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거산 운문사는 언제 들러도 정갈함이 느껴져 자주 들러가는 곳
청도 형님네 전원에서 2박3일 휴식하고 귀울길에 잠시 들러 보았네요.
퇴직휴가 한달, 막상 멍석 깔아놓으니, 방랑끼보다 휴식모드 입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여러 복잡다난 한 마음을 정리해야 할 듯 합니다.


사리암 나반존자상을 봉안 하고 있는 천태각
사리암(邪離庵)은 고려 초의 고승 보량이 930년(태조 13)에 창건하였다. 조선 후기인 1845년(헌종 11)에 정암당 효원이 중창하였다. 1851년(철종 2) 10월 13일 증명법사 동호, 지윤과 승려 만점, 선화 등이 나반존자상을 봉안하였으며, 같은 해 독성 탱화를 제작해 안치하였다. 그 후 영험이 있는 나반존자의 기도도량으로 부상하였다. 승려 신파가 천태각을 건립하였다. 1924년에 증축하고 1935년에 중수하였다. 1965년 경봉선사가 산신탱화를 봉안하였으며, 금호선사가 천태각 밑에 중수비를 건립하였다. 1980년에는 비구니 혜은이 3층의 요사를 신축하였으며, 1983년 관음전, 자인실, 정랑 등을 개축하였다. 천태각 밑에 있는 사리굴은 운문산 4굴의 하나이다.
네 곳의 굴은, 동쪽 사리굴(邪離窟), 남쪽 호암굴(虎巖窟), 서쪽 화방굴(火防窟), 북쪽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틈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 Photo 후기

대구 홍구원에서 짬뽕과 짜장면

형님네 전원에서 보이는 선의산

비슬지맥 선의산

비슬지맥 잉어재


보약 도라지 구이
수년동안 산자락에서 큰 도라지를 캐 술안주를 합니다.
도라지가 너무 독해 배아리도 하게 되었지만, 보약입니다.
▶ 운문사

운문사 입구 고목


호거산운문사 현판이 걸린 절문

운문사 상징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
처진 소나무는 운문사 경내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삼월삼짓날에는 해마다 소나무에 막걸리를 주고 있다. 이 나무는 소나무의 일종으로, 그 가지가 밑으로 늘어지는 점이 보통 소나무와 달라서 처진 소나무라고 한다. 처진 이런 나무는 간혹 야생상태에서 보고된 바 있고 또 소나무가 눌렀을 때에 가지가 위로 뻗지 못하여 밑으로 쳐저있다가 그대로 굳어져서 외관상 처진 소나무처럼 된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소나무는 전혀 그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이다. 나무모양이 아주 좋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보호육성을 위해 매년 봄.가을에 걸쳐 막걸리를 가장자리에 뿌려 주고 있다. 이 처진 소나무는 어떤 고승이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구전이 있다. 높이는 약 6m이고,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2.9m이며, 나무의 나이는 450~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운문사 만세루


북대암이 있는 복호산 단애

북대암과 복호산 단애


운문사 대웅보전
운문사는 신라 징흥왕 18년(557)에 한 신승이 현재의 북대암 옆 금수동에서 3년간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곳에 절을 창건하였는데, 중앙에 대작갑사(현재 운문사) 동쪽에 가슬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재 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인 오갑사이다. 600년 신라 원광국사가 중창하였으며, 이때 귀산과 추항 두 화랑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하였다. 이후 후심국의 혼란기에 폐허가 된 절을 930년에 보양국사가 크게 중창하였으며, 고려태조 왕건이 통일을 도운 보양국사에 대한 보은으로 937년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리고 전지 500결의 넓은 토지를 하사하였다. 이때부터 운문사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중기 가지산문의 원응 학일 스님이 주석하면서 나라의 제2선찰이라 할 정도로 사세가 커졌으며, 1277년 일연 스님이 주지로 머물면서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불교정화 직후인 1955년부터 비구니 사찰이 되어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77년 이후 명성 스님이 주지로서 도량의 면모를 크게 일신시켜 현재 승가대학과 대학원, 율원과 선원을 갖춘 전국 최대규모의 비구니 교육 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운문사 경내에는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를 비롯하여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미륵전, 작압전, 금당, 강당, 관음전, 명부전, 오백나한전 등 조선시대의 여러 건물들이 현존하고 있다.

운문사 대웅보전
최근 1994년 건립 되었으며, 대중 스님들이 조석 예불을 모시는 주법당입니다.

대웅보전 법당 내부




동서 삼층석탑과 비로전(대보전)


보물 제835호 비로전(대웅보전)
1105년 (고려 숙종10년) 원응 국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발견된 상량문에 藏次 順治 十年 癸巳 九月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653년(조선 효종 4년)에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 8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으나, 통칭하여 비로전이라고 부른다.

비로전 천정 반야용선(般若龍船) 용머리의 배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악착동자
운문사 대웅전인 비로전 천정에 반야용선 배의 밧줄에 매달려 있는 동자상이 있다, 이 동자상이 바로 악착동자다. 극락정토로 사람들을 싣고 가는 반야용선 배가 출발을 하는데 악착동자가 나루터에 늦게 도착한 것이다. 이미 배는 떠나고 있는데, 밧줄 하나가 보여 그 밧줄에 죽기 살기로 악착같이 매달려 마침내 정토에 닿았다는 악착동자에 대한 불교의 설화다. 이 악착동자는 본래 청의동자인데, 평소 선과 덕을 많이 쌓았다. 하지만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느라 나루터에 늦게 도착 하고 말았는데, 이를 본 사공인 관음보살께서 밧줄을 던져 주었고 청의동자는 그 밧줄을 붙잡고 반야용선 배에 승선하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려 있다고 해서 '악착동자'라고 한다. 반야용선은 중생을 태워 피안의 세계로 인도 한다는 배, 즉 중생이 극락정토에 갈 때 타고 간다는 지혜로 나가는 배라고 한다. 운문사 스님들은 이 동자를 '악착보살'이라고 부르고 있다.

서탑과 오백전

동탑

대웅보전(비로전)





이번 좋은생각
좋은생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림자가 당신을 떠나지 않듯 행복이 당신을 따릅니다.

작압전과 관음전

작압전
오갑사의 중심 대작갑사(현 운문사) 유일하게 남아있는 오갑사 관련 작압 입니다.

운문사의 보물 '작압'
오갑사의 중심 대작갑사에서 유래한 운문사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 '작압'이란 작은 전각에 모셔져 있다. 작압이라는 말은 보양스님이 까치떼가 땅을 쪼고 날아 오른 곳에 절을 지었다는 대작갑사(운문사의 전신)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작압전 내부에는 보물인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가 모셔져 있다.

오갑사의 대작갑사의 흔적 작압전에 모셔진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인 작압전은 전면 측면 모두 한칸의 작은 건물이다. 삼국유사에 의사면 한 신승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떼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수행하여 큰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새를 보고 이른 터에는 무너진 석탑이 있어서, 무너져 있는 석조물로 다시 탑을 쌓으니 파편이 모라라지도 남지도 않는 것을 보고 좋은 징조로 여겼다고 한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뒤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남쪽에 천문갑사·서쪽에 대비갑사·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다섯 사찰을 두고 오갑사(五鴨寺)라고 하였다. 작압전은 신승이 발견한 석탑터에 지어진 전각으로, 나말려초의 보양국사가 전탑형식으로 초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식 된 이후 현재의 목탑형식으로 재건되었다. 내부에는 보물 제317호 석조여래좌상과 보물 제318호 사천왕 석주를 모시고 있다.
오갑사 관련 유물로 오갑사의 중심 대작갑사에서 유래한 운문사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 '작압'이란 작은 전각에 모셔져 있다. 작압이라는 말은 보양스님이 까치떼가 땅을 쪼고 있는 곳에 절을 지었다는 작갑사(운문사의 전신)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작압전 내부에는 위와 같이 보물인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가 모셔져 있다.
오갑사(五岬寺)란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돕는다'는 오갑사는 신라 진흥왕 18년인 557년, 운문으로 들어온 도승은 금수동(金水洞)계곡에 작은 암자를 지었다.현재의 운문사 북쪽 북대암 근처다. 그리고 3년을 수도하며 홀연히 득도한 그는 산세의 혈맥을 짚어 도우(道友) 10여 명과 함께 다섯 개의 갑사(岬寺)를 짓기 시작했다.가운데 '대작갑사(大鵲岬寺)'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9천 보(步)지점에 '가슬갑사(嘉瑟岬寺)',남쪽7리에 '천문갑사(天門岬寺)',서쪽10리에 '소작갑사(小鵲岬寺)',그리고 북쪽 8리에 '소보갑사(所寶岬寺)' 이렇게 오갑사(五岬寺)다.기록에 따르면 다섯 갑사의 역사는 560년에 착공해7년 동안 이루어졌고 거의 동시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작갑사가 지금의 운문사이며, 소작갑사는 대비사'가 계승하고 있다.
'소작갑사'는 박곡리 미륵당에서 약 900m 떨어진 북쪽 계곡 중턱의 베틀바위 부근 절터로 여겨진다. 베틀바위 북동쪽의 봉우리에서 남으로 뻗은 비교적 급한 사면의 가장자리다. 절터에는 건물지의 흔적과 불상대좌의 지대석과 하대석, 석불좌상의 하반신이 남아 있고 기와 조각이 넓은 지역에 걸쳐 산재하고 있어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작갑사는 운문사와 함께 중창한 대비사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보양국사가 중창 때 위치를 옮겨 원래의 자리는 아니지만 소작갑사의 법등을 잇고 있는 것이 바로 대비사라는 견해다. 또한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박곡리사지 '소작갑사지’의 후보지 중 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명확히 선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천문갑사'는 운문면의 신원리 절터로 여겨진다. 운문사 남쪽 운문천 상류의 사리암 골짜기에서 다시 상류를 따라 오르면 4개의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닿는데, 이곳을 천문동(天門洞)이라 부른다. 계류가 만나는 곳에 배 모양으로 튀어나온 구릉 위에 절터가 있다. 강돌로 쌓은 석축과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기단으로 추측되는 돌들을 볼 수 있다.
'소보갑사'는 운문면의 오진리 절터로 추정된다. 절터는 운문호와 옹산강에서 오진리 마을로 흘러오는 개울이 만나는 끝자락으로 갑(岬)형의 지형에 건물지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관련 유물이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신라의 기와 조각이나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됐다.
'가슬갑사'의 위치는 삼국유사의 원광서학(圓光西學)조에 나타난다. 기록에는 '원광법사가 수나라에 갔다 돌아와 가슬갑에 머문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지금 운문사 동쪽 9천보(步)쯤 되는 곳에 가서현이 있는데, 혹은 가슬현(嘉瑟峴)이라고 하며, 고개의 북쪽 골짜기에 절터가 있으니 바로 이것'이라는 설명이 남아 있다.
이를 근거로 가슬갑사는 운문면 바깥삼계리의 삼계리마을이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바깥삼계리는 운문산의 중앙부에 해당하고 운문령에서 발원하는 바깥삼계리천과 문복산에서 발원하는 개살피계곡이 만나는 골짜기의 땅이다.

관음전 명부전

관음전과 작압전

▶ 사리암

사리암 아래 주차장
주말이면 이곳까지 차량으로 오기가 쉽지 않지요.

사리암 가는 길
1km 조금 넘게 빡시게 올라야 합니다.


가파른 계단길
등산로였는데, 이제 콘크리트 계단길로 바꾸어 놓았네요.



무지막지 한 솔
뿌리는 우측 아래로 길게 내리고 몸통은 바위를 타고 건너가 거송이 된 솔 입니다.

한땀 흘려 도착하는 사리암
복호산 산행때 늘 들러가던 곳으로 사리암은 아주 영험한 기도터로 알려져 불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이지요.



사리암 관음전

관음전 뒤 암

사리암 사리굴과 나반존자상을 봉안 하고 있는 천태각
사리암(邪離庵)은 고려 초의 고승 보량이 930년(태조 13)에 창건하였다. 조선 후기인 1845년(헌종 11)에 정암당 효원이 중창하였다. 1851년(철종 2) 10월 13일 증명법사 동호, 지윤과 승려 만점, 선화 등이 나반존자상을 봉안하였으며, 같은 해 독성 탱화를 제작해 안치하였다. 그 후 영험이 있는 나반존자의 기도도량으로 부상하였다. 승려 신파가 천태각을 건립하였다. 1924년에 증축하고 1935년에 중수하였다. 1965년 경봉선사가 산신탱화를 봉안하였으며, 금호선사가 천태각 밑에 중수비를 건립하였다. 1980년에는 비구니 혜은이 3층의 요사를 신축하였으며, 1983년 관음전, 자인실, 정랑 등을 개축하였다. 천태각 밑에 있는 사리굴은 운문산 4굴의 하나이다.
네 곳의 굴은, 동쪽 사리굴(邪離窟), 남쪽 호암굴(虎巖窟), 서쪽 화방굴(火防窟), 북쪽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틈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 사리암 남쪽 석굴(금은광이) 바로가기_ 영남알프스 금은광이 석굴_나선폭포 사리암능선 '11.7.24-23
영남알프스 금은광이 석굴_나선폭포 사리암능선 '11.7.24-23
▲ 거대한 바위에 석굴...금은광이(가칭) 큰골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사리암 맞은편 계곡을 치고 오르면 고도 450m 지점에서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크기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바위에 석굴이 있고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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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반존자 상을 모신 천태각

영험한 곳이라는 사리굴

천태각

사리암 산신각

산신각에서 본 사리암


산신각에서 본 운문지맥
좌측부터 억산과 구만산이 보입니다.



억산 구만산 운문지맥
앞에 보이는 639봉 좌측 아래 금은광이 석굴이 있는 곳으로, 답사 때 석굴 앞 터에는 오래된 기와조각들이 많은 곳으로 보아
오갑사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또한, 운문사 4대굴 동쪽 사리굴(邪離窟), 남쪽 호암굴(虎巖窟), 서쪽 화방굴(火防窟), 북쪽 묵방굴(墨房窟) 중의 한곳이라 가늠해 봅니다.



이렇게 청도 형님네 전원에서 2박3일 동안 술독에 빠졌는데
한땀 흘려 술독 기운까지 말끔히 해결하고 귀울 합니다.
퇴직휴가 남는건 시간뿐인데 왜이리 바쁜지, 뭔가 정리해야 겠네요.

end
'″°³ 산행후기 ³°″ > 영남알프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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