여기도 '해들개봉'이라는 '호거산' 정상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방음산으로 진행하면 '와호산' 이라는 작은 봉우리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도 호랑이와 관련이 있다. 더해 북대암을 감싸고 있는 산 또한 '복호산'이니 사방이 온통 호랑이가 버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작갑사'는 박곡리 미륵당에서 약 900m 떨어진 북쪽 계곡 중턱의 베틀바위 부근 절터로 추정된다. 베틀바위 북동쪽의 봉우리에서 남으로 뻗은 비교적 급한 사면의 가장자리다. 절터에는 건물지의 흔적과 불상대좌의 지대석과 하대석, 석불좌상의 하반신이 남아 있고 기와 조각이 넓은 지역에 걸쳐 산재하고 있어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작갑사는 운문사와 함께 중창한 대비사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보양국사가 중창 때 위치를 옮겨 원래의 자리는 아니지만 소작갑사의 법등을 잇고 있는 것이 바로 대비사라는 견해다.

'천문갑사'는 운문면의 신원리 절터로 여겨진다. 운문사 남쪽 운문천 상류의 사리암 골짜기에서 다시 상류를 따라 오르면 4개의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닿는데, 이곳을 천문동(天門洞)이라 부른다. 계류가 만나는 곳에 배 모양으로 튀어나온 구릉 위에 절터가 있다. 강돌로 쌓은 석축과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기단으로 추측되는 돌들을 볼 수 있다.

'소보갑사'는 운문면의 오진리 절터로 추정된다. 절터는 운문호와 옹산강에서 오진리 마을로 흘러오는 개울이 만나는 끝자락으로 갑(岬)형의 지형에 건물지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관련 유물이나 유구는 확인되지 않지만 신라의 기와 조각이나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됐다.

'가슬갑사'의 위치는 삼국유사의 원광서학(圓光西學)조에 나타난다. 기록에는 '원광법사가 수나라에 갔다 돌아와 가슬갑에 머문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지금 운문사 동쪽 9천보(步)쯤 되는 곳에 가서현이 있는데, 혹은 가슬현(嘉瑟峴)이라고 하며, 고개의 북쪽 골짜기에 절터가 있으니 바로 이곳이라는 설명이 남아 있다.
이를 근거로 가슬갑사는 운문면 바깥삼계리의 삼계리마을이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바깥삼계리는 운문산의 중앙부에 해당하고 운문령에서 발원하는 바깥삼계리천과 문복산에서 발원하는 개살피계곡이 만나는 골짜기의 땅이다.

 

 

 


 

 

 

▶ Photo 후기_오갑사의 근원지 북대암

북대암 입구

 

 

 

 

 

북대암 화단의 하늘매발톱

 

 

 

 

 

 

 

 

 

 

 

북대암(北臺庵)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속한 암자로, 운문사 북쪽 600m 정도 떨어진 복호산 자락의 병풍같은 암벽이 둘러쳐진 천혜의 비경지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 일대 오갑사인 5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신승이 수도했던 곳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으로 창건된 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아래로 운문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가지산, 운문산, 범봉, 억산, 호거대, 영남알프스 운문지맥 마루금이 장쾌하게 조망되는 전망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암자로 원래는 불전과 수행공간을 겸한 작은 전각만 있었으나 지금은 산신각, 칠성각과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오갑사인 5사찰 중 북쪽 소보갑사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문사 산내 암자중 가장 조망이 수려한 곳이며 암자 주변 또한 깍아지른 암벽과 암봉이 볼거리라 할 수 있다. 

 

 

 

 

 

북대암 암봉

 

 

 

 

 

북대암 앞 암봉

 

 

 

 

 

북대암에서 내려다 본 운문사

 

오갑사(五岬寺)란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돕는다는 오갑사는 신라 진흥왕 18년인 557, 운문으로 들어온 도승은 금수동(金水洞) 계곡에 작은 암자를 지었다. 현재의 운문사 옆 북대암 근처다. 그리고 3년을 수도하며 홀연히 득도한 그는 산세의 혈맥을 짚어 도우(道友) 10여 명과 함께 다섯 개의 갑사(岬寺)를 짓기 시작했다. 가운데 '대작갑사(大鵲岬寺)'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9천 보() 지점에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 7리에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 10리에 '소작갑사(小鵲岬寺)', 그리고 북쪽 8리에 '소보갑사(所寶岬寺)' 이렇게 오갑사(五岬寺). 기록에 따르면 다섯 갑사의 역사는 560년에 착공해 7년 동안 이루어졌고 거의 동시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작갑사가 오늘의 운문사이며, 소작갑사가 대비사다.

 

 

 

 

 

살짝 당겨서 본 운문사

 

 

 

 

 

 

 

 

 

 

 

 

 

 

 

 

 

암자 뒤 암벽

 

이곳 아래 사리를 봉안 하였다고 한다.

 

 

 

 

 

 

 

 

 

 

 

 

 

 

 

 

 

 

 

 

 

 

 

 

 

 

 

 

 

북대암 뒤 암벽

 

 

 

 

 

 

 

 

 

 

 

 

 

 

 

 

 

암벽 기도처에서 내려다 본 운문사

 

 

 

 

 

 

 

 

 

 

 

 

 

 

 

 

 

운문사와 운문산

 

운문산은 운무에 잠들어 있고, 비개이며 운무가 치솟고 있다.

 

 

 

 

 

 

 

 

 

 

 

 

 

 

 

 

 

북대암과 아래로 운문사

 

 

 

 

 

 

 

 

 

 

 

 

 

 

 

 

 

 

 

 

 

 

 

북대암 현판

 

 

 

 

 

 

 

 

 

 

 

 

 

 

 

 

 

 

 

북대암 암봉 뒤 봉우리에는 위와 같은 괴송이 자리하고 있다

 

북대암에서 내여와, 오갑사의 중심 운문사로 이동 하였다.

 

 

 

 

☞ 북호산 산행 북대암 바로가기_https://mkhur1004.tistory.com/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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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사

 

 

 

 

 

 

운문사 앞 벚꽃길

 

 

 

 

 

 

 

 

 

 

 

 

 

 

 

 

 

 

 

 

 

 

 

 

 

 

 

 

 

 

운문사는 신라 징흥왕 18년(557)에 한 신승이 현재의 북대암 옆 금수동에서 3년간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곳에 절을 창건하였는데, 중앙에 대작갑사(현재 운문사) 동쪽에 가슬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재 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인 오갑사이다. 600년 신라 원광국사가 중창하였으며, 이때 귀산과 추항 두 화랑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하였다. 이후 후심국의 혼란기에 폐허가 된 절을 930년에 보양국사가 크게 중창하였으며, 고려태조 왕건이 통일을 도운 보양국사에 대한 보은으로 937년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리고 전지 500결의 넓은 토지를 하사하였다. 이때부터 운문사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중기 가지산문의 원응 학일 스님이 주석하면서 나라의 제2선찰이라 할 정도로 사세가 커졌으며, 1277년 일연 스님이 주지로 머물면서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불교정화 직후인 1955년부터 비구니 사찰이 되어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77년 이후 명성 스님이 주지로서 도량의 면모를 크게 일신시켜 현재 승가대학과 대학원, 율원과 선원을 갖춘 전국 최대규모의 비구니 교육 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운문사 경내에는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를 비롯하여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미륵전, 작압전, 금당, 강당, 관음전, 면부전, 오백나한전 등 조선시대의 여러 건물들이 현존하고 있다.

 

 

 

 

 

 

 

 

 

 

운문사 상징 처진소나무_천연기념물 180호

 

운문사 경내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처진 소나무는 삼월삼짓날에는 해마다 소나무에 막걸리를 주고 있다. 이 나무는 소나무의 일종으로, 그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점이 보통 소나무와 달라서 처진 소나무라고 한다. 처진 이런 나무는 간혹 야생 상태에서 보고된 바 있고 또 소나무가 눌렀을 때에 가지가 위로 뻗지 못하여 밑으로 쳐저있다가 그대로 굳어져서 외관상 처진 소나무처럼 된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소나무는 전혀 그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이다. 나무모양이 아주 좋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보호육성을 위해 매년 봄.가을에 걸쳐 막걸리를 가장자리에 뿌려 주고 있다. 이 처진 소나무는 어떤 고승이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구전이 있다. 높이는 약 6m이고,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3m이며, 나무의 수령은 450~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만세루

 

 

 

 

 

운문사 서부해당화

 

 

 

 

 

 

 

 

 

 

 

 

 

 

 

 

 

 

 

 

 

 

 

운문사에서 본 복호산

 

좌측 병풍암 아래 북대암이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 목련

 

 

 

 

 

오갑사의 흔적 작압전

 

오갑사의 중심 대작갑사에서 유래한 운문사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 '작압'이란 작은 전각에 모셔져 있다. 작압이라는 말은 보양스님이 까치떼가 땅을 쪼고 있는 곳에 절을 지었다는 작갑사(운문사의 전신)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작압전 내부에는 위와 같이 보물인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가 모셔져 있다.

 

 

 

 

 

 

 

 

 

 

 

불이문 앞 게시판

 

 

 

 

 

동탑과 서탑

 

우측으로 비로전 좌측 뒤로 오백전

 

 

 

 

 

동탑과 서탑 그리고 오백전

 

 

 

 

 

 

 

 

 

 

 

동탑과 비로전

 

 

 

 

 

비로전(대웅보전)

 

1105년 (고려 숙종 10년) 원응 국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발견된 상량문에 藏次 順治 十年 癸巳 九月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653년(조선 효종 4년)에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 8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으나, 통칭하여 비로전이라고 부른다.

 

 

 

 

 

 

 

서탑과 비로전

 

 

 

 

 

 

 

 

 

 

 

 

 

 

 

 

 

운문사와 복호산

 

 

 

 

 

 

 

 

 

 

 

 

 

 

 

 

 

 

 

운문사 대웅보전

 

 

 

 

 

 

 

 

 

 

 

 

운문사 전향각

 

 

 

 

 

 

 

 

 

 

 

 

 

 

 

 

 

 

 

 

 

 

 

 

 

 

 

 

 

 

 

 

 

 

 

원흥국사비

 

 

 

 

 

 

 

 

 

 

 

 

 

 

 

 

 

 

 

 

 

 

 

 

 

 

 

 

 

 

 

 

 

비개이는 운문사, 상큼하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켜 보았다.

 

이제 막 벚꽃도 지고 있고, 올 봄도 벌써 저만큼 달아 나는 듯 하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